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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수사대- 시즌1 도시의 그림자

6부: 요양원의 속삭임

by 공감디렉터J


Chapter 1: 같은 꿈, 같은 이야기

2024년 11월 3일. 의뢰는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평온한 노년 요양원'의 사회복지사 김혜진으로부터 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혼란과 우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르신들 몇 분이 이상하세요. 특히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 세 분이요. 서로 다른 병실에 계시고, 평소엔 교류도 거의 없으신 분들인데...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말씀들을 하고 계세요."


이야기는 기묘했다. 세 명의 할머니는 모두 며칠 전부터 같은 악몽을 꾸었다고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낡은 창고, 그리고 '빨간 구두를 신은 아이'가 울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단순한 노인성 섬망 증세려니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점점 더 구체적으로 되어갔다.


"어제는 박춘자 할머니가 갑자기 '영수야... 영수가 데려갔어'라고 소리치셨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옆 병실의 이순례 할머니도 복도를 지나가다 똑같이 '영수 그놈이...'라고 중얼거리시는 걸 들었어요. 김복순 할머니는 식사 중에 숟가락을 떨어뜨리시더니 '창고... 감자 창고에 있어'라고 하시고요."


김혜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영수'라는 사람, '빨간 구두', '감자 창고'... 세 분의 이야기가 마치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고 있어요. 이게 우연일까요?"


요양원 측에서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 혹은 치매 환자들 사이의 정보 교류로 치부하려 했다.

하지만 김혜진은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이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하나의 진실을 향해 필사적으로 모여드는 듯한 기이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Chapter 2: 기억의 파편들

사건은 기억과 증거, 그 경계를 다루어야 했기에 심리학자 오민재와 법의학자 한서진이 맡았다.


"치매 환자의 증언은 법적 효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기억의 왜곡과 착오가 심하기 때문이죠."

오민재가 팀원들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모든 기억이 거짓인 것은 아닙니다. 특히 감정적으로 강렬한 충격을 동반한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은 아주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있기도 하죠."


오민재는 할머니들을 한 명씩 만나며 대화를 시도했다. 대화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갔고,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민재는 끈기 있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박춘자 할머니는 손자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빨간 구두'를 말할 때만큼은 눈빛이 또렷해졌다.

"예쁜 구두였어... 축제 때 새로 산 거라고 자랑했는데..."


이순례 할머니는 식사 메뉴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영수'를 말할 때는 분노로 떨었다.

"그놈이... 그놈이 아이를..."


김복순 할머니는 자신의 나이도 모르면서, '창고'만큼은 정확하게 위치를 그려냈다.

"마을 어귀... 큰 느티나무 옆에... 거기..."


오민재는 할머니들이 '빨간 구두를 신은 아이' 이야기를 할 때 공통적으로 보이는 감정 패턴을 발견했다.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깊은 슬픔과 부채감, 그리고 죄책감이었다.


한편, 한서진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그녀는 세 할머니의 과거 이력을 조사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1970년대 후반, 경기도의 한 작은 마을 '송정리'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 마을은 지금의 요양원이 들어선 곳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이었다.

한서진은 '송정리', '1970년대'라는 키워드로 과거 사건 기록을 검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8년 10월 17일의 낡은 신문 기사 한 귀퉁이에서 단서를 찾아냈다.


[실종] 송정리 거주 7세 여아, 실종 닷새째 행방 묘연

송정리 마을 축제가 있던 지난 12일 밤, 동네 아이들과 놀던 정수연(7세) 양이 사라졌다.

경찰은 단순 가출 혹은 미아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나, 현재까지 아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실종 당시 정 양은 흰색 원피스에 빨간색 구두를 신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내용은 간단했다. 경찰은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아이를 찾지 못하고 사건은 미제로 종결되었다.


"찾았습니다."

한서진이 팀원들에게 연락했다.

"할머니들은 헛것을 보는 게 아니었어요. 46년 전, 자신들의 고향에서 일어났던 미제 실종 사건을 기억해내고 있는 겁니다."


Chapter 3: 잊혔던 목격자들

모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46년 전, 정수연 양 실종 사건의 목격자들이었다. 하지만 왜 이제 와서, 그것도 치매가 깊어진 상태에서 기억해내게 된 것일까?

오민재는 이것을 '해리성 기억상실'의 회복 과정으로 보았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충격으로, 그들은 스스로 기억의 문을 닫아버렸을 겁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인지 기능이 약해지면서, 억압되었던 트라우마가 통제 불능 상태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거죠."


오민재가 요양원 주변 지도를 펼쳤다.

"요양원 주변의 환경이 옛 고향과 비슷하다는 점도 기억을 촉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했을 겁니다. 뇌는 비슷한 환경적 단서를 만나면 묻혀있던 기억을 꺼내오거든요."


이제 남은 마지막 조각은 '영수'였다. 한서진은 당시 사건 기록을 다시 샅샅이 뒤졌다.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 중, '최영수'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는 당시 마을에서 평판이 좋지 않던 23세 청년이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수사망에서 벗어났다. 그는 몇 년 뒤 마을을 떠났고, 현재는 행방이 묘연했다.


"그가 범인이라면, 할머니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강태우가 물었다.


한서진은 마을의 옛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중얼거렸던 '감자 창고'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곳은 1980년대 초 도로 개발로 인해 철거되고 지금은 작은 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만약... 시신이 그곳에 묻혔다면?"


Chapter 4: 46년 만의 진실

팀은 경찰에 협조를 요청해 공원 부지에 대한 수색을 시작했다. 지표 투과 레이더 장비가 동원되었다.

며칠간의 수색 끝에, 레이더는 공원 한가운데 놀이터 아래에서 이상 신호를 감지했다.

땅을 파헤치자, 부식된 나무판자 아래에서 작은 아이의 유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유골의 발치에는, 흙 속에서도 선명한 붉은색을 띤 낡은 어린이용 구두 한 켤레가 함께 묻혀 있었다.

한서진은 조심스럽게 유골을 수습했다. 두개골에는 둔기에 의한 골절 흔적이 남아 있었다. 명백한 타살이었다.


에필로그: 46년 만의 안식

유골의 신원은 DNA 대조를 통해 정수연 양으로 확인되었다.

46년간 땅속에 묻혀 있던 아이는 마침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재수사가 시작되었고, 경찰은 잠적한 최영수를 쫓기 시작했다.

그는 부산에서 가명으로 살고 있다가 결국 체포되었다.

요양원의 할머니들은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았다. 마치 평생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들처럼, 그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평온함이 깃들었다.


박춘자 할머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사회복지사 김혜진의 손을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아이가 울지 않아."

그녀는 여전히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는 듯했다. 잊혔던 아이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고, 마침내 아이에게 안식을 찾아주었다는 것을.


강태우는 사건 파일을 닫으며 요양원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로 할머니들이 햇살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많은 것을 잊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만은 기억해냈다.


기억은 사라져도, 진실을 향한 마음만은 영원히 남는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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