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새로고침'이 필요할 때(7)
"괜찮아, 별일 아니야."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주문을 외웁니다. 상사의 날카로운 지적에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믿었던 친구의 무심한 말에 가슴이 쿡 찔릴 때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죠.
"전 괜찮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감정을 숨기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울고 싶어도 화장실 칸 안에서만 울어야 하고, 화가 나도 떨리는 손을 주먹 쥐어 감추며 미소 지어야 하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내 마음을 속이는 데 능숙해집니다.
하지만, 절대 속일 수 없는 단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몸'입니다.
어느 날,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대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준비한 대로만 하면 돼, 떨지 말자'라고 끊임없이 되뇌었지만,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는 쉴 새 없이 진동을 울려댔습니다.
[심박수가 높습니다. 심호흡을 하세요.]
화면을 보니 평소 70 정도이던 심박수가 120을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마치 전력 질주를 한 사람처럼요.
그 숫자를 보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나 지금 엄청 무서워하고 있구나. 내 이성은 '괜찮다'고 포장하고 있었지만, 내 심장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겁니다.
강북삼성병원의 전문의는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단언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이 쏟아져 나와 근육을 긴장시키고, 소화를 멈추게 하고, 심장을 뛰게 만듭니다.
투쟁 혹은 도피(Fight or Flight). 원시시대에 맹수를 만났을 때처럼, 우리 몸은 상사의 질책이나 업무 압박을 '생존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전투 태세에 돌입하는 것이죠.
문제는 이 전투 태세가 풀리지 않고 만성적으로 지속될 때입니다.
포티파이 문우리 대표는 흥미로운 기술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혈류 변화를 감지해 자율신경계의 상태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얼마나 잘 조절하고 있는지, 몸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그 미세한 떨림과 흐름을 읽어내죠."
기술은 이제 우리의 표정, 목소리 톤, 심지어 땀 분비량까지 분석해 "당신, 지금 우울한가요?"라고 묻습니다. 내가 나조차 모르게 억누르고 있던 감정의 실체를, 차가운 데이터가 가장 뜨겁게 증명해 주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몸이 보내는 이 구조신호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사 선생님은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처방을 내렸습니다. '이완(Relaxation)'입니다.
"마음이 복잡할 땐, 역설적으로 몸을 먼저 다스려야 합니다. 심장을 억지로 천천히 뛰게 할 순 없지만, 호흡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거든요."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은 이렇습니다. 숨을 천천히, 아주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는 것. 그리고 발끝부터 머리까지 근육에 힘을 꽉 줬다가 한순간에 툭, 하고 풀어버리는 '근육 이완법'.
저는 속는 셈 치고 앱을 켜고 따라 해 보았습니다.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세요. 툭, 하고 떨어뜨리세요."
화면 속 가이드를 따라 어깨를 내리는 순간, 놀랍게도 제가 승모근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긴장 속에 사느라 내 몸이 굳어있는 줄도 몰랐던 거죠.
근육이 풀리자 신기하게도 팽팽했던 마음의 줄도 느슨해졌습니다.
꽉 막혀있던 명치끝이 내려가고, 얕게 쉬던 숨이 배꼽 아래까지 깊게 들어왔습니다. 몸이 편안해지니, 아까 나를 괴롭히던 걱정들이 조금은 작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뭐.'
이제 제 손목 위의 스마트워치는 단순한 시계가 아닙니다.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알아채주는 다정한 친구입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네요. 잠시 1분만 눈을 감아볼까요?"
이 알림이 뜰 때면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창밖을 보거나, 깊은숨을 쉽니다.
기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우스울 수도 있지만, 이 짧은 멈춤이 저를 번아웃의 낭떠러지에서 구해준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몸의 소리를 무시하며 살아왔습니다. 머리가 시키는 일,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에 맞추느라 심장이 터질 듯 뛰어도 모른 척했습니다. 하지만 몸은 기억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청구서를 내밀죠.
오늘 하루, 당신의 몸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어깨가 돌처럼 굳어있진 않나요?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진 않나요?
잠시 스마트폰이나 워치가 보여주는 숫자를 들여다보세요. 그리고 그 숫자가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면, 부디 그 신호를 외면하지 마세요.
크게 숨 한번 쉬는 것.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가 툭 떨어뜨리는 것. 그 사소한 동작 하나가, 오늘 당신의 마음을 지옥에서 구해줄지도 모릅니다.
다음 화에서는 칭찬에 굶주린 우리 어른들을 위해, 기술이 어떻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을 조금씩 바꾸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