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도 괜찮은 하루
‘공간지각력은 높은 편인데 왜 길치일까?’
어릴 적부터 큐브, 퍼즐, 조립 같은 공간감각을 쓰는 걸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잘한다.
아이큐 테스트를 하면 늘 공간지각력은 상위권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공간지각력이 높은데도 길치일 수 있는 걸까?
그 두 능력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공간 지각력과 길치의 관계
공간 지각력은 물체의 형태, 크기, 위치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높은 공간 지각력을 가진 사람은 물리적 환경은 잘 이해하고 떠올리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실제로 그 환경에서 길을 찾는 능력은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길치 현상은 주로 방향 감각이나 기억력과 관련이 있다.
이 내용은 인지과학 및 공간 지각력과 길차기 능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다.
그렇다, 나는 ’방향감각’이 유독 약한 게 확실하다.
이를테면, ‘우회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왼 좌’, ‘오른 우’를 머릿속으로 한번 생각하고 나서야 몸이 반응한다.
오른손과 왼손처럼, 말과 동시에 자동으로 반응되는 감각이 아니다.
버스도, 지하철도 자주 반대로 탄다.
오늘처럼.
그래도 요즘은 어플지도가 잘되어있어 그나마 낫다.
이런 게 활성화되기 전에는
친구들과 약속을 하면 역에서 만나 항상 나를 픽업해 가곤 했다.
친구들은 길치인 내가 불안한지 지금도 그렇다.
”솔아, 너는 역에 있어, 나랑 같이가“
이사 후 처음으로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내려서 걸어야 할 거리가 생각보다 멀어 중간에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환승을 한번 해야 해서 버스를 다시 한번 갈아탔다.
그런데… 반대 방향이었다.
다행히 익숙한 동네라 금세 눈치챘고,
한 정거장 지나친 후 바로 반대편 버스로 갈아탔다.
결국, 한 번이면 될 환승을 세 번이나 하게 되어 벌써부터 진이 빠졌다.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었다.
오늘은 검사만 하는 날이라 검사를 다하고 나니 점심쯤이었다.
엄마 사무실 근처라 연락했더니 선약이 있으셨다.
그래서 그 근처에 일하고 있는 엄마 친구분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엄마 없이 엄마 친구를 만난 건, 처음은 아니다.
조금 특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에겐 익숙한 일이다.
엄마보다 먼저 안부를 전하고, 먼저 찾아가기도 한다.
특별한 날이라는 소식을 들으면 조그만 선물을 준비하건,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친구가 또 있었다.
동생 없이 동생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동생과는 멀어진 사이였지만, 취미로 수영을 하다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운동도 함께하고, 술도 마시고, 밥도 먹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동생과 좋은 관계는 아니라, 결국 인연은 끊어졌다.
나는 가끔 이런 방식으로도 사람과의 인연을 만든다.
다시 오늘 이야기로 돌아가면,
약속을 한 뒤, 박카스 한 상자 들고 아주머니(엄마 친구)가 일하시는 곳으로 찾아갔다.
찾아가는 길이 또 험난했다.
이번에는 잘 탔다고 생각했는데, 한 정거장 전에 내려버렸다.
다음 정거장이 도착지점인 안내메시지를 들었고,
이번정거장이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리고 나서야 더 가까운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 하루, 걷고 또 걸었다.
8 천보를 걸었다. 유산소 했다 생각하자.
도착을 했고, 아주머니를 뵐 수 있어서 좋았다.
간단하게 담소를 나눈 뒤 순댓국집을 가기로 했다.
이 근처에 맛집이 있었다.
이 순댓국집은 이사 가기 전 혼자서도 자주 와서 먹던 곳이다.
길 헤매었던 오전의 나의 힘듬도 잊은 채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도 길을 정말 많이 헤매었지만,
사람을 만나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했다.
어쩌면 내 인생은 늘, 약간씩 돌아가고 멀어지는 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