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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부는 책바람 Nov 13. 2023

저는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어요

[책리뷰] 19호실로 가다 / 도리싱 레싱 / 문예출판사




수전은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이 방에서 수전이 뭘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이 귀중했다.


19호실로 가다 P.332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나에게 가끔 지인들은 힘들지 않은지 물어보곤 했다.

나의 대답은 '그 시간이 너무 좋다'였다.

아이들 하교 시간이 늦을 때에는 일부러 20~30분 더 소요되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글도 쓰면서 그 시간을 활용하기도 했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집 『19호실로 가다』는 '여성해방운동'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며 여성의 역할과 인권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11편의 단편 모두 강렬한 인상이 남았지만 그중에서도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의 주인공 수전의 이야기는 예전 나의 모습이 떠오르며 더욱 감정 이입이 되었다.






도리스 레싱(1919~2013)은 이란으로 이주한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1919년  태어났고 영국의 식민지인 짐바브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옥수수 농장을 하면  큰돈을 벌수 있다는 꾐에 빠진 아버지와 함께 아프리카로 이주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14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베이비 시터, 전화교환원, 타이피스트로 일을 한다.

도리스 레싱이 어린 시절 겪은 가난과 식민지의 비참한 현실은 그녀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부조리와 불평등한 현실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또 공산주의에 관심을 갖고 공산당에 가입했으나 1956년 소련의 헝가리 혁명 진압 사건을 계기로 탈당한다.

그녀의 정치적 활동으로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스 레싱은 작가로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고 2007년 88세의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여 최고령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사회적 문제를 디테일하게 다루어 영국에서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성에 발목을 붙잡혔다.


19호실로 가다 p.




첫 문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19호실로 가다』

대형 신문사 차장급 기자였던 매슈와 광고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수전은 서로 사랑에 빠졌고

이 둘은 각자의 아파트가 있지만 서로에게 예속당하지 않기 위해 새 아파트를 마련해 결혼을 한다.

어느 정도 결혼생활이 안정되면서 수전과 매슈는 정원이 딸린 주택을 구입하고, 그곳에서 네 명의 아이들이 태어난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수전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다.

사랑스러운 아내, 자애로운 엄마, 능력 있는 남편, 그리고 멋진 집 

수전과 매튜는 자신들이 상상했던 것들을 이루고 단란한 가정 속에서 평탄한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밤 매슈가 집에 늦게 돌아와 파티에 갔다가 어떤 아가씨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함께 자고 왔다고 고백한 것 역시 진부했다.


수전은 당연히 그를 용서해 주었다.


다만 '용서'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이 아니었을 뿐, '이해'라고 하는 편이 옳은 것이다.


하지만 뭔가를 이해한다면 그것을 용서할 수는 없다.


19호실로 가다 p.296




첫 문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19호실로 가다』

대형 신문사 차장급 기자였던 매슈와 광고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수전은 서로 사랑에 빠졌고

이 둘은 각자의 아파트가 있지만 서로에게 예속당하지 않기 위해 새 아파트를 마련해 결혼을 한다.

어느 정도 결혼생활이 안정되면서 수전과 매슈는 정원이 딸린 주택을 구입하고, 그곳에서 네 명의 아이들이 태어난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수전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다.

사랑스러운 아내, 자애로운 엄마, 능력 있는 남편, 그리고 멋진 집 

수전과 매튜는 자신들이 상상했던 것들을 이루고 단란한 가정 속에서 평탄한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밤 매슈가 집에 늦게 돌아와 파티에 갔다가 어떤 아가씨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함께 자고 왔다고 고백한 것 역시 진부했다.


수전은 당연히 그를 용서해 주었다.


다만 '용서'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이 아니었을 뿐, '이해'라고 하는 편이 옳은 것이다.


하지만 뭔가를 이해한다면 그것을 용서할 수는 없다.


19호실로 가다 p.296




자신의 부정한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남편

그런 남편을 지성의 힘으로 이해하는 아내

수전과 매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전과 같이 지내지만 이들 마음 한켠에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생활의 중심이자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헤아릴 수 없는 기쁨과 재미와 만족을 안겨줄 수는 있지만, 


삶의 원천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19호실로 가다 p.292




막내가 학교에 들어가며서  수전은 그토록 바라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이때부터 자신의 삶에 대한 짙은 회의가 찾아온다.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 수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정작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기분에 모든 것들이 공허해져만 간다.

 




12년 동안 난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 


나만의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19호실로 가다 p.303




수전은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맨 꼭대기 빈방을 꾸며 자신만의 아지트로 삼는다.

하지만 그 방에서도 가정에서의 역할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급기야 수전은 자신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낡고 허름한 프레드 호텔의 19호실을 가명으로 빌리고

일주일에 사흘,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19호실에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을 완전히 고립시킴으로서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아이들의 엄마도 아닌 온전한 자신의 모습이 된다.

그러나 수전만의 19호실을 매슈가 알게 되고 남편은 그녀의 외도를 의심하지만 수전은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유일하게 행복하게 있을 수 있는 19호실의 침대에 누워 스스로의 삶을 마감한다.






사실 나도 <19호실로 가다>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전 롤링스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단 한순간만이라도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다. 


그녀는 어딘가로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그녀를 몰아붙였을까? 그녀가 죽음을 사랑한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그녀가 왜?


19호실로 가다 p.9




모든 것에는 타이밍이 있는 것 같다.

작년에 이 책을 처음 몇 장만 읽고 덮은 기억이 있다.

그때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이번에는 몰입하며 읽게 되었다.

단편 하나하나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듦과 동시에 내가 살아왔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만든다.

여자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기며 포기했던 것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수전과 남편은 지적인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결혼생활은 계획한 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로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그 간극이 점점 커지면서 수전은 자신의 삶이 사막처럼 황폐해져감을 느끼게 된다.

수전이 19호실로 가기 위해 입주 가정부 소피를 고용했는데 소피가 그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수전은 자신의 역할이 다른 사람에 의해 대체 가능하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수전 자신을 아무런 의미 없는 사람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또한 매슈가 수전의 외도를 의심했을 때조차 자신의 공허하고 혼란한 상황을 이야기하기보다 가상의 남자를 만들어 남편이 믿고 싶은 대로 만들어 버린다.

'19호실로 가다'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 그리고 여성의 내면적 갈등을 다루며 자신의 공간마저 허락받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을 묘사한 작품이다.

수전이 왜 그렇게까지 상황을 치닫게 만드는지 정확한 이유를 작가인 '도리스 레싱' 조차도 모른다고 답한다.

작품의 첫 문장에서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듯이 매슈와 수전 모두 지적인 사람이라는 설정에서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 이해받지 못할 두려움이 수전을 엄습한 것이 아닌지 추측해 볼 뿐이다.

도리스 레싱의 작품 '19호실로 가다'를 읽으면서 황동규 시인의 시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가 떠올랐다.

황동규 시인의 아버지는 '소나기'로 유명한 황순원 작가인데 아버지가 작고하고 남긴 유품을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개미에 투영시킨 다.

홀로 있는 것이 외로움이 아닌 환해지는 외로움이라는 시인의 표현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홀로움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책『19호실로 가다』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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