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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writes May 07. 2016

1. 서른, 아이를 낳다.

     곧 아기가 태어난지 한 달이 되어간다. 한 달 동안 나의 모든 것이, 우리 집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한 달 만에 신생아의 엄마라는 생활에 적응을 하고, 그 틈새를 찾아 이렇게 무엇이라도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작은 아기 하나가 생긴 것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임신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속으로 날짜를 세고 있었다. 오늘일까, 내일일까, 빨리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이유 없이 생겼다. 다 지나고 보니 아기는 4월 10일, 그러니까 아직 훌쭉하던 배로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처음 알려준 예정일에 약속처럼 짜잔, 하고 태어나려고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미리 앞당겨 셈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은 먼저 태어나겠지. 삼일은 먼저 태어나겠지. 지겨운 시험공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면, 차라리 얼른 시험을 쳐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엄마의 배 속에 너무 오래 있으면 건조한 피부를 타고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나는 미리부터 열심히 손가락을 꼽고 있었고, 아기는 차분하게도 그 날, 그때, 약속처럼 정확히 태어났다. 



     그 날 아침 6시부터 배가 아팠다. 10분 간격으로 살살. 5분 간격으로 살살. 책으로 또 인터넷으로 미리 공부해 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진통이 시작되었다. 진통이라고 해보아야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배를 움켜쥐고 나뒹구는 정도는 아니었다. 여자들이라면 매 달 겪어 익숙할 정도의 아릿한 느낌. '아, 이게 그거구나.'를 속으로 몇 번 되풀이하다 보니 아침 8시.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로 향했고 4시간 뒤, 아기가 태어났다. 보통 아무리 짧아도 6시간, 10시간, 12시간 혹은 20시간이 꼬박 넘도록 출산을 하는데 우리 둘의 출산은 아주 짧고 간결했다. 하지만 20시간의 고통을 4시간으로 압축해놓았다고 하면 내가 느낀 아픔을 설명할 수 있을까. 통증을 줄여주는 주사를 놓을 시간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어서, 짧지만 굵다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엉엉 울었고, 병원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와르륵하는 해소감과 함께 아기가 나의 가슴 위로 얹혔다. 



     아, 누가 알까. 내가 아닌 누가 알까. 그 순간 나의 가슴 위로 아기와 함께 덮쳐 왔던 감정을. 10달 동안 배 속에 두고 혹시 깨지기라도 할까 봐 애지중지했던 것을 드디어 품에 안아보는 나의 마음을. 어떻게 생겼을까 하루에 열 몇 번도 넘게 다른 모양으로 상상해보았던 아기를 내 손으로 살짝 만져보는 나의 마음을. (생각보다 못생겨서 깜짝 놀랐지만, 풉.) 이미 출산을 겪은 언니나 선배님들을 만날 때마다 늘 물어보곤 했다. 출산할 때의 기분이 어떠냐고, 도대체 얼마나 아프냐고. 그럴 때마다 다들 똑같이 이야기했다. 너무너무 아픈데, 아기를 보면 그 아픔을 다 잊게 된다고. '어휴 또 저 소리...'라고 지겨워하며 나는 참신하고 솔직한 대답을 하리라 다짐했었는데. 나도 그 지겨운 무용담에 한 표를 던진다. 



     너무너무 아픈데, 너무너무 기쁘다. 나는 몸은 강하고 마음은 약한 사람이라 어지간한 몸의 통증도 참고 넘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 정말로 아픈 것이다. 하지만, 역시 같은 이유에서 일까. 나는 참으로 여리고 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마침내 아기를 만나고, 그 조그마한 뺨을 손으로 살짝 만져보았을 때 마음이 느낀 감정들은 내가 느낀 몸의 고통보다 강렬했다. 그때 이후로 모든 몸의 통증은 사라졌고, 아팠던 기억은 여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마도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아기는 로엘이가 되었다. 스페인어로 황금빛 언덕이라는 뜻. 소리를 먼저 만들고, 뜻을 나중에 찾았지만 나의 작고 귀여운 아기를 좋은 인생으로 데려가 주는 이름이 되기를. 하루에 수 십 번도 넘게 부르는 이름 로엘. 로엘아 맘마 먹자. 로엘아 기저귀 갈자. 로엘아 목욕하자. 로엘아 울지 마. 로엘아 로엘아. 나의 귀여운 로엘아. 곤히 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대 그렇게 해줄 수 없겠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다. 너의 티끌 같은 식탐에서부터, 앞으로의 거대한 어떤 욕망까지. 엄마가 다 해주고 싶다. 로엘아. 



ps. 

글과 함께 올린 사진은 모두 남편이 찍어준 사진이다. Rae Kim이라는 이름으로 좋은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 나의 남편에게 큰 감사와 전우애를 전하며.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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