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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writes Jan 11. 2017

3. 서른, 모유수유를 하다.


  작년 봄, 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하지만 또 그리 어색하지는 않은 나이에, 나는 엄마가 되었다. 겨울을 지나오며 서른 하나가 되었고, 태어난 지 하루 이틀... 32일... 57일... 이렇게 셈을 하던 아기도 이제는 날짜로 세기에 벅찰 만큼 자랐다. 생각난 김에 세어보니 오늘로 277일. 세어본 날짜가 마치 매일매일 푼, 손때 묻은 문제집 277페이지처럼 두툼히 손에 잡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건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모유수유를 한지도 277일이 되었기 때문. '재밌게 노래 불러주기'는 어느 피곤한 날이면 시나브로 빼먹었다. '까꿍 놀이'도 '목욕'도 나의 피로와 아기의 취침 시간에 따라 건너뛰는 날이 있었다. 하지만 모유수유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277일 동안 젖을 물리는 일. 그것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뭉클한 살 부빔이기도 했고, 또 커다란 동물 한 마리로서 느껴야만 하는 운명 같은 피로함이기도 했다.


손싸개가 빨래 건조대에 널려있는 것을 보니, 갓난 아기 일 때의 사진인가 보다.


   하지만 오늘도 하고 있고, 또 내일도 기꺼이 하게 될 모유수유. 이제는 엄마로서의 의무감도, 뿌듯함도 없이 양치질처럼 하루 4번의 개운한 일상이 되었다. (여기서의 '개운함'이란, 아마 상상하기 힘들 기분으로, - 나 또한 아기를 낳기 직전까지도 상상치 못했다. - 모유수유를 하면 가슴에 젖이 쫙 비워졌다가, 3~4시간 만에 다시 가득 차오른다. 젖을 제시간에 비워주지 못하면 꽉 찬 가슴이 아프고 광광 울리는 듯한데, 그것을 아이가 먹어주면 다시 홀쭉하게 비워지며 개운해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살아가는 사이에 훌쩍 흘러있고, 조만간 모유수유에도 마침표를 찍을 날이 올 것이다. 아기를 낳을 때 그 순간의 선명한 아픔을 이제는 다 잊어버렸듯, 돌아보면 옅어져 있을 모유수유에 대한 기억. 하루 10번이었다가, 하루 7번, 그리고 이제는 하루 4번으로 줄어들고 있는, 우리 둘이 꼭 끌어안으며 보냈던 모유수유의 시간들을 글로 적어두기로 한다.

  

모유를 먹는 아기들은 밤에 잘 깬다. 분유보다 묽어서 배가 덜부르기 때문. 


    태어나자마자, 그러니까 탯줄이 끊기자마자, 아기는 엄마의 가슴팍에 올려진다. 아직 젖 무는 법은 모르지만 엄마의 가슴에서 그것을 연습하게 한다. 아, 그랬다. 지금 와 돌이켜보니 아기가 세상에 나와서 한 최초의 '행동'은 바로 엄마의 젖을 무는 것이었다. 오물오물. 그 어설피 움직이던 조그마한 입술은 그 이후 시시각각 젖을 찾아 삐죽 대며 울어댄다. 신생아의 위는 구슬만 하다고 했다. 그 구슬만한 배가 탁구공만해지고, 이제 풍선처럼 부풀려져 사과즙도 들어가고, 쌀과자도, 이유식도 제법 많이 들어간다. 그러고도 먹을 것을 더 찾는 크기의 배가 되기까지. 위를 부풀리는 일에는 공히 엄마와 아기의 수고가 필요하다. 하루에 10번씩, 젖을 물어야 하고 또 물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금은 모유도 먹고, 분유도 먹고, 이유식도 먹는다. 그야말로 귀여운 잡식의 시대. 

 

   맨 처음에는 아주 샛노란 색깔의 '초유'가 나온다. '음식'으로서는 최초로 아기의 몸과 장기를 돌며, 앞으로 살아갈 기본 건강을 다져주는 초유. 초유가 몸에 주는 이로움이야 조금만 검색을 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내 글의 역할은 그것이 엄마의 마음에 주는 이로움에 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는 이 최초의 음식을 핑계로 아기로부터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살면서 얼마나 예쁘고 매력이 있은들,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을까. 아기는 한 시간이 멀다 하고 나에게 눈물로 매달린다. 나만 보면 파고들어 안기며 입술을 내미는 상대와의 규칙적이고 또 친밀한 스킨십의 시간. (아기는 엄마의 가슴에 안긴 채로 올려다보면, 엄마의 얼굴 윤곽을 흐릿하게 볼 수 있는 시력을 최초로 가진다. 최초의 행동, 최초의 음식 그리고 최초의 시야까지 모두 엄마의 몫이다. 이런 독보적인 관계가 또 어디에 있는가.) 그 시간이, 나의 경우에는, 오늘까지 277일 동안 이어지고 있다. 샛노랗던 모유의 색은 이제 뽀얗게 옅어졌고, 수유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모유수유 사진을 올리면 좋았겠지만. 모유수유에 대한 글을 올리는 것과, 사진을 올리는 것은 참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아마도 그렇게 살을 부비며, 아기와 엄마는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애틋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이 시간이 있었기에 젖을 떼어도, 서로의 사회생활로 바빠져도, 세대 차이로 다투고, 때로는 서운하고 미워 죽겠어도 끝내 서로의 피부가 기억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기에 나눴던 절대적인 애틋함을. 


     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고, 했고, 또 잘 마치려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글 사이사이에 모유수유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엄마들이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마음에 어떤 티끌이라도 남기는 일이 없길 바란다. 엄마가 아이에게 쏟아붓는 수 없이 많은 마음과 행동 중에 모유를 먹이고, 분유를 먹이고의 선택은 그 어떤 잘잘못도 결정하지 않는다. 


이제 해야할 날 보다, 해온 날들이 더 많은 모유수유. 나의 해방도 너의 졸업도 아닌, 우리 공동의 이별 같기도 하다. 


   아무쪼록. 새까만 새벽에, 잠이 덜 깬 아침에, 맥주 한 캔 따고 싶은 저녁에, 아주 진하게 내린 아메리카노가 생각나는 비 오는 날에, 아기 키우는 일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다고 내숭을 떨다가도 급작스레 아기를 안고 뛰어가야 하는 모유수유실에서, 겨울에도 진땀이 나는 자동차 뒷 좌석에서, 수만 가지의 감정으로 모유수유를 하고 있을 모든 엄마들. 힘내요. 그리고 '나는 엄마가 참 좋아요'라는 오로지 딱 한 가지 본능만으로 오늘도 엄마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모든 아기들. 충분히 잘 먹고, 절대로 아프지 말기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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