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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writes Jan 31. 2017

4. 서른, 엄마가 되어도 엄마뿐.


      엄마가 지어준 뜨뜻한 밥을 먹고, 아빠가 따라주는 술 한 잔을 비운 밤. 부모님과의 시간은 다음날이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단단히 굳어진다. 명절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기차역 플랫폼에 서서, 공항 검색대를 지나며. 나보다 먼저 발걸음을 돌릴리 없는 아빠 엄마가 저 멀리 조그만 점이 될 때까지 나를 배웅해주실 때. 그 순간만큼은 '그래, 뭐든 될 때까지 열심히 해보자.'라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 자식. 나는 '될 때까지'라는 하염없는 지구력을 요구하는 세상을 합리적으로 거절하고, 대책 없이 '열심히'를 외치는 사회는 그 구조에 잘못이 있다고 배운 똑똑한 '요즘 사람'이다. 하지만 아기를 낳아 어떻게든 '될 때까지' 키워야 하는 엄마가 되었고, 어느 하나 '열심히'가 아닌 것이 없는 육아생활에 발을 들인 서른 살이기도 하다.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울 아빠, 엄마도 먼 길 오가는 손녀가 힘들 테니, 영상통화로 간단히 세배하자는 '요즘 할아버지, 요즘 할머니'로서 첫 설날을 보내셨다. 조용한 서울의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얼굴이 그리웠다. 당신들의 통통하고 앳된 삼십 대의 얼굴들이 유난히. 


 아기가 태어난 날. 왼쪽 빨간 그림자가 할머니, 오른쪽 검은 그림자는 할아버지.

 

     아기를 낳고 한 가지 크게 놀란 것은, 나 하나로 엄마와 아빠가 느꼈을 기쁨이 나의 어렴풋한 상상보다 훨씬 컸다는 것이다. 나의 딸이 옥수수알만한 아랫니 두 개를 드러내며 웃고, 소리 내어 방귀를 뀌고, 대변에서 제법 어른의 냄새가 날 때면 나는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보다 더 크게 웃음이 터진다. 그럴 때면, 30년 전의 엄마와 아빠가 나를 보며 터뜨렸을, 수 없이 많은 웃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젊고 통통한 당신들의 웃는 얼굴은 생각보다 횟수가 많고, 그 크기가 무한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토록 완벽한 행복의 이유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구나. 아무 수고 없이도, 누군가의 웃음이 될 수 있었구나. 하지만 그것을 되짚어 깨닫게 되려면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수고가 반드시 필요하다니. 참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게 맞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의 모습. 엄마도 이런 뒷모습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엄마가 되어, 가장 먼저 떠오른 엄마의 모습은 90년대의 백화점으로부터. 기억 속의 그 날은 이미 어둑어둑할 무렵으로, 백화점의 폐장 시간이 연상되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나는 아직 어른들과 눈높이가 맞지 않은 작은 꼬마여서, 매대에 걸터앉아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흔들고 있었다. 앞뒤의 상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내 앞에는 여자아이들이 흔히 갖고 노는 장난감 화장품 세트와 음료수 자판기 모형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점원은 (당연히) 둘 다 얼마나 재밌고 유익한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걸 반은 듣고 반은 흘려보내며 머리로 이런저런 계산을 하는 얼굴이었다. 신기하게도, 여자아이들은 분위기를 통해 상대방이 처한 복잡한 입장을 대충 읽어낼 줄 안다. 여담으로, -나도 들은 이야기지만- 유치원에 다녀온 남자아이에게 "오늘 하루 어땠니?"라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재밌었어." 혹은 "몰라, 재미없어." 둘 중 하나. 하지만 여자아이들은 그날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다 일러주는데, 그 내용이 어른 수준으로 꽤 디테일하다는 것이다. "원장 선생님이 새싹반 선생님을 너무 미워해서, 새싹반 선생님이 불쌍해." 라며, 고용관계가 갖고 있는 불편한 맥락까지 읽어낸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이를 불문하는 여자의 눈썰미라는 우스개 소리인데, 그맘때쯤의 나를 돌이켜보니 그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울 엄마는 시골 동네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피아노가 3대였다가, 2대였다가, 1대가 되었던 날이 기억난다.

    

     아무튼 다시 옛날의 백화점으로 돌아가 보면, 그렇게 모든 미장센이 희미하게 기억되는 와중에 유난히 선명한 장면이 하나 있다. 모형 음료수 자판기 장난감을 눌러보며 제법 그럴싸하게 또르르 굴러 나오는 음료수 캔 모형을 만지작 거리던 엄마. 그 때 엄마가 했던 말, "둘 다 사주고 싶은데." 딱히 점원에게 하는 말 같지는 않고, 설마 나에게 했던 말도 아니고, 결국은 엄마의 혼잣말이었던 그 대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돈이 모자랐을까? 아님, 둘 다 사주는 것은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되돌아보면 지금의 나보다 고작 서너 살 많은 젊은 엄마가 두 개의 장난감 앞에서 주저하며 했던 말이 귀엽고 또 안쓰럽다. 여느 아는 언니 같았더라면 내가 뒤에서 등을 쓰다듬어 줬을지도 모를 일. 둘 다 사주면 안 되었든, 둘 다 사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든, 그런 어른들의 사정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엄마의 얼굴과 백화점의 소음, 어둑하게 짐작되는 시간, 그리고 사실은 내가 먼저 사달라고 단 한 번도 말 한 적 없었던 두 장난감의 반질반질함이 아직도 마음에 선명하다.



아기의 작고 귀여운 디테일을 볼 때마다, 30년 전 나의 그러함을 상상하게 된다.


     아기가 태어난 지 10개월이 되었는데, 책장의 한 칸이 이미 동화책으로 빼곡하다. 높이가 다른 동화책을 한 권 한 권 내려다보며, 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한다. 사실은 아기가 나에게 동화책을 사달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는 것 (아직 말을 못 한다.) 그리고, 나도 그때의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다는 것 (말하기 전에 사줬으니까.) 그 날 백화점의 비싼 장난감 두 개 앞에서 몹시도 망설였던 젊은 엄마는, 나를 똑같은 나이의 또 다른 엄마로 키워낸 할머니가 되었다. 그 30년의 시간 동안 내가 영어 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학비가 비싼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철없이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했을 때, 또 이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했을 때. 그녀는 단 한 번도 장난감 앞에서처럼 망설이지 않으며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라며 주머니를 내어주셨다. 이제 과연, 내가 나의 딸에게 그럴 수 있을까? 나이는 그때의 엄마와 비슷해졌지만, 나는 어느 것도 비슷하게 해 낼 자신이 아직 없다. 아직 없는 게 아니라, 언제라도 그렇게 못할 것 같다. 휴, 엄마가 되어도 엄마는 대단해.  





엄마 이야기만 할 수 있나요. 

다음은, 아빠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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