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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writes Aug 25. 2016

2. 서른, 엄마는 에어컨을 켠다


     뜨거운 여름이 간다. 올여름 계속 에어컨을 틀었다. 아기가 있는 집은 그래야 한다. 아기의 주먹은 아주 조그만데, 고 주먹만한 심장은 성인보다 빠르게 뛰어서 체온은 늘 1-2도가 높기 때문이다. 더위는 땀띠를, 땀띠는 아토피를 부른다. 아직 말을 못 하고, 스스로 긁을 수도 없는 아이에게 피부 위의 간지러움은 아픔과도 같겠다. 그래서 올여름 필사적으로 지켜낸 우리 집의 실내온도는 늘 26도였다. 대단하지도 않은 이 온도를 위해, 가끔 환기시킬 때를 빼놓고는 계속 에어켠을 '켰다'. 더 정확히는 '켜야만 했다'.



     옛날에 아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달을 따달라고 하면 퇴근길에 달 모양 빵이라도 꼭 구해다 주고 싶다고. 그게 자식이라고. 이제 다 커서 딸을 낳아 기르고 있는 내가 그렇다. 그깟 전기세. 어디 나올 테면 나오라고 하라지. 나에게는 실내온도 26도가 더 소중했다. 전기요금 가지고 이렇게 세상 진지할 일이냐만은, 그러게 내 말이 말이다. 이렇게 진지하게 만드는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 뜨거운 여름 어딘가에는 더움을 참아야 하는 아기와, 에어컨을 참아야 하는 부모가 있었을 것이다.



      우는 아기를 달래본 엄마 아빠들은 잘 안다. 우는 아기를 지켜보는 것만큼 마음을 닳게 하는 일이 따로 없다는 것을. 어느 사랑 노래의 가사처럼, 마음 끝이 닳아서 너덜너덜해진다. 아기가 우는 이유를 모르면 모른 채로 마음이 닳고, 이유를 안다 해도 그것을 해결해주기 힘들 때면 또 마음이 시큰하게 닳는다. 겨울이 되면 제대로 된 난방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어김없이 접할 수 있었듯이, 올여름 이 뜨거운 온도로 고생했을 사람들의 사정들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생각 끝에는 우는 아기들과 마음이 닳아가는 부모들이 떠올랐고, 그래서 나의 마음은 단호해졌다.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지금의 가정용 전기 요금 제도를.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제 1의 목적이 아닌, 정부의 고정된 수입을 유지하는 것이 제 1의 목적인 지금의 누진세 제도는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아무리 살 맛이 안 날 정도로 뻑뻑하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달 모양 빵 하나 구해다 주기가 힘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연애, 결혼, 육아를 포기한다고 한다. 사실 이런 뉴스 기사들을 접해온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런 결심들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연애, 결혼, 육아를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리더인 이 나라에서,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하면 위험한 발언이 될까?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직접 달 모양 빵을 구해본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이 하나의 자격이라고 단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사회를 돌아보고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라면, 이 세상 아득한 골목골목마다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사정을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이렇게 더운데 아기들은 더 덥겠지?'  '아기 키우는 집에서는 하루에 4시간만 켜는 걸로는 어림도 없겠다' '에어컨을 맘 놓고 켜두지 못하는 부모들은 얼마나 속상할까?' 아주 기본적인 이 연상작용이 힘들어서는 안 된다.






     서른이 되었고, 엄마가 되었고, 또 가장 더웠던 여름이었다. 이 여름 끝에, 처음으로 나의 다음 세대가 살 세상을 걱정하기도 했다. 나는 여느 엄마들과 다름없이, 오고 가는 계절마다 딸을 위해 달 모양 빵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하나. 이다음 여름에도, 다다음 여름에도, 사회의 복잡한 구조나 구멍난 제도 때문에 달 모양 빵을 구하러 가는 길에서 헤매거나 지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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