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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writes May 11. 2017

사라진 오후 3시

2017년 봄

   아이고. 아이고. 우리는 늘 바쁘다. 오늘 하루만 해도 아이고 소리가 몇 번이나 나왔는지 모른다. 해야 할 일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먹어야 할 음식도, 가야 할 카페도 많다. 그런데 또 봐야 할 것도 많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보고' 있다. 생에 한두 번으로 꼽을 만큼 온 마음을 다해 관찰하는 것이 있고, 매일 물을 마시듯이 자연스럽게 챙겨보는 것도 있다. 슬프게도, 마지못해 꾸역꾸역 들여다봐야 하는 것들도 있다. 첫 번째는 남들과 비슷한 사이로 만나기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감정에, 가장 가까운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겠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저마다의 소식들, 세 번째는 서류나 문제집 혹은 각종 고지서인 경우가 많겠다. 나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관찰을 시작한다. 매일 챙겨보는 나의 얼굴은 평생 보아온 것인데도 질감과 굴곡 그리고 밀도에 차이가 있다. 맑고 보드라운 날이 있는가 하면, 거칠고 파삭한 날이 있다. 옷의 매무새도 매일같이 다르다. 나는 옷을 심심하게 입을 때, 가장 나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거울 속의 나는 흰색, 회색, 남색 혹은 검은색 중에 하나를 입고 있다. 머리는 주로 낮고 동그랗게 묶는다. 그런데도 옷을 입고, 머리를 묶은 모습에서 매일같이 다른 점이 관찰된다. 그래서 더욱 세밀하게 보게 된다.


서울의 오후도 좋은 빛을 갖고 있다. 어느 날은 외국 못지 않다.


   내가 나의 얼굴만큼이나 자세히 봐온 것은 바로 시간일 테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매년, 매달, 매주, 매일, 매시간, 매분, 어떤 때는 매 초마다 시간을 관찰해왔다. ‘바람 끝이 뭉툭해졌네. 곧 봄이 오겠다.’ ‘11월에는 일이 손에 안 잡혀.’‘31일이구나. 어쩐지 바쁘다했네.’‘아 월요일은 역시 기분이 거지 같아.’‘4시만 되면 배가 고프다니까.’ ‘망했어. 30분이나 지났다.’ ‘10초만 더 버티고 쉬자.’…. 몇 살 때부터 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눈 앞에 두고 보듯 뚜렷하게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지 모를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시간이 가진 성격과 분위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관찰하고 있다. 봄이 가진 보드라움과 11월이 가진 싱숭생숭함. 31일이 가진 어수선함과 월요일이 가진 피로함, 그리고 오후 4시가 주는 시장기. 30분은 속을 새까맣게 태우는 반면, 10초는 엄청난 성취감을 가져다준다는 것까지. 나는 이렇게 시간이 가진 질감을 들여다보는 것을 즐긴다. 카피라이터로서 아이디어를 만들고 글을 쓸 때도, 시간을 관찰하며 알게 된 것들을 많이 활용했다. 하루를 몇 분절로 쪼깨어 들여다보거나, 계절이 흘러가는 모양새를 써내려 가다 보면 좋은 힌트들이 떠올랐다.


빛을 자세히 보면, 시간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 가진 여러 매력 중에 내가 최고로 꼽는 것은, 지나가버려도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들 시간은 한 번 흘러가버리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어 야속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시간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봄이 가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마치고 나면, 봄은 어김없이 봄의 자리에 돌아와 있다. 인간은 계절의 가장 보드라운 부분을 따로 구분해서, ‘봄’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그렇게 봄을 봄이라고 부른 최초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봄이 돌아오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하루도 그렇다. 아침으로 시작해, 오전과 오후를 지나 저녁을 맞고 밤을 만나면 곧 새벽이 찾아온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와 보면 아침 아홉 시는 아침 아홉 시의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 아침을 보내는 나의 모습이나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을 뿐이다.


어제도 이 시간은 이 자리에 있었다. 물론, 오늘도 내일도.

   아침은 늘 어디론가 나서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그 목적지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회사로 변했을 뿐이다. 오전도 그렇다. 주로 어떠한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기합을 불어넣으며 몰두하는 시간이었다. 역시, 바뀌고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이름 대신 불리는 명찰 정도가 아닐까. 어린이였다가, 학생이었다가, 대리님 혹은 선생님….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 엄마라는 명찰을 하나 더 얻었다. 대단히 영광스러운 명찰이라 생각한다. 엄마의 오전은 그동안 내가 가진 그 어떤 명찰로 지내본 오전들 중에 가장 커다란 에너지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 어떤 명찰보다 보상 또한 빠르다. 아이는 기분이 좋을 때면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웃는다. 나는 단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근심을 잊는다.



어쩌다 저녁은 이렇게 억울한 시간이 되었을까.


   저녁과 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마음이 조금 억울해진다.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시간들이기도 하다. 쉽게 누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바라는 모든 이들처럼, 나도 어렸을 때나 누려보았던 그 시절의 저녁과 밤을 사랑한다. 참으로 저녁다운 저녁이었고, 밤 같은 밤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사무치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식구들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엄마가 만든 오징어볶음이나 수제비를 먹던 저녁. 밥공기를 싹싹 긁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가족들에게 일러주던 그 저녁. 후식으로 사과를 먹으며, 다 함께 뉴스를 보던 저녁. 아빠와 엄마가 혀를 쯧쯧 차기도 했고, 소리 내어 웃기도 했던 저녁. 아, 밤은 또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른다. 내일이 오는 것이 그저 즐거울 뿐이었던 나이에는 더욱 그랬다. 라디오를 켜놓고, 디제이의 목소리가 가진 결 하나하나에 집중하던 밤이 많았다. 오늘도 만났고, 또 내일이면 만날 친구들에게 ‘교환 일기장’을 쓰던 밤. 읽고 싶은 책을 졸릴 때까지 읽던 밤들. 그러다 자면 그만이던 밤들.


아침에서 오전을 지나 오후로, 그리고 저녁과 밤으로. 당연하던 시간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다.


   어느 때부턴가 나는 이렇게 저녁과 밤을 추억 속에서나 헤아려본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저녁과 밤을 주로 억울한 마음으로 보냈다. 저녁을 저녁답게 보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늘 쩔쩔맸고, 그러다 밤을 맞으면 초조해졌다. 그런 부당한 밤조차도 지나가는 것이 아까웠다. 또다시 파이팅을 외쳐야 하는 아침이 돌아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어쩌다 야근이 없어, 저녁과 밤을 온전히 누린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로또에 걸린 듯 감사했다. 거 참 생각할수록 치사하다. 하루의 한 바퀴를 돌며 당연히 만나야 할 시간들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다니... (이후, 인쇄된 책으로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작년, 브런치에 올린 몇 개의 글들이 저를 참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출판을 목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쓴 "사라진 오후 3시"는 아마도, 책의 첫 챕터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딸에게 말하듯 쓰지 않고, 모두에게 말하듯 썼습니다.)

나머지 글도 부지런히 써야 하는데

마음처럼 착착착 앞으로 나가질 않습니다.

혹시 누군가 좋은 마음으로 기다려준다면

더 속도를 내어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일부를 올려봅니다.

자꾸 드러눕는 나의 마음과 생각이

후딱 일어나서 좀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sol.ra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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