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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writes Mar 17. 2016

홍콩의 오후 3시

2008년 겨울



안녕, 딸!

오늘은 홍콩의 오후 3시로 이야기를 꺼내볼게.

홍콩은 아주 복잡한 곳이야.

중국 조금, 영국 조금, 뉴욕 조금.

다양한 컬러가 조금씩, 한꺼번에 느껴지거든.

조만간 엄마와 함께 가보자.

가깝고 또 재미있는 도시니까.

혹시 엄마가 예상치 못한 속도로 네가 커버려서,

벌써 엄마보다 친구가 더욱 편한 나이가 되었다면

마음이 아주 잘 맞는 여자친구들과 함께 가는 것을 추천할게.


엄마와 친구들은, 이 사진을 찍고나서 하루 종일 웃었다. 사진 하나에도 깔깔대며 뒹굴던 철없는 오후 3시.


마음이 아주 잘 맞는 여자친구라...

말은 쉽게 꺼냈지만

생각은 길어지는 그런 말이구나.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은 아주 어려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네가 언제쯤 나의 마음을 또박또박 이해하며

이 글을 읽을진 몰라도

여자들에게 여자친구란,

특히나 마음이 아주 잘 맞는 여자친구란

슈퍼에서 과자 한 봉지를 사듯이

쉽게 구해지는 것이 아니란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고, 나이가 들수록 말이야.

그러니 인생의 어느 한 대목에서라도

자석처럼 끌리는 좋은 친구를 만난다면,

절대로 놓치지 말렴.

반복해서 말해두지만, 마음이 꼭 맞는 친구란

슈퍼에서 과자 한 봉지를 사듯이

쉽게 구해지는 것이 아니니까.



엄마는 쑤마 이모, 에이미 이모와 함께 홍콩에 갔었어.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여자친구들이었고,

되돌아볼수록 좋은 선택이었단다.

때론,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한 게 여행이거든.

스무 살 때부터 우리는 둘둘씩, 서로서로

같은 집에서 살아봤을 정도로 친한 친구들이지.

늦잠을 자고 일어난 못난 얼굴부터,

저녁 데이트를 나갈 때의 유난한 차림까지.

싱그러운 대학생일 때부터,

피곤하고 지친 직장인인 지금까지도.

그 모든 것을 곁에서 서로 지켜봤지.

예쁜척할 필요도 잘난 척할 필요도 없는

쑤마 이모, 에이미 이모와 함께

웃고 떠들며 보낸 홍콩의 오후 3시.

엄마는 그때가 참으로 좋았다.

곁에 있는 친구와 함께 보낸 70점짜리 하루와

홀로 버텨낸 100점짜리 하루.

어느 것을 살라고 강요할 순 없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알게 될 거야.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70점도 꽤 즐거운 점수라는 것을.



홍콩의 오후 3시는 유난히 빠른 템포로 흘러갔어.

빼곡한 간판들 아래로, 사람들의 걸음은 바빠지고, 언성도 높아지지.

높고 빠르게 발음되는 그들의 언어 때문일까?

한적한 바닷가에 일없이 떠도는 물결도

왠지 빠른 템포로 움직이는 것 같았어.

모든 것이 홍콩이라는

커다란 박자 안에서 흘러가나 봐.

하지만 우리는 홍콩이라는 도시가 주는

빠른 템포에 재촉당할 필요가 없었단다.

아주 천천히 느린 템포로

중국 조금, 영국 조금, 뉴욕 조금.

그렇게 홍콩 전체를 둥둥 떠돌며 오후 3시를 관찰하면 된단다.

그것이 바로,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오후 3시의 기쁨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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