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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writes Mar 29. 2016

방콕의 오후 3시

2013년 여름

안녕, 딸! 이제 봄이고, 곧 4월이다.

네가 태어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니 놀랍다.

오늘은 방콕 이야기를 해줄게.

방콕의 오후 3시는 매캐한 공기로 설명할 수 있어.

방콕은 우리로 치면 서울에 해당하는

커다랗고 바쁜 도시이기 때문이지.

차도 많고, 오토바이도 많고, 사람도 많아.

사람들은 바쁘게 말을 쏟아내고,

자동차는 바쁘게 매연을 쏟아낸단다.

그래서 방콕의 첫인상은 조금 당혹스러울 수 있어.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나와 눈을 마주대고 이야기하기보다

스마트폰을 보며 스케줄을 체크하고

문자를 주고받고

회사에서 온 전화라서 꼭 받아야 한다며

자리를 잠깐 비우기도 하는 그런 느낌이지.


하지만 음식이 나올 때쯤 대번에 깨닫게 되지.

그 사람은 정말로 바빠서 그랬을 뿐,

실은 아주 구수하고 상냥한 사람이라는 것을.

1박 2일쯤 지난 뒤 방콕에서 마주칠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미소를 잃지 않고,

상냥하게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넨단다.

까.따.빠.꼬. 하는 소리로 끝나는

귀여운 태국의 언어는

특히, 인사를 할 때면 그 끝소리가

살짝 들어 올려지는데,

열국에 이제 막 발을 디딘 이방인들도

그 인사를 따라 하며 웃게 되는 걸 보면

그들의 언어에는 노래 같은,

아니면 주문 같은 힘이 있나봐.

그들은 왜 그렇게 상냥한 걸까?

매연같이 바쁜 일상에 지쳤을 법도 한데 말이야.


이렇게 잘 웃는 방콕 사람들을 보면

깨닫는 바가 있을 거야.

세상과 하루를 대하는 태도 같은 것 말이야.

엄마는 그렇게 믿고 있거든.

예쁘게 웃어 보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선물도,

또 강력한 무기도 없다고 말이야.

모두가 지루하고, 심각하고,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을 때

티 없이 환하게 웃는 사람이 등장하면

창문을 활짝 열어둔 것처럼

공기가 상쾌하게 바뀌지.

엄마는 그럴 때, 시장기 같은

패배감이 느껴지기도 해.

저쪽이 저렇게 찬란하게 웃으며

이 모든 것을 가볍게 즐겨내는 동안,

왜 나 혼자 잔뜩 찌푸린 못난 얼굴을 하고 있지?

마치 게임에서 진 것 같은 그런 마음까지 들더라고.



살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을 거야.

친구들이 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선생님께 혼날 수도 있고,

준비물을 깜빡해서 창피를 당할 수도,

성적이 점점 내려갈 수도,

어떤 남자에게 마음을 거절당할 수도,

시험에서 떨어질 수도.

하지만 슬퍼하지 말기를 바라.

엄마가 책에서 읽었는데 말이야.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될 순 없지만  

그 언제라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딱 하나 있대.

바로, 그 모든 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나의 소녀는

때때로 매연 같은 오후 3시 앞에서도,

방콕 사람들처럼

활짝 웃어 보이는 힘을 갖고 있기를 소원해본다.

웃음을 가졌다는 건,

모든 것을 가졌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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