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비스킷은 템즈강물 같이 우울해
프랑스 어느 도시의 슈퍼마켓을 가든, 과자 코너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는 과자는 단연 빨간 바탕에 흰색 글씨로 크게 루 LU라고 적힌 과자가 아닐까?
강렬한 빨강과 대비되는 선명한 글씨는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과자들 사이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이 비스킷의 고향은 프랑스 서부의 항구도시 낭트(Nantes)다. 1846년, 낭트의 파티세리에서 출발한 루 LU는 창립자인 Lefèvre(르페브르)와 Utile(우틸) 부부의 성 앞글자에서 따온 이름에서 출발했다. 이 작은 브랜드는 낭트의 지리적 풍요 속에서 대규모 비스킷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루아르 강이 흐르고 대서양과 맞닿은 도시 낭트는 이미 중세시대부터 상업으로 발달한 도시였다. 식민지 개척이 활발해진 18세기 이후, 낭트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프랑스 노예무역의 거점이자 상업의 중심지로 발달했다.
이 시기 발달한 항로와 항구를 통해 들어온 설탕과 향료, 그리고 풍부한 지역 농산물을 기반으로 낭트에는 각종 산업이 발달하게 되고, LU(Lefèvre-Utile)와 BN(Biscuiterie Nantaise) 등의 공장이 설립되며 비스킷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했다.
밀, 설탕, 버터 등 비스킷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낭트에 비스킷 공장이 세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르페브르-우틸은 1880년대부터 낭트에 비스킷 공장을 세워 부르주아를 대상으로 한 고급 비스킷을 생산하기 시작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LU는 단순히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시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19세기말,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가 비스킷 패키지와 홍보 포스터를 위해 우아한 일러스트를 그렸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거대한 등대를 세워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지금의 로고는 1956년 레이먼드 로위가 디자인한 로고로 70년이 다 되어가는 디자인이지만, 오늘날의 감각으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세련미와 한눈에 들어오는 가시성을 가지고 있다.
LU의 빨간 로고를 가진 수많은 비스킷 중 근본 중의 근본은 바로 쁘띠 버터(Véritable Petit Beurre). 지금도 여전히 낭트 근처 마을에서 생산하고 있는 이 비스킷은 오랫동안 프랑스 내 비스킷 판매량 1위를 자랑하기도 했다.
루 LU를 프랑스 국민 과자로 끌어올린 쁘띠 버터의 작은 사각형안에는 많은 은유가 숨겨져 있다. 4개의 모서리는 사계절을, 가운데 뚫린 24개의 구멍은 24시간을, 그리고 그 사이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52개의 작은 돌기는 1년 = 52주를 의미한다고 한다.
비스킷 하나에 이토록 집요하게 ‘시간’을 새겨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쁘띠 버터가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 하루, 한 주, 계절을 넘어 프랑스인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숨 쉬듯 영국 음식을 돌려 까는 프랑스이지만, 이 국민 비스킷이 영국 비스킷에서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는 아이러니는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를 보여주는 예시가 아닌가 싶다.
비록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누텔라 비스킷이나 바이오치 같은 자극적인 단맛을 가진 비스킷이 인기라지만, 프랑스인들에게 LU는 대체 불가능한 일종의 컴포트 푸드가 아닐까 싶다. 오후 4시, 파란 패키지의 밀크 초콜릿이냐, 빨간 패키지의 다크 초콜릿이냐를 두고 고민하게 되는 쁘띠 에꼴리에(Petit écolier)까지.
이 작은 비스킷들이 품고 있는 버터의 풍미는, 그 깊은 역사만큼이나 여전히 짙고 고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