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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마이너 Jan 26. 2021

수압이 약하니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주세요.

괜히 하는 말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도 해외의 어느 나라들처럼 많은 화장실에서 쾌적함을 위해 휴지통을 없애버렸다. 그런 화장실 문화가 몇 년 사이 빠르게 확대되었고, 이제는 대부분의 공공 화장실에서는 휴지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도 그 변화된 환경에 빠르게 익숙해져 갔다. 그런데 반면, 여전히 "수압이 약하니 제발 휴지를 휴지통에 버려주세요."라며 신신당부하는 화장실들이 곳곳에 여전히 많이 남아있기도 했다.




현재 내가 다니는 회사의 건물은 서울의 중심부인 광화문에 위치한, 완공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매우 세련되고 큰 건물이다. 그런데 그 화려한 외관과 달리 건물로 들어와 화장실로 가보면 칸마다 곳곳에 " 수압이 약하니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주세요." 하는 의외의 문구들이 붙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정도 규모라면 뭐든지 that's okay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이 건물의 변기들이 휴지 조각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수압이 약한 것과 건물이 화려한 것은 상관관계가 없을 텐데도 나는 겉모습이 화려하면 모든 것이 완벽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한 날에, 나는 그 안내문을 다시금 곰곰한 눈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곧 '아, 사람도 마찬가지겠구나,'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수압이 강한 사람이 있고, 나처럼 수압이 약한 사람이 있구나. 휴지를 둘둘 말아 넣어 넣어도 시원하게 꿀꺽 삼켜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고, 겨우 몇 조각에도 힘겹게 소화해야 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뿐만 아니라 당장은 내려가는 것 같아도, 조금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이고 있다가 언젠가 한순간에 역류하며 토해내는 경우들도 있고.'


수압이 약한 환경에 자리를 잡게 된 변기. 그 변기가 잘못한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압이 약한 것은 그 건물의 흠이나 아쉬운 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작은 부분 때문에 이 건물 자체가 나쁜 건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수압이 약한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만큼 좋은 무언가들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인은 미리 약함을 인정하고 그 약함으로 인해 당신이 불편하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수압이 약하니 휴지는 여기 주지 말고, 휴지통에 버리시라고. 조금 번거롭고 힘들어도 우리는 당신이 불청결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기꺼이 자주 찾아와서 깨끗이 치워줄테니.


그런데 몇몇의 사람들은 그 주인의 안내문을 보고서도 자기 판단에 따라 '에이~ 그래도 이 정도는 그냥 내려가지 않겠어?' 하며 변기에 휴지를 그냥 넣어버리기도 한다. 그 사람은 주인의 당부 따위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엄살일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르고. 일부의 사람은 그렇게 그저 자기의 편리만을 생각한다. 변기가 되어 보는 오늘이 오기 전까지, 내가 그랬던 것이다.


나는 수압이 약한 변기가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이기적임을 가지고서 내 소화능력이 부족하다고 매번 탓하며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안내문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이렇게 하면 이러이렇게 돼요.'라고. '여기 휴지통을 가져다 놨으니 많은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줄 거야.'라며 생각하는 그것도 미숙한 판단이다. 나의 상태를 알고,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상대방에게 정중히 요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랬을 때 주인의 당부를 무시하는 몇몇 사람도 있겠지만 주인의 안내문을 꼼꼼히 읽으며, 거기에 맞춰 따라주는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배려심 있는 몇 사람 덕분에 오늘도 무탈할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이처럼 사람은 모두가 각자 가진 환경 안에서 거기에 맞는 과제를 풀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를 스스로 만들어 보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행복을 찾아보기도 한다. 이건 동물적인 본능이다. 육식 동물은 위험하고 힘든 과정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사냥을 하며 먹이를 구해야만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안에 갇혀 누군가가 먹기 좋게 손질하여 시마다 때마다 끼니를 챙겨준다고 해서 행복을 느끼지 않는 것이 육체를 가진 동물들의 성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곳곳에 난관이 있어야만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영화에 늘 갈등이 존재하는 이유도 우리의 그 성취감과 행복감을 자극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각자가 가진 연약한 환경을 두고서 밉다고만 말하지 말자. 이런 작은 걸림돌이 없었더라면 더 좋은 관계를 위해 무엇을 노력해야 할지, 더 좋은 사냥감을 구하기 위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33년을 이 몸으로 살고난 후에야 안내문을 갖다 붙였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간 봐왔던 것과 상당히 대조되는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날의 나는 수압이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살았고, 그런 척 흉내를 냈다. 그리고 토 해내고야 말았던 날들이 있었지만, 청소를 대충 마치고서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새로운 사람을 맞이했다. 과정은 반복되었다. 토하는 과정을 본 사람은 이게 뭔 일이람?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수치스럽던 나는 그 사람과는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져버리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을 여러번 반복하고 난 현재는, 모든 관계는 이별하기 마련이지만 서로 질겁하며 이별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건강한 이별을 연습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수압이 약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꼭꼭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달라고 나의 소리를 내어보기 시작했다. 앞에 마주한 그 사람을 오래 보고 싶었고, 훗날에 웃으며 이별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써 붙인 후에도 분명 변기에 휴지를 던지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한 사람에 대한 미움을 키워가기보다는 나를 아껴주는 여러 사람에 대한 고마움에 더욱 집중해보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주인이 짠- 하고 꼭 맞는 가압펌프를 사와다가 선물로 달아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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