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만난 예술가
대기업에 다니던 때가 있었다. 대기업에 주 5일 매일 아침 7시부터, 하루에 9시간씩 다녔다. 매일 다니는 그곳은 대기업이지만 사실 소속된 회사는 사무실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작은 하청 업체였다. 그곳에서의 나는 쇼핑 카트를 층별로 끌고 다니며 카페테리아에 간식을 비치하는 업무를 담당했고, 이곳엔 같은 하청업체 소속 직원으로 25살 된 안내데스크 여직원 두 명이 더 있었다.
같은 회사의 소속이고, 같은 공간을 공유했지만 사적인 대화를 자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는 일이 서로 달랐고, 귀찮게 구는 나이 많은 여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저 먹을 것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먹고 간간히 별로 대수롭지 않은 회사 험담이나 조금씩 주고받는 옆 집 이웃 같은 사이었다. 그저 내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희원이라고 하는 친구는 씩씩하고 부지런 떠는 성격, 은유라고 하는 한 친구는 온유하고 여유가 넘치는 성격이라는 것. 겨우 그 정도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한 날에, 책상에 앉아 발주 목록 정리를 하다가 일하는 희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모습이었지만, 그날 희원의 모습 앞에 말이 흘러나가게 허용해보고 싶었다.
“희원씨! 나는 회사원들, 모든 직장인들이 존경스러워요. 어제랑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일을 내일도 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매일 같은 사람을 만나고. 그걸 몇 년씩이나 길게는 수십 년씩 반복하고. 나는 정말 그런 사람들이 대단해 보여요.”라고 뜬금없는 말로 창고 같은 사무실의 정적을 깨고 나왔다.
그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나는 매일 반복되는 이러한 패턴이 가끔은 정신병에 걸려버릴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일에 취약했다. 성격이 침착하지 못해, 차라리 변수들과 싸우고 역동적으로 사고하는 편이 훨씬 편안하게 느껴지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반면, 그 친구는 늘 같은 일에도 항상 안정감 있는 마음으로 일하는 듯이 보였다. 나와는 달리 이러한 반복 과정에 충분하게 만족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희원은 하던 일을 멈추고 서서 웃으며 내 말에 대답했다.
“그러게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나는 그 친구가 늘 성실해 보이기도 했기에 “희원씨는 아마 회사 체질인가 봐요!”라고 다시 말했다. 희원은 “그런 것 같아요.”라는 짧은 대답을 내뱉는 동시에 잠시 골몰히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금방 정리가 되었는지 다시 내게 말을 건네 온다.
“사실 저는 피아노를 오래 했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가 너무 좋아서 했어요. 피아노가 너무 좋아서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그런데 그렇게 피아노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까 지금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때는 불확실성 때문에 늘 불안해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검은 스틸레토 힐을 신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을 모습이 그에게 제법 잘 어울려 보였다.
“아! 정말요? 전혀 몰랐네. 오랫동안 했을 텐데, 아쉽거나 하지는 않아요?” 라며 내가 물었고, 그 친구는 “너무 좋아해서 아쉽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그렇죠. 사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건, 그게 미워질 정도로 해야 하는 거니까.”
“맞아요, 저는 그럴 자신은 없었어요. 그 미워지는 걸 이겨내서 좋은 성과를 얻을 만큼 잘한다면 모르겠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전 지금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피아노는 뭐 언제든지 칠 수 있잖아요.”
희원은 꿈을 포기한 사람처럼 내비쳐지는 것이 두려워 그동안 지난날의 일들을 회사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이력서에도 관련된 내용은 모두 지워버렸다고. 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 친구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그의 지난 스토리에 푹 빠져들었고, 과거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엔 그가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라라랜드의 이야기로 서로를 위로했다.
“희원씨 라라랜드 좋아한다고 했죠? 저도 라라랜드를 엄청 좋아해서 몇 번을 다시 본지 몰라요. 저는 그 영화가 다른 방향으로 돌아선 사람들에 대해 포기라는 단어로 설명하지 않는 게 좋았거든요. 오히려 그들에게 박수 쳐주는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는 다양한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거예요!”
희원은 꺼냈던 이야기를 후회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거렸다. 그의 끄덕거림에 안심한 나는 다시 일어나 직원들에게 오후 간식으로 제공할 구운 달걀 다섯 판을 손에 들고서, 있던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희원도 다시 무거운 서류더미와 택배를 번쩍 들어 올리며 홀로 옮기고 있었다. 그를 지나쳐 걸어가다 다시 뒤돌아서 희원의 마른 뒷모습을 잠시동안 바라다보았다. 묘하게도 그녀의 모습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들의 얼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난 5년, 이렇게 파견근로자로 세 곳의 대기업을 다닌 나는 화려한 백업댄서의 삶을 접고 보안팀 팀장이 된 사람을 만났었고, 의류 디자이너로 오랜 기간 근무를 하다가 미화부 직원이 된 사람을 만났고, 무명 개그맨으로 살아가다 보안직원이 된 사람과 영화를 만들다가 안내데스크 사원이 된 사람을 만났었다. 각자 하는 일과 나이 성별 먹는 것 사는 곳 모든 것이 달랐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공통된 무엇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이 무언지 알아차려지는 순간, 달걀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서서 손뼉이 부서져라 박수 치고 싶어졌다.
나의 온 마음은 노동하는 예술가를 향해 찬사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 찬란한 아름다움에 얼굴 속에서 잠잠케 머물러 있던 눈물까지 움찔대며 올라오려 했다. 예술을 사랑하는 만큼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삶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들. 나는 예술가라는 명칭이 그런 사람들에게라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모두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온몸으로 견뎌본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그들 앞에서 예술에 대해선 조금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직장인으로서도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느꼈다. 그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조명이 있는 무대 위의 사람이기보다, 매일 꾸준히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진솔하게 땀 흘리는 농부의 모습에 가까웠다. 내가 희원을 향해 말했던 '직장인 체질'이라는 말을 다시 돌아가 지우개로 지워버리고만 싶었다. 그 단어보단 성실한 체질이라는 말이 훨씬 더 적합했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예술가라면 여유 있게 본인이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자유의 아이콘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선망했고,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는 시름시름 앓았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야 진정한 예술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예술가, 춤을 추는 예술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도예를 하는 예술가, 조각을 하는 예술가, 영상을 만드는 예술가, 음악을 만드는 예술가, 악기를 연주하는 예술가. 예술가라는 명사를 가질 수 있는 자격시험이 있다면 그 항목은 기발함, 천재적임, 화려함이 아닌 우직함, 꾸준함, 성실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가라고 인정되는 지난 시절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 무대 위로 한 사람, 한 사람 걸어올라 왔다. 그들을 향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한참 동안이나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무대 위로 올라온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았다. 그들이 만들어 낸 작품은 미술관, 극장, TV, 서점을 향해 가고 있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충분하게 빛나고 있음이었다.
희원은 이후 안내데스크의 일을 정리하고, 정식으로 사무실 속 직원이 되기 위해 다른 회사에 입사지원을 했고 최종 합격을 했다고 했다. 나 역시 그 후로 예술가로 향했던 긴 방황의 길에 마침표를 찍었고, 정식 회사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