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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Feb 19. 2016

나의 이상한 회사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슬프다, 내가 일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책 서평과 출판사 행사 취재, 공연 리뷰, 영화 리뷰, 귀찮아도 꼬박꼬박 쓰던 단신 등 글 쓰는 일로 돈 벌게 해 준 온라인 신문사 a는 굴지의 대기업이 모체였음에도 쫄딱 망해 사라졌고,


지금의 사나이픽처스처럼 잘 나가는 상남자 영화들 줄줄이 찍으시던 k감독님 영화 전속 홍보사였던 b는 내가 퇴사하고 몇 년 뒤 대표가 바뀌고 애니메이션 영화 전문 홍보사로 바뀌더니 지금은 소식조차 알 수 없다. 회사는 사라졌지만 그때 메일링 받던 영화 보도자료는 아직도 매일 아침마다 잘 읽고 있다. 그리고 그때 배웠던 보도자료 작성법은 훗날 출판사에서 프레스용 보도자료 쓸 때 유용하게 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무슨 시킬 일이 있다고 날 뽑은 건지 알 수 없는 영상제작회사의 공식적인 이름은 총 세 개였다. 하나는 한글, 하나는 중국어, 하나는 애니메이션 사업을 위한 영어 이름. 나는  그곳에서 2년 동안 무슨 일을 했던가? 회사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사업을 맡아 엉망으로 진행하거나 혹은 아무 하는 일 없이 무기력하게 사무실 난방만 돌렸다. 몇 달치 월급이 밀리기 시작하자 나는 회사를 나왔고, 회사는 애니메이션 사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을 접었다. 세 가지 이름 중 두 개가 사라졌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 알게 된 분이 같이 일을 하자고 꼬드겼다. 본격적인 일거리를 따내려면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고 해서 몇 달 동안 같이 작업했다.  그중엔 알바를 겸해서 돈을 주겠다고 한 작업도 있었고 국가사업을 따내기 위한 포트폴리오 영상도 있었는데 작업만 했지, 그걸로 돈 벌 수 있는 일은 못 따냈다. 나는 알바비 20만 원이 3개월 넘도록 통장에 찍히지 않자  그분께 공식적인 bye를 외쳤다.


그리고 출판사! 이 출판사는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이 기운은 내가 지나온 모든 회사가 뿜던 그것과 몹시 비슷하다.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없으면서 이 고비만 지나면 우리 모두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를 쪽쪽 빨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 믿으라며 교도하는 이상한 곳! 나는 마침내 대한민국 모든 회사가 이렇게 허술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모든 회사는 결국 사그라지기 마련인 게 아닐까 라는 우울함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런가? 우리는 다 이상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인가?


* 모두 다 알고 있겠지만 "슬프다, 내가 일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구절은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 시의 첫 구절을 변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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