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다. 이 좁고 어두운 공간이 내 세계다. 공격도, 방어도 없는 단조로운 고요. 굶주림을 느낄때쯤 희미한 불빛과 함께 음식이 던져진다. 고소한 냄새. 서두를 필요는 없다. 한참 냄새를 느끼다 천천히 입을 벌렸다.
배는 고프지만 씹을 수 없어서 통채로 삼켰다.
찢어질 듯 벌려진 턱뼈를 지나 고소한 뭉텅이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토악질을 되감기하듯 서서히 덩어리가 들어가는 감각,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느릿느릿 머리를 흔들었다. 충분할 만큼 내려가고 나자 들이차는 포만감에 몸을 한 번 쭉 뻗었다. 여느날과 똑같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조금은 달라진 공기가 느껴졌다.
위잉 위잉 어디선가 날개 달린 벌레가 날아왔다. 지금은 한 마리지만 머잖아 떼로 늘어날것이다. 어쨌든 지금 나는 배가 부르다. 몇 번 혀를 날름이고는 감각을 사방으로 확장했다. 고요한 밤이다. 가끔 느껴지곤 하는 불빛이 오늘따라 강하다.
본능적으로 희미한 불빛에 이끌려 따라갔다. 날벌레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미끈한 바닥을 지나 요철이 심한곳에 도착하자 선선한 바람이 훅 불어온다. 눈앞을 가로막은 공간에 찰싹 달라붙어 여기저기 코로 찔러본다. 이윽고 찾아낸 구멍속으로 스르륵 빠져나갔다.
중력과 줄다리기하며 거칠은 외벽을 서둘러 내려갔다. 오늘이야, 오늘인가 봐. 드디어 그 어둡고 답답한 곳을 벗어나나봐! 그렇게 생각한 순간 벽을 잡고 있던 몸에 힘이 빠지며 낙엽더미 위로 툭 떨어졌다. 건조한 낙엽 아래 축축한 흙이 기분 좋다. 공연히 허리를 한 번 움직여본다. 찬 흙에 닿을 때마다 피가 차가워진다. 정신없이 주위를 살피는데 개미 떼가 열심히 무언가 옮기며 내 허리께를 간질인다. 멀리서 물 내음이 느껴졌다.
꼬리를 한 번 부르르 흔들고 머리를 뒤로 슬쩍 당겼다가 정면을 향해 쭉 뻗었다. 빠른 속도에 개미들이 떨어져 나갔다. 파사사삭 소리를 내며 낙엽들이 길을 비킨다. 모든게 낯설다. 튕기듯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바뀐다. 쉴 새없이 혀로 주변을 살피며 온 몸을 굽혔다 뻗어나간다.
이윽고 바라던 물가에 도착했다. 한참을 물가에 진 나무그늘 아래서 서성인다. 얼마나 깊을지, 위험한 것은 없을지. 허리에 물기운이 스친다. 차가운 온도에 깜짝 놀랄 새도 없이 잡고 있던 나무토막과 함께 새파란 호수로 굴러 떨어졌다. 풍덩! 순식간에 찬 물이 들이닥치고 서둘러 바닥을 찾았다. 꼬리와 허리 아래 힘으로 호수의 바닥을 힘껏 누르고 얼굴을 물 밖으로 꺼냈다.
잠깐 그러고 있자 물살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내 호수가 깊지 않음을 깨닫고 살금 살금 이동한다. 거대한 바위에 배가 닿은 순간 채찍처럼 몸을 휘둘러 위로 더 위로 올라갔다. 어두운 공간에 몸을 포개어 누웠다. 여긴 또 어디지? 사방이 바위로 둘러싸인 좁은 곳은 쿰쿰한 냄새가 느껴졌다. 따듯한 바위에 몸을 기대자 차가워졌던 몸의 체온이 서서히 올라간다.
고개를 불쑥 내밀어 주변을 살핀다. 멀찌감치서 들려오는 소음들, 그러나 주위는 고요했다. 호수 표면에 무언가 휙휙 움직이는게 보인다. 한껏 경계하며 다가가자 자그마한 머리통이 마주하고 있었다. 새빨간... 뱀의 머리통이다. 기겁하여 뒤로 달아나자 뱀도 달아난다. 혀를 낼름거리는 모양도 똑같이 따라한다. 궁금하여 물가로 다가가보니 뱀도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 노려보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호수의 표면에 비친 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