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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Aug 20. 2019

내가 다시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그렇게 되고 만다면

  유군과 나는 한 회사의 입사 동기로 2008년도에 처음 만나 2009년부터 연인으로 발전하여 2013년도에 결혼을 했다. 내가 29살, 유군이 28살일 때부터 시작된 연애 기간 동안 우리는 각자 여러 번 신상에 변화를 겪었다. 둘 다 입사와 퇴사를 했고, 유군은 시만 쓰고 나는 공부만 하던 백수의 시기도 있었고, 또 이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상황이 급변하다 보면 그때마다 대부분의 관계에는 한 번씩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물론 우리 역시 크게 흔들린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상황들은 무난하게 극복했다. 5년여의 시간 동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시작부터 같은 세대이기 때문에 느끼는 일종의 동지애가 있었다. 만만하지 않았던 첫 직장 생활의 시작도 함께 했고 그저 회사 동료로서 한동안 각자의 연애를 지켜보던 시기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이성으로 사귀기 시작한 이후에도 이 사회 안에서 각자 어른으로서 한 뼘씩 더 크느라 서로에게 뭔가를 강요하거나 집착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각자의 성장 과정을 함께 했다. 그러다 결혼 역시 너무나 당연한 인생의 다음 단계라는 듯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결혼 이후에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대부분 결혼을 했으니 이제 상대와 길게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우위에 서겠다고 피 터지게 싸운다는, 이른바 신혼 초의 ‘기 싸움의 과정’이 전혀 없었다. 물론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나니 무슨 옵션처럼 전에는 전혀 모르던 사람들과도 가족으로 함께 묶이게 되었지만, 또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러한 변화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둘 다 이전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서 말하고 행동했다.

  그런데 2016년도 9월, 우리에게 그 일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맺은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가 어처구니없게도 하루아침에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제 내 일과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를 같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배 안에도 처음으로 갓 생긴, 그러나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아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그 사건은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그 어떤 부모들의 귀한 자식들도 한꺼번에 세상을 떠난 것인데. 누군가에게는 일어났지만 나에게는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매 순간 하루하루 그저 운 좋게 지나가는 것일 수 있는데.

  나와 유군이 함께 지내온 이후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동시에 맞이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각자가 힘든 시간은 서로 다르게 찾아왔으니 나머지 한 사람은 그저 상대를 지켜보고 기다려 주고 또 위로나 응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해 주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했다. 둘 다 한꺼번에 물에 빠지고 말았으니 누가 누구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 그 일은 누구 한 사람이라도 먼저 겪었어도 안 될 일이었다. 우리가 24시간 내내 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런 시점 그런 장소에서 그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미 모든 것들이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혹시라도 평소 때와 같이 나와 아이 단둘이만 함께 있는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나는 어쩌면 더 이상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난 직후부터 둘 다 서로 전과는 너무 다른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아이를 화장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그 순간에도 나는 너무 무서워서 아이 가까이로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했던 반면 유군은 작은 관에 들어가 있던 우리 아이가 너무 외로울까 봐 시간이 다 될 때까지 혼자 납골당 앞에 세워둔 차 주변을 울면서 끝까지 돌았다. 또 지금은 이제는 뭔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이 느끼는 나와는 달리 유군은 하루라도 빨리 이전처럼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전처럼 별말 안 해도 쿵짝이 잘 맞는, 각자 알아서 잘 하는 상태가 더 이상 아니다. 서로를 보고 있으면 전에 내가 알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기도 한 것이다. 정말 힘들고 답답한 때에는 우리가 그동안 함께 하고자 노력했던 그 시간들이 모두 헛된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 중심에는 바로 전과는 달리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생겼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그동안은 한 번도 서로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었는데.

  그러니 같이 있으면 이제는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잊을 만하면 다툼이 생기고 서로에게 섭섭한 마음이 든다. 우스갯소리로 유군은 자신에게 자궁이 있었다면 벌써 아이를 낳았을 텐데 안타깝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또 본인이 너무 힘들 때에는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유세를 부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더라. 반면 나는 저 사람이 이제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자궁을 사랑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 내가 당장 힘들다는데 왜 이리 나를 몰아붙이나,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떨 때는 소심해 보이다가 쪼잔해도 보이고 심지어 그가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는 아주 작은 충돌이 생겨도 서로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늦게라도 꼭 짚고 넘어간다. 그 일이 아니어도 이미 각자 크게 참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 생활 속에서 사소하게 서로를 이해해 주고 포용해 주는 범위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버렸다. 둘 모두에게 전과 같은 배포도 여유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것을 깨닫게 된 어느 날 나는 유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간장종지 같은 마음의 두 사람이 지금 함께 살고 있구나. 그것도 서로에게만.”

  그러니 만약에 내가 다시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기어이 그렇게 하고 만다면,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나와 유군의 관계이다. 양가 부모님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요구야 나의 아쉬움과 미련의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듣고 익숙해지다 보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나는 어느 정도 그렇다. 또 나이가 들어갈수록 적적하고 심심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당장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해도 그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품에서 떠나면 언젠가는 오게 될 상황이니 어차피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이 상태에서는 결국 서로가 마음을 고쳐먹지 못하면 어느 길을 가든 한쪽이 희생하는 구조가 되어 버린다. 만약 내가 지금 당장 어찌어찌 아이를 낳는다면 이후 힘든 과정이 생길 때마다 주변을 원망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잠시의 불화를 막으려고 모두 함께 더 깊고 긴 불행의 길로 가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또 아이를 낳지 않고 쭉 이 상태 그대로 지낸다면 이제는 유군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빨리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눈앞에 있는 것만 같은데, 앞에서 계속 알짱거리는데, 굳이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에 쉽게 힘을 낼 수 있을까. 더구나 지금처럼 상처투성이인 상태에서.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그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각자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힘들다고 서로에게 당장 도망쳐야 한다는 확신도 용기도 없으니까. 서로를 더 이상 곁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 또한 어떻게 될지 너무나 두려우니까. 또 그러한 길이 지금의 고통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매일의 이야기는 @some_dais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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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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