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신폭신한 혼돈의 신

『산해경』의 제강

by 승원

나는 동글동글하고 폭신해 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동물은 코끼리와 기린, 고래를 좋아한다. 이렇게 몸집이 크고 직접 만나기 힘든 친구들을 좋아하는 것은 만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 세상에는 온갖 신비한 생명체가 살고 있구나, 하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주기도 하고, 나와 직접 교류할 일이 없다는 점에서 내적인 친밀감이 상승한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되는 사이라는 것이 편하다고 해야 할까. 사진으로만 보면 더없이 귀여우니까.


이런 성격이라 바비 인형은 사람이랑 너무 똑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팅커벨이나 <반지의 제왕>의 엘프족, 그 잘생긴 레골라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니 내향적이고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 여기에 한몫했겠다 싶다.


그래서 사람 형상에 날개가 달린 것으로 표현되는 요정(fairy)보다는 늘 동물에 가까운 요괴―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데 요괴(monster)라고 부를 수 있는 신기한 생명체들에― 더 관심을 많이 가졌다. 내가 한참 만화를 보던 시절에 유행했던 세일러문, 포켓몬스터, 천사소녀 네티, 탑블레이드, 요리왕 비용 중에서 제일 오래 좋아했던 것은 세일러문과 포켓몬스터였다. 세일러문은 교복을 입는 나이가 되면 나도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주어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아쉽게도 예쁜 교복을 입고 싶다는 바람에 그치게 되었지만. 그런데 포켓몬스터는 이야기보다 캐릭터 자체로 좋아하게 된 만화였다. 작고 귀여운 피카추는 나의 마음을, 아니 동년배 유치원생들의 마음을 뺏어갔지. 지금도 포켓몬스터가 계속 회자되는 것을 보면 엄청난 캐릭터이긴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학 전공 수업에서 포켓몬스터를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제강.jpg 사랑스러운 제강


이 친구는 나의 ‘최애 중국 요괴’다. 사실 신이라서 ‘친구’라고 하기엔 높은 분이지만 나에겐 어쨌거나 ‘최애캐’인걸. 원래 이렇게 포동포동한 네 다리와 제 기능을 못할 것 같은 날개를 가진 제강은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신이다. ‘태양처럼 평평하고 둥글며 눈, 코, 입, 귀가 없다. 그러나 노래와 춤을 아주 잘 안다.’라는 엄청난 설명과 함께 『산해경』에 등장한다. 정말이지 지나치게 사랑스럽다.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감각 기관은 없지만, 그리고 동글동글한 생명체에 불과하지만 나는 노는 걸 좋아해.”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는 유사 코끼리라니.


그런데 이 제강에 관해서 또 다른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해의 천제는 숙(儵), 북해의 천제는 홀(忽), 중앙의 천제는 혼돈(混沌)이라고 한다. 숙과 홀은 혼돈의 땅에서 종종 만나곤 했는데, 혼돈은 늘 극진히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에게 보답하려고 말했다. “사람은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너는 하나도 없으니 구멍을 뚫어보자.” 하루에 구멍을 한 개씩 뚫었는데, 일곱째 날 혼돈은 죽었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창세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제강의 입장에서 보자면 잘 살고 있던 혼돈의 신이었는데 사람처럼 만들어 준다더니 죽게 된 셈이다. 모든 존재가 꼭 인간처럼 감각 기관을 통해서 세상을 느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만큼 직접적으로 획일화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강의 이야기 역시 저 흥겨운 친구를 사라지게 한 ‘인간화’ 작업에 대해서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몇 년 전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상담 선생님이 “승원 씨는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제강을 보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볼 때 내 기준에 맞게 재단하려 한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내가 진실로 '지나칠 정도'의 성찰과 반성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바뀌는 것은 없으면서 매일 스스로를 비판하는 데 바쁘기만 한 건 아니었는지 싶어서 말이다.


우리는 다들 어느 정도 제강이 아닌가 싶다. 세상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자신에게 매일 구멍을 뚫어주려 하고 있진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