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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formoflove Nov 14. 2024

보내지 못하는 편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이 편지를 쓰기로 했어. 어쩌면 이 글이 너에게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시절의 너에게라도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았거든. 지금의 너를 다시 돌릴 수 없다면, 그때의 너에게라도 고백하고 싶어서.


우리가 처음 마주했던 날을 기억해? 잔잔한 오후였지, 하늘은 맑고, 너의 미소는 따뜻했어. 그런 너를 마주한 나는, 그때부터 이미 널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어.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난 널 받아들이기엔 아직 너무 미숙했나 봐. 그토록 크고 깊은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나를, 넌 어리석게도 사랑해주었지. 너의 사랑이 나에게 준 무게를 그때는 몰랐어.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던 거였겠지.


그날을 잊지 못해. 우리가 함께 걷던 거리를 말이야. 가을바람이 살짝 불고, 잎사귀들이 발밑에서 사각거리던 그 순간. 넌 내 옆에 있었고,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처럼 느껴졌어.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도 무언가 다른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어. 너무 많은 생각들이 내 안에 얽혀 있었고, 그 생각들은 나로 하여금 자꾸만 너에게서 멀어지게 했어.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방황만 했을까. 그 따뜻한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으면 되었을 텐데.


그날 저녁, 넌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앉아 있었지. 네 눈빛엔 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깊이가 담겨 있었어. 나보다도 나를 먼저 이해해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어. 하지만 나는 그저 어리석게도 고개를 돌리고, 다른 무언가를 찾아 떠나려고 했어. 그 사랑의 크기가 너무 커서,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그걸 감당할 방법을 몰랐던 나였기에.


그리고 결국, 나는 떠났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듯이 말이야. 그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어. 나에게는 더 많은 자극과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다고 착각했지. 그렇게 나를 지켜보던 네 손을 놓고서야, 나는 그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 온기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됐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몰라.


돌이켜 보면, 내가 찾고 있던 자극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 어떤 새로운 경험도, 어떤 흥미로운 만남도 너를 대신할 수 없었어. 너는 나의 일상 속에서 나를 감싸주는 한 조각의 온기였고, 나는 그 소중함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 지금의 나는 너를 기다릴 자격도, 너에게 다가갈 용기도 없어. 하지만 그때의 너에게, 이 편지를 통해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내가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때 너를 놓친 게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지를 말이야.


네가 내 옆에 있던 순간들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그 순간들은 내가 그리워도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시간들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너를 향해 이 말을 남기고 싶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웠어.

나의 모든 어리석음 속에서도 날 사랑해준 너에게.


늘 후회 속에 살아가는,

지금의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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