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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Feb 11. 2018

20만 번의 깜박임으로 소통하다

_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간절한 의지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이며, 타인과의 소통 의지 또한 어느 한계까지 넘어설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쪽 눈꺼풀밖에 없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냥 포기한 상태로 어서 죽여 달라고 애원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살아 있음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갑작스레 닥친 참담한 현실에 느끼는 당혹감 때문에 정말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족은 물론 친구, 직장 동료, 이웃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살아 있어도 고립이며 단절일 뿐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패션잡지 편집장이던 도미니크 보비라는 사람은 잘 나가던 인생의 1995년 어느 날 아침,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깨어난 후 ‘로크 인 신드롬(Lock in Syndrom)’ 상태가 되었다. 그것은 전신이 마비되어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지만 정신은 온전한 상태로, 굳이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잠수종(潛水鐘)에 갇힌 상태 거나 온몸을 깁스하여 꼼짝할 수 없어서 괴로운 정도라면 어렴풋이 이해가 될까. 그런 그가 단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왼쪽 눈꺼풀뿐이었다.

그 역시 당장 죽여 달라고 소리 없이 외쳤으나, 이내 자신의 갇혀 있는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도전을 결심한다. 겨우 움직일 수 있는 한쪽 눈꺼풀의 깜박임을 이용해 세상과의 새로운 소통을 시도한 것이다.


그는 마비된 육체에 비해 정신은 완전히 정상인 상태로 과거의 건강하던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죽었더라면 남겨지게 될 사람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했을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언어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15개월 동안 20만 번의 눈 깜박임을 시도했고, 그로써 마침내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의 혼이 서린 노력의 결과로써 그 어떤 글보다 존귀한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한두 달 만에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책들과 달리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 가장 평범하고 무심히 지나친 나날들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회한이 현재의 고통스러운 절규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수종 속에 갇힌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의 절박함과 모두가 미처 알지 못하는 그 평범한 하루가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알려주는, 그럼으로써 간절하게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지난한 노력 끝에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나 그로부터 10여 일만에 그는 결국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의미와 행복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의 실화는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처럼 절대 고독과 고립의 처지에서도 세상과 소통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예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인간의 소통 의지가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가를 깨닫게 해준다.


수년 전 영국 BBC의 한 다큐 프로그램에 소개된 영국의 장거리 버스기사 리처드 씨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다가 다른 버스에 받히는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척추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으나 치료 중간에 감염 후유증으로 전신이 마비되어 ‘로크 인 신드롬’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평소 그는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고통스럽게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장기간 누워있는 환자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만약에 내가 나중에 저런 지경에 처하게 되면 그냥 내 삶은 존엄하게 마무리해주길 바란다. 절대로 저렇게 하루라도 무의미하게 식물처럼 생존하고 싶지 않다.”

그가 병상에 누운 지 1년 여가 되었을 때 가족들은 생전의 그의 신념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며 더 이상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병원 측과 협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의사들은 안락사를 반대하며 조심스러워했다.

“과연 환자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정상일 때는 대부분 그렇게 존엄사를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지금처럼 심각한 상태가 되었을 때는 생각이 바뀌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치고 나면 마음이 바뀌는 데도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라면, 우리는 살고 싶은 사람을 죽이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결국 리처드 씨의 생명유지 장치의 스위치를 끄기로 한 날이 되었다.

의사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도록 했다. 이어서 의사가 환자 본인의 눈을 들여다보며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물었다.

사실 그때, 의사에게도 어떤 특별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환자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잘 들으세요, 리처드 씨… 치료를 계속 받고 싶은가요?”

그 순간, 그는 눈꺼풀을 움직여 “그렇다”고 대답했다. 눈꺼풀로 대답하는 것을 본 의사는 놀라서 다시 두 번이나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정말 살고 싶습니까?”

몇 번이고 환자의 대답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그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사고를 당하기 전 그가 늘 하던 말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었던 것이다. 의사는 물론 가족들도 매우 놀랐으나 한편으로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가 필사적으로 눈꺼풀을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그의 ‘진짜 바람’을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의 소통 의지는
전신이 마비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조차 쉽게 놓아버릴 수 없는
간절한 것임을 다시 깨닫게 한다.
온몸이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숨만 쉴 뿐일지라도
사랑하는 이들 곁에 남아
눈빛으로라도 소통하고자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지금 혹시, 아무런 의사도 표현하지 못한 채 누워만 있는 환자 가족을 두었다면 그의 눈을 들여다보라. 눈꺼풀이 움직이는지, 적어도 그의 눈빛이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지 듣기 위해 눈을 크게 뜨길 바란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바로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동력 인지도 모른다.     


somehow2010 @commun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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