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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Feb 18. 2018

뜨거운 형제

_가슴으로 통하는 어떤 것

피를 나눈 가족들이 타인들보다 훨씬 마음이 잘 통하는 것은 사실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중요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가족에게, 물보다 진한 핏줄에게 마음이 이끌리는 것을 보면.


그러나 복잡하고 바쁜 사회생활에 쫓기는 상황 속에서 언제부턴가 가족들 사이의 대화도 줄어들고 각자의 세계에서만 분주할 뿐이다. 위치상으로나 감정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대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럼에도 상대방의 눈빛만 보아도 무엇이 부족하고 어려운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이가 바로, 가족이고 형제자매가 아닐까.



서로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사는 형제가 있었다.

다섯 살 터울의 형님은 서울에, 동생은 지방의 소도시에 사느라 1년에 몇 번 명절에나 얼굴을 보며 바쁘게 살았다. 어릴 때부터 형님을 어려워했던 동생은 결혼 전에는 물론 이후에는 더더욱 서로 연락하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한 번씩 볼 때면 잘 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 만나도 서로 데면데면할 뿐 점점 더 불편하고 먼 사이처럼 느껴졌다.


형님은 서울의 변두리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꾸리고 있었고 동생은 지방의 소도시에서 건축업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부모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동생 가족들이 형님의 서울 집에 도착했다.

“형님, 집이 아주 좋네요.”

형님은 얼마 전에야 그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고맙다. 중간에 사기만 당하지 않았어도……나이 육십이 다 돼서야 겨우 내 집을 장만했으니 가족들한테 면목이 없구나. 그래, 너는 어떠냐? 요즘 건설 경기가 안 좋다던데.”

“저희는 끄떡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동생은 형님이 어려운 듯 조심스레 대답했다. 형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비롯한 두 가족들은 그렇게 모여 제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동생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죄송합니다... 거래처에서 급한 용무가 있어 자꾸 전화가 오네요.”

동생은 형님이 신경 쓰는 게 미안한 듯 이렇게 대답하며 진땀을 훔쳤다. 사실 동생의 사업은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었다. 건설 경기가 얼어붙다 보니 거래처에서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여 연쇄부도가 일어날 상황이었다. 건축업이라고 해봐야 실은 소규모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데다 자신도 어딘가에 거래대금을 갚아주어야 하는 빠듯한 처지에서 받을 곳에서 먼저 받지 못하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탓에 그는 밤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제사를 지낸 다음날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동생은 하루 종일 동분서주했다.

그날 저녁, 그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는 사람 키만 한 소포 박스가 놓여 있었다.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형님이었다. 의아한 마음에 뜯어보니 라면 몇 박스와 두루마리 화장지 몇 묶음, 그리고 식용유 따위 생필품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중에 흰 종이 편지가 눈에 띄었다.


‘… 힘든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있을 테니 힘내거라... 빚이 절반이 넘지만 집을 옮기느라 이번에도 네게 아무 도움 줄 형편이 못 되는구나… 물건들은 대단찮으나 있으면 도움될까 하여 궁리 끝에 보낸다…’


동생의 형편이 안 좋다는 것을 눈치챈 형님이 보내준 그 물건들은, 돈으로는 도움 줄 형편이 안 되어 고민 끝에 살림에라도 보탬이 되라는 의미였다.

형님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 받은 동생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형제는 이렇게 굳이 하소연하지 않았음에도 서로의 처지를 알고 가슴 뜨겁게 소통하였다. 오랜 고생 끝에 집을 마련한 형님에 대하여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도, 동생의 처지가 좋지 않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모두 뜨거운 가족애, 형제애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가족이란 이처럼 애써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형편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핏줄로 얽힌 사이가 아니겠는가. 동생은 차마 형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걸음이 복잡했다.

자신의 급한 사정을 생각하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형님 또한 동생의 처지를 짐작하고 안타까워하며 도와주고 싶었으나 그 역시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마음처럼 선뜻 도와주지도 못하니 괴로웠을 것이다. 고민 끝에 형님은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보낸 소포가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안 되고는
문제가 아니다.

그로써 두 사람의 마음이 통했으며
진정 뜨거운 형제간의 소통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오랫동안 마음의 문을 닫고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동기간이 있는가. 그들에게 지나간 긴 시간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지 어려워서 망설이고 있다면, 아무것도 망설이지 말라.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쁘게 받아줄 것이다. 가족이니까.


somehow@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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