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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Mar 11. 2018

침묵, 소통의 또 다른 언어

_진정한 소통을 위한 필수적 조건

나의 뜻을 전하고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으며 보다 깊이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에 대해 알기 위해 말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다 보면 말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말이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 주고 관계를 소통시키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화근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말 한마디의 실수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침묵(沈黙)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서로 잠깐의 오해가 생겼을 때 지나친 변명이나 하소연보다, 침묵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상대에게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한 번쯤 되새겨보는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로써 자칫 단절될 수도 있는 관계의 소통을 다시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은 사회적 문제점에 대한 주위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데도 자주 활용된다. 이른바 ‘침묵시위’가 그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요구를 목소리 높여 알리는 것과 달리,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시위보다는 말없는 시위, 비폭력 시위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더 커진 것이 사실이다. 조용할수록 시위 효과도 더욱 크다.


이처럼 침묵은 지나치게 말이 많은 세상에서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주고 상대방에게는 생각할 시간을 주는 긍정적인 기능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어떤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집단이 사회적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이 생겼을 때 그것에 대해 함구하고 서로 비판하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이익을 깨지 않으려는 현상이 그것이다. 다른 말로는 ‘침묵의 카르텔’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침묵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말이 많을수록 쓸 말보다는 버릴 말이 더 많다’고도 한다.
말이 많으면 내 말을 하기 바빠서 상대의 말에는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그러니 서로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말이 많다 보면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좋게 이야기해서는 자신의 뜻이 통하지 않으니 좀 더 거친 표현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다 보면 언성이 높아져
급기야 말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날마다 원수처럼 싸움이 끊이지 않는 부부가 있었다.

두 사람은 결혼생활 40년 동안 서로를 탓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서로를 헐뜯으며 잠이 들곤 했다.

“저 여편네는 왜 저렇게 게으른 거야? 남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더운밥을 차려준다는데 더운밥은커녕 아침식사 한번 얻어먹어본 적이 없으니…”

이른 아침, 남편이 이렇게 투덜거리며 고물 리어카를 몰고 나가자 그 뒤통수에 대고 아내가 쏘아붙였다.

“꼴에 저것도 남편이라고… 돈이나 남들처럼 팍팍 벌어다 주면서 큰소리를 칠 것이지. 하루 종일 고물 따위나 산더미처럼 주워봐야 쌀값도 안 되면서…”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고물을 줍다 돌아온 남편과 아내는 또다시 서로 지지 않고 말다툼을 벌였다. 동네에서도 그들 부부의 다툼은 유명해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밤, 한 노인이 그 앞을 지나다가 부부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두드렸다.

“실례 좀 하겠소. 내가 매일 이 집 앞을 지나는데 그때마다 두 분이 다투는 소리가 들립디다. 서로 그렇게 헐뜯기 시작하면 나중엔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욕이 나오려고 할 때 잠깐만 참고 침묵해 보면 어떻겠소?”

불쑥 나타난 노인의 충고에 당황한 부인이 물었다.

“후회할 일이라니요?”

“나도 내 아내와 당신들처럼 평생 싸우기만 했소,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싸웠지. 그 덕에 아내가 그만 화병으로 죽고 말았다오. 아내가 죽은 뒤, 그제야 깨달은 게 하나 있소. 내가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아내가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얼마나 후회스러웠겠소? 화가 나고 욕이 나오려고 할 때 한 번만 참고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다면 그렇게 날마다 싸우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오… 사랑한다는 말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오…”

말을 마친 노인이 돌아간 뒤 두 사람은 조용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아내가 먼저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여보, 미안해요… 당신이 날마다 수고하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헐뜯기만 했으니 내가 어리석었어요.”

“아니오, 오히려 내가 미안하구려. 가난한 남편을 만나 평생 고생만 시켰으니……”

남편도 울먹이며 아내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부부는 과연 침묵 속에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노인의 말대로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지난 행동에 대해 되짚어 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후로 두 사람은 노인처럼 후회하기 전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갈등과 분노가 폭발하려는 순간 잠깐 동안 침묵하는 것은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상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물론 감정이 폭발하려 할 때 그것을 자제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순간의 침묵에는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말다툼도 끊임없는 소통의 욕구 표현에 다름 아니다.

단지, 그 말에는 부정적인 표현과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만이 범람하므로 듣는 이를 자극할 뿐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수백 마디의 말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려 할 때, 이제부터라도 입을 다물고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때로는 침묵이 어떤 웅변보다 효과적일 때가 진짜, 있기 때문이다.        


somehow@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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