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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Apr 01. 2018

적군과의 소통

_적극적인 동반자가 되는 방법

개인 대 개인의 대화는 물론, 집단 간의 협상이나 업무협조 행위 역시 넓은 의미의 소통이다. 

서로 우호적인 관계에서의 업무 협조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원할 때마다 충분한 대화와 의견 조율을 통해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니까.

그러나 쌍방이 이해관계를 달리하고 있을 때, 심지어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적대관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해관계가 다르므로 업무 협조라든지 소통이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없을까.

적대관계라는 표현 자체가 곧,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럼에도 실제로 적대관계에서조차 이른바, 업무 협조를 위한 소통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까지도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구호활동이 그런 경우이다.


미국의 침공으로 전쟁에 휘말린 아프가니스탄에서 죄 없이 죽거나 다친 민간인들을 위한 서구사회의 구호활동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아프간 현지인들은 자신들을 도우러 온 이방인들을 불신한다. 서양에서 온 사람들을 모두 스파이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무조건 자신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러 온 선교사라는 편견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아프가니스탄은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에서 다른 종교, 특히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엄격하게 처벌하는 철저한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한 거부감으로 인해 국제구호단체 의료인들의 희생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0년 여름 무렵의 일이다. 아프간에서 40여 년간 가족과 함께 살며 그곳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온 미국인 안과의사 톰슨과 일행 10여 명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산간 오지의 가난한 환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런 일정은 다른 나라에서 온 봉사자들과 그 안과의사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던 일행 앞에 뜻밖에도 불쑥 나타난것은 두건을 쓴 무장괴한들이다.

괴한들은 일행을 위협하며 숲으로 데려갔다.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일행의 대표로서 톰은 침착하게 자신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의사입니다. 아프간 사람들을 치료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총성이 이어졌고 일행들 모두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무려 40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의료 활동을 해온 봉사자들조차도 그들에게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의료구호 단체들이 아프간 현지인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안전을 보장받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시의 아프간을 움직이는 대세가 탈레반임을 간과했던 것이다.

톰슨이 속한 구호단체가 대화 상대로 삼은 것은 실세인 탈레반이 아니라, 아프간 지방정부와 지역 원로들이었다. 정작 총을 가진 사람들은 탈레반인데 말이다.

이 사건은 결국 구호단체들과 아프간 사람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탈레반 세력과의 소통 부재로 야기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들 사이에서는 탈레반과의 대화 창구를 열어야 한다는 절실한 반성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도움을 준다 해도 우리의 진심을 탈레반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지 않으면 의료진의 목숨은 언제든지 이슬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들과 만나야 합니다.”

그로부터 신변안전을 도모하면서 의료구호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정한 협력이 불가피함을 인식하게 되었고, 마침내 구호단체와 탈레반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구호단체들이 탈레반에게 아프간 정부와 같은 위치에서 협상할 것을 제의하자 뜻밖에도 선뜻 만남에 응해 왔다. 상대방을 적이 아닌 대화 상대로 대우하자 탈레반도 기꺼이 구호단체를 존중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게 협상을 거친 한 구호단체는 탈레반의 경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활동하기에 이른 것은 물론, 탈레반 고위 관료나 가족들까지 진료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대화와 소통의 힘이 아니겠는가.

무시하고 대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때는
 그저 서로에게 적군이었을 뿐이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의 필요성을 알고 이해하기 시작하자
적극적인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대화와 소통, 협상의 중요성을 알게 된 수많은 국제 구호단체들은 그 후로 탈레반을 아프간 정부 대하듯 대우함으로써 이해를 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탈레반 지역사령관과도 직접 마주 앉아 협상을 벌일 뿐 아니라 함께 진료일정을 상의하는 정도로까지 나아갔다.

근본적으로 전쟁 역시 극단적인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9·11 사태가 아프간 전쟁의 도화선이 되긴 했으나 보복성으로 일으킨 전쟁에서 이득을 본 쪽은 과연 누구인가.

9·11 사태 역시 끔찍한 비극이기는 하지만, 전쟁의 참화는 지금까지도 아프간을 황폐하고 참혹한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


권력자들의 놀음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 민간인들을 위해 일하는 국제 구호단체들이 탈레반과의 협상과 대화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대화와 소통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적과의 동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을 반영한다.


누구에게나 꼴 보기 싫어하며 원수처럼 지내는 상대가 있을 수 있다. 대화하고 소통하지 않으니 뜻이 통하지 않을뿐더러, 원수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큰 맘먹고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적군과도 협상을 하는 마당에, 한 수 접고 들어가면 소통하지 못할 상대가 있겠나.                                        

somehow@2010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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