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 엄마는 이제 겨우 다시 살아난 모양새다...바로 전날 방문간호사에게 링거를 맞은 덕이란다.
그 링거를 맞기까지의 시작과 끝 또한 결코 순탄치 않았다는 사연을 들으며, 자신의 나이 칠순에 이른 언니가 그역시 지독한 감기를 세트로 앓으며 늙고 사위어가는 구순의 어머니를 구완하는 일이 얼마나 힘겨웠을까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오늘 겨우 이렇게 조금 살아나셨다...너 온다니까, 여기 앉아 기다리시는 거야.
지치고 힘든 기색 역력한 언니가 말한다.
-나오늘 너 따라 우리집 가서 파마할란다. 응?
엄마는 언니집에 간지 두달이 넘어가며 온통 부스스하게 풀어진 파마와 덥수룩하게 자란 백발의 머리털을 못견뎌 하시며 말한다.
-그래, 가자! 엄마, 같이 가면 되지.
엄마는 아직 감기가 완전히 떨어지지도 않았고 당신 스스로 뚜벅뚜벅 무려 4층 건물의 계단을 걸어내려 갈 수도 없는 지경이다. 그럼에도, 마음은 여전히 세상을 휘저을 듯 하신게다.
거의 20년 전이었을까...언니네 집은 동네의 단독주택들이 하나둘 4~5층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변신하는 시기에 덩달아 5층 건물로 재건축되었다. 집주인이니 자연스레 4-5층을 사용하며 살게되었으나 엘리베이터는 설치되지 못했다. 당시 아직 젊었던 언니도 엘리베이터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승강기를 설치하기에는 건물의 면적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시간이 이렇게 흘러 모두 늙어가는 시점에 도달하고 보니 승강기가 무척 아쉽기는 하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어머니를 나 대신 모셔갔으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의 언니 혼자서 더 늙어 부서질 듯한 어머니를 끌고 4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병원에 다니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번 감기에도 어머니는 병원에 가보지도 못한 채 그저 감기약만 사다 먹게 되었고, 그나마 방문간호제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미 두어달 전부터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머무르는 3시간 남짓이외의 시간동안 언니가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는 사이 두사람은 모두 지쳐갔다....늙은 엄마를 돌보느라 늙어가는 언니가 오히려 먼저 죽을 것만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언니가 말을 했단다.
-엄마...이제 요양원에 가자...더 이상은 나도 죽을 것같아서... 원래는 내가 엄마 돌보며 이대로 살면 되겠다...했는데...
언니와 나는, 8월말즈음 갈비뼈 골절로 입원소동이 벌어졌을 당시에도 어머니의 요양원입소를 생각했을 때, 도저히 보낼 수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마치 쓸데없어진 어머니를 갖다 버리는 것 같았고 어머니도 자식들에게 버려지는 것같다고 생각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그런데, 이제는 두어달 둘이서 좌충우돌해가며 지내는 동안 조금씩 생각이 변해가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애처롭고 측은함이 앞서던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게 된 것이다.
예전의 어머니는 한번씩 아프고 나면, 메마른 화초가 물을 흠뻑 빨아마신뒤 되살아나듯 회복되곤 했었으나 이제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 번씩 앓고 날 때면 한 풀 더 기력이 쇠해지고 조금 더 사위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돌보는 이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어느새 어머니 본인도 점점 스스로의 삶에 지쳐가는 것이다.
-그래...그러자...나좀 죽여주라...
요양원가자는 언니의 말에 어머니도 이제는 지친듯 대답했다.
언니는 어머니를 돌보며 마음으로부터 떠나보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음으로부터 떠나보낸다는 것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과는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머니를 뚝 떼어 요양원에 보내고 나면 우리는 모두 마음 아팠을 것이다.
우선, 몸은 편하게 되었겠지만 미처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던 서로의 마음은 뜻밖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듯 쓰라렸을 것 아닌가.
쓰라림이 아물고 딱지 앉기까지 우리 모두는 밤마다 잠을 설치며 하늘을 보고 울먹이며 죄책감을 끌어안은채 괴로워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하루하루 허물어져가는 노쇠한 어머니를 훌쩍 떠나보낼 수 없어서, 그럼에도 아직 숨가쁘게 우리는 삶의 쳇바퀴를 굴려나아가야만 해서 전전긍긍했었다.
특히, 그 자신의 생에서 애증의 존재인 어머니를 어찌해야할지 몰라 괴로웠을 언니는 둘이 함께 두어 달을 살아내며 어느덧 마음으로부터 담담하게 어머니를 떠나보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머니또한 당신 스스로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던가 보다.
나는...나는 물론 언니도 동생도 오빠도 그렇겠지만, 가장 이상적인 삶을 꿈꾸자면,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살다가 당신의 아늑한 작은 방 침대 위에서 깊은 잠에 들고 꿈꾸듯 하늘나라로 가시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말처럼,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이 믿을 수가 없어서 서글플 따름이다.
그날, 어머니는 결국 나를 따라나서지 못하셨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준비하며 말했다.
-엄마...감기 아직 안떨어져서 오늘은 가면 안될것같은데...? 감기 다 나으면 그때 우리집 가고, 파마도 하면 되지? 지금 갔다가 더 앓으면 어째...
-그때까지 못참으면 우리 동네 미장원가서 하면 된다니까...
언니가 말했다.
-그렇지? 못 가겠지...그래, 이동네 미장원 가르쳐줘야 가지...
엄마는 나를 따라 오늘 집에 가겠다고 말하면서도 그 스스로의 마음속으로는 어쩌면 그럴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의 의지를 표현한 것임을 나는 알 수 있다.
다음날인 일요일 오전에 나는 이전에 알아보았던, 우리 집에서 멀지않은 20여분 거리의 ㅍㄹㄹㅅ너싱홈에 다시 찾아가 구체적으로 입소에 필요한 사항들을 전달받았다.
멀리 강변이 바라다 보이는, 새로 지어올린 그곳은 4층 집안에 갇혀 감옥살이한다는 느낌을 받는 어머니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우리 자매들은 어머니를 당장 이곳에 끌고올 생각은 없다.
다만 어쩌면 앞으로 한달여쯤....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더 자유로워지실 때, 당신 스스로 정하는 때가 그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