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지난 24일 주신 어르신이 끝내 눈을 감으셨다.
앞선 요양원일기_14에서 주신어르신에 대해 기록한지 꼭 열흘만의 일이다.
그로부터 약 1주일 전부터, 어르신은 말기 췌장암의 고통이 서서히 시작됨에 따라 워커를 짚고 다니는 것은 물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도 점점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기저귀팬티를 이용 중일 때도 필사적으로 화장실에 다니던 것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급격히 쇄해졌다.
2월16일, 원장이 어르신의 근황을 살피러 다시 오셨을 때, 내가 그러한 변화를 알렸다.
그에 따라 원장은 일단 혼자 머물 수 있는 방으로 어르신을 이동조치했다.
그때까지는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방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주신 어르신이 밤새 화장실을 힘겹게 드나드는 통에 다른 어르신이 잠을 못 잔다고 호소를 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제는 스스로 화장실도 못 가는 형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언제든 갑작스런 위급상황이 닥칠 수 있는 상태로 치닫기 시작했으며 부지불식간에 응급상황이 벌어지면, 옆자리 어르신들이 충격을 받을 수 있기에 사전조치를 취한 것이다.
조금씩 깊어가는 통증 가운데서도 어르신은 왜 방을 옮기는지 불안한듯 의아해하셨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이대로 자식들에게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듯했다.
당연히, 가족들에게 현재 상태에 대해 알리고 마음의 준비를 당부했다.
그로부터 다급하게 가족들이 삼삼오오 찾아왔다.
과일을 사다 입에 넣어드리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식사는 죽을 떠먹여드려야 간신히 드실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동안 외국에 살던 자녀들도 어르신을 뵙고 간 다음, 21일 오전에 어르신은 다시금 특별실로 옮겨졌다.
이미, 산소포화도가 불안정하고 맥박도 오락가락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별실은, 임종을 위한 공간이다.
나의 어머니도 특별실에서 일주일여 정도 머무르시다 영면하셨다.
특별실로 가신 뒤에 주신 어르신은 잠시 반짝 기력이 살아나 이런저런 대화도 하고, 그 와중에도 육신을 침범하는 고통의 크기에 당황하여, 어서 빨리 나를 죽여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특별실로 가신뒤 나는 어르신을 겨우 한번 찾아가 뵈었다.
온몸의 황달은 더욱 심해지고 마른나뭇가지같은 육신은 더욱 앙상하게 야위어갔다. 갈퀴처럼 뼈만 남은 손을 쓸어잡으니 어르신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나를 알아보는듯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셨다.
그때 나는 어르신 어서 쾌차하셔야지요, 와 같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만, 이제는 어르신께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와 안식의 시간이 찾아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할 뿐이었다.
특별실은 1층에 있고 나는 4층에서 일했기에, 분주한 하루일과 중에서 나는 수시로 어르신을 찾아가 볼 수 없었다.
매일 오전의 프로그램이 1층에서 열리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그 시각에 가볼 수 있다.
2월24일, 그날은 내가 어르신을 찾아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하지만,나는 어르신들 곁에 머물며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주신어르신에게 미처 가보지 못했다.
바쁘게 하루일과를 마치고 퇴근을 할때서야 어르신 생각이 났고 내일은 꼭 가보자.하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출근했을 때 나는 부랴부랴 1층 특별실로 주신어르신을 찾아갔다.
그러나, 어르신은 보이지 않았다.
근무자인 간호조무사에게 물었다.
주신어르신 어디 가셨어요?
....어제, 돌아가셨어요...
아...이런....한발 늦었다.
어르신의 마지막을 배웅은 못할 지언정, 한번이라도 더 그 노랗게 뜬 가여운 얼굴과 앙상한 손을 잡아드리고 싶었는데... 특별실로 옮긴지 불과 3일만의 일이다.
마음이 무거웠다.
언제든, 어르신은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상태였는데, 나는 마치 내일이 있는 것처럼 하루를 미룬 바람에 끝내 어르신의 마지막길에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그 전날, 내일 와서 꼭 들여다봐야지 하며 집으로 향하던 바로 그시각 오후 4시무렵에 어르신은 끝내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노랗게 뜬 온몸이 나중에는 검게 변하더니 세상을 떠나셨다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
나는 늦은 후회를 토하며 마음속으로 기도할 뿐이다.
주신어르신께 평화와 안식을 기원합니다...
103세의 췌장암 말기환자인 주신어르신은 수술도 불가한 상태로,
다만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난 12월17일에 입소하셨다.
그로부터 두어달 가량, 어르신은 필사의 생명력으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다 가셨다.
인간의 힘으로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하기는 어려우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사는 일은 가능할 것같다.
100세가 아니라 200세가 넘었다 해도 한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을 뿐더러,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은 결코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잠깐 찾아왔다 떠나는 방문객이 아닌가.
주신어르신을 생각하니 방문객(정현종)의 시구가 사무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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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