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유 Apr 19. 2023

5. 제로투, 힘숨찐, 앙기모띠 上

유튜브와 틱톡을 보기 겁나는 거 나만 그래? (22.04.16)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유튜브 중독자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왜 사람들이 유튜브에 모든 정보를 올려놓는거야?'라고 승질을 냈었는데, 요새는 그냥 궁금한 게 생기면 유튜브부터 검색하게 된다. 네이버 지식인, 블로그 티스토리의 시대를 지나 유튜브의 시대다. 모든 정보가 유튜브로 모아지기 시작한지 꽤 된 것 같다. 심지어 유튜브 프리미엄도 쓴다. 알고리즘의 파도에 나의 선택권을 내맡기고 어영부영 AI가 시키는 대로 영상을 보고 있자면 혼이 쏙 빠지게 재미있다. 아무래도 정보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빅브라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참인 것 같다. 

  여튼, 최근에 유튜브에 검색한 것은 역시나 '포켓몬 이로치 잡는 영상'이다. 집에 미리 사뒀던 '레츠고!이브이' 칩이 있었다. 덕분에 포켓몬 덕질을 근근히 이어가며 겸사겸사 며칠간 즐겁게 플레이 했다. 이 게임을 하면서도 역시나, 이로치 헌팅을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귀여운 이로치 포켓몬들 (이전 글 참조). 어떻게 하면 잘 나올 수 있을까 골몰하다가 유튜브를 틀었다. 남들이 이로치 포켓몬을 발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운 좀 받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별 생각 없이 영상을 틀어놓고 이로치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영상 속에서 갑자기 유튜버가 소리를 질렀다.


  "어, 이로치 떴다! 앙 기모띠~"

  영상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가 짜게 식었다. 그 순간 이 유튜버가 이로치를 찾든 말든 관심이 하나도 없어졌다. 흐린 눈으로 유튜브를 바로 껐다. 그리고 강렬한 현타가 찾아왔다. 아나, 또 지뢰 밟았음.

  앙기모띠라는 단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밈에 박학다식한 사람들이라면. 심지어 좋든 싫든 사방팔방에서 이 단어가 쏟아져 나왔던 적도 있었다. 이게 여혐이다는 지적과 이게 왜 여혐이냐는 반박이 오갔다. 물론 당연히, 나는 지적하는 편이었다. 심지어 남자인간과 이 단어로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다. 그 단어 좀 쓰지 말라고 했더니 그게 왜 나쁜 말이냐고 되물어오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단어를 즐겨 쓰는 사람들이 해당 밈의 어원을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조리 알고 있듯이, 이 단어는 '포르노에서 일본 여성배우가 성적 흥분을 느낄 때 뱉는 단어'를 희화화 한 것이다. 본래 기모찌, 라는 '기분좋다'라는 일본어에다가, 굳이, 신음 소리인 '앙'을 붙여서, 성적 언동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 아니었나. 하지만 어느새 어원에서 '기모찌'라는 말만 떼어내서 '기분 좋다'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렇다고 생각해보면 이 현상이 딱히 이상한 것도 아니다. 앙기모띠가 있기 전에, '야메떼 구다사이'가 있었다. 남초에서 흔히 쓰는 용어였고, 이 또한 마찬가지로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뜻의 문장이지만 포르노에서 일본 여성배우가 추행/강간 등을 당하는 연출 포르노에서 내뱉는 말이기도 했다. 사실 이런 식의 포르노가 결국 여성 역시 강제 성적 폭력에 쾌락을 느껴 흥분한다는 스토리로 인해 '앙기모띠'라고 내뱉게 되니, 밈적으로도 참 더러운 맥락까지 완성된다.



  야, 누군 야한 거 안좋아하는 줄 알아?

  앙기모띠가 여혐이라고 하는 게 '엣헴. 어떻게 그렇게 야한 말을?' 하는 개꼰대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도 야한 거 개좋아해. 근데 그거랑 별개다. 굳이 입 아프게 이유를 대자면, 첫째로, 일본어, 특히 일본 여성이 쓰는 일본어에 대한 심각한 오용이며, 두번째,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섹스를 '당하는' 물건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행위나 성적으로 밝히거나 좋아하는 여성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니네가 지금 여성을 사람으로 안보고 있다. 심지어 일본 여성한테 야메떼, 앙기모띠가 뭔지 물어보는 유튜브 컨텐츠까지 본 적 있는데, 정말 심한 말을 하고 싶었다. 거꾸로 생각해보라. 우리나라에서는 '좋아요'라는 말이 외국에서는 성적인 용어라는 이유로 희화화 되어 쓰인다고 한다면, 그 사실을 당장 내 귀로 듣자마자 당장 칼을 꺼내들 것이다. 슉슉슛. 슉. 슉.

게다가 정말 싫은 건, 이 밈이 유튜브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는 사실이다.

  이놈의 유튜브. 사실상 이 단어는 유튜브 세계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한때는 무슨 영상만 봐도 앙기모띠라는 단어가 나올 때가 있었다. 이 단어가 비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영상 매체를 기초로 한다는 사실을 되짚는다면, 전체 연령가인 유튜브에서 아동청소년까지 해당 단어가 노출됐다는 사실은 매번 되짚어볼 때마다 처참한 기분이 든다.

  이런 식의 밈은 2022년에 와서 어떻게 발전됐는가. 결국 우리는 모두가 '제로투'를 추고 있다.



  솔직히 나는 제로투를 엄청 잘 춘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물론 나도 제로투 챌린지를 엄청나게 찾아봤고, 여성애자의 어쩔 수 없는 빻은 지점으로써, 빌어먹게도, 제로투를 좋아한다. 근데 진짜로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제로투가 왜 유튜브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는가.
   왜 제로투를 사람들이 소비하게 됐는가.
   유튜브는 왜 제로투를 밈으로 재생산했나.


  이게 문제다. 글이 길어지니 일단 다음 편으로 옮기겠다. 닌텐도 2DX XL 당근거래 하러 가야 한다.

  안녕. 덧글과 좋아요, 구독까지 부탁한다. 제법 유튜버 같지?

매거진의 이전글 4. 우울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