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볕 냄새 Nov 12. 2023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걱정인형 벗어던지기

" 잠깐만 와봐(나 사고쳤어 ㅠㅠ 어떻게 해)

  ….(이렇게 저렇게)….

  그래, 괜찮겠지?

  나는 걱정되는 일이 있을 때 샘을 생각해,

  오늘도 샤워할 때 생각했지.

  OO샘이라면 이런 일로 이렇게 걱정할까,

  아마 아닐 거야. 그럼 나도 잊어버려야지. 그럼 이상하게    별스럽지 않은 일처럼 느껴져서 좀 잊을 수가 있어. "


가까운 친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두 가지 이유로 무척 놀랐다. 첫째는 남들 눈에 내가 그리 걱정이 없는 인간처럼 보인다는 것 ㅡ 나는 내가 걱정인형을 안고 산다고, 쓸데 없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 못드는 날이 많다고 생각했다. 애늙은이 같다는 이야기를 어릴적부터 듣기도 했고, 후회로 이불킥하는 날들이 많았었지. 둘째는 곰곰 생각하니 정말로 요즘 내게는 그리 큰 걱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ㅡ 이게 더 놀랐다! 크게 신난다거나 특별한 일이 없어서 그리 의식하지 못했는데, 내 머릿속에 별다른 걱정거리가 안떠오르는 걸 보니 요즘 꽤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구나 싶었다.


사실 나는 불안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들의 눈도 많이 의식하고, 이렇게 해도 될까,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걱정들ㅡ

잠에 들었다가 학교생활기록부에 쓰지 말았어야 하는 내용을 적었던 게 아닐까, 시험 문제는 오류가 나지 않을까,아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늘 왜 그런 쓸데없는 얘길 했을까, 또 중요한 숫자가 틀렸을까봐 집에 와 잠자리에 누우면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런 걱정이 늘어갈수록 나는 무기력해졌다.

불안이 늘어나면 더 꼼꼼하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신경 쓰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러기엔 내 성격 자체는 그리 꼼꼼하지도, 완벽을 추구하는 타입도 아니고, 엄청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면 그리 부지런을 떨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그런 불안과 걱정은 끝이 없는 거라, 나는 늘 스스로를 탓하고 후회하고.. 기운이 빠지고.. 비슷한 상황이 되면 또 그런 일들이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무 근심 없고, 사고(?)를 쳐도 별 것 아닌듯 넘길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니? 내가 그렇게 연기력이 출중한 사람이었던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난 포커 페이스에 약한 편이다. (싫은 티를 팍팍 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또 좋은 척도 잘 못하는. 뭔가 마음에 걸리면 말수가 확 줄어드는 걸로 티가 나지. ㅎㅎ)


대신 걱정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잘 얘기하지 않고, 또 이미 하기로 정한 일에 대해 더 이상 이런저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을 뿐이다. 속으로만 낑낑댈뿐^^;;;

ㅡ 이건 쓸데없는 자존심 + 타인에게 내 부정적인 감정을 옮기고 싶지 않은 마음 + 안 좋은 걸 여럿에게 얘기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경험적 결론 +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그 감정을 키우고 공감해달라고 하는 게 결과적으론 그리 도움되지 않는다는 나만의 뇌피셜 ㅎㅎ 이 모든 게 합쳐져서 겉보기엔 멀쩡한 상태로 보이나보다.


하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또 내 마음이 편안하단 걸 의식하고 내심 뿌듯했다. 왜냐면 내가 오랫동안 그렇게 되려고, 쓸데 없는 걱정을 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변화가 있었구나, 보람이 있다 싶어 뿌듯했다.



나는 오랜 시간 달라지고 싶어서 애를 썼다.

서른 초반까지는 정말로 걱정인형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더불어 짜증도 많았다. 걱정과 불안이 많으니 그럴수밖에. 그러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혼자 생각을 했다.


너는 왜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니?

네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뭔데?

너는 그 상황이 왜 그렇게 두려운 거야?

그래서 이런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친구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뭐라고 할거야?


그러다가 깨달았다.

1차, 내가 상상하는 최악이 그리 최악은 아니라는 거

2차, 나는 평판과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고 있단 거

3차, 이런 생각 백날 해 봐야 달라질 건 없단 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

걱정을 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으로) 하는 것, 그 후엔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남는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 진인사대천명’의 의미가 와 닿은 거였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는 오직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자료를 찾아보면 저 말의 포인트는 앞 부분(니가 할수 있는 최선을 해라)에 있다고 강조되어 있다. 아무 것도 안하고 하늘만 보고 있을까봐 걱정하신 선조들의 큰 뜻이려나?


모르겠다만,

나는 뒷 부분의 이야기가 그에 버금가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특히 걱정이 많은 이들에게는.


내 할 도리 다 했으니 이제 후회가 없다.

설령 의도한 대로 안되어도 그건 받아들인다.


나는 걱정이 떠오를 때

이 마음을 가지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린다면 어떻게 했을지도.


신기하게 그런 게 안될 거 같지만 연습하니까 되더라.

그리고는 아까와 같은 오해를 받게 되었지^^

매거진의 이전글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갈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