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지만 괜찮은 하루 10
몽덕이가 드디어 대문 밖으로 나갔다. 별별 유인을 다했다. 좋아하는 바나나를 떨어트려도 본체만체했다. 복도식 아파트인데 대문 밖 시멘트가, 문소리가, 발소리가, 새소리가, 자동차가 무서웠나 보다. 개는 산책을 다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문만 열어도 줄행랑을 치니 이 개가 정상인가 걱정이 됐다. 인터넷에 개 자폐증도 쳐봤다.
몽덕이가 문턱을 넘은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건 내 다리다. 내가 문 앞에 주저앉아 아빠 다리를 하니 그 속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한 발짝씩 섰다 주저앉았다 하며 몽덕이를 데리고 나왔다. 몽덕이는 내 다리 사이에서 부들부들 한참 떨더니 걷기 시작했다. 나를 믿고 밖으로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 바깥세상을 걸었다. 낙엽도 킁킁거리고 다른 개들 똥도 먹고 솔방울을 한참 씹었다. 귀가 날리도록 달리기도 해 봤다. 설에는 차도 탔다. 동생네 식구가 개만 졸졸 쫓아다녔다. 몽덕이가 식구들을 산책시켰다.
베셀 반 데어 콜크의 책 <몸은 기억한다>를 보면, 아기는 태어나 한(두) 사람을 애착대상으로 삼는다. 대체로 엄마인데, 그 엄마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상관없다. 자신을 학대해도 사랑한다. 아기의 뇌는 그렇게 세팅돼 있다. 실제로 학대가정 아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갈래 보호시설로 갈래 하면 집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이는 그 한 사람의 끈을 잡고 세상으로 나간다. 안전하게 돌아갈 곳이 있어야 탐험도 시작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는 태어나서 2~3년까지 아이의 뇌에 세상에 대한 지도가 그려진다고 한다. 세상이 위험하고 공격적인 곳인지, 흥미롭고 따뜻한 곳인지 바탕이 깔리고 한번 깔린 지도는 잘 바뀌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를 택할 수 없지만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몽덕이를 보면 개도 다르지 않은 거 같다. 어떤 존재건,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단 하나라도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해할 수도, 다 느낄 수도 없는 거대한 세상에 나가려면 단 하나,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개나 인간이나. 그리고 그 한 존재에 따라 이 세상은 밝고 따뜻한 것들로 가득한 곳일 수도 있고 흉폭한 곳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