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이 Feb 13. 2020

인간애호증 환자견 몽덕이

시시하지만 괜찮은 하루 9

 몽덕이는 인간애호증 환자견이다. 산책 한 번 나가면 그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과 인사해야 한다. 낯선 사람이랑 나랑 대하는 차이가 없다. 호혜평등이다. 이 아파트에 2년 사는 동안 아는 사람이 편의점 주인아주머니밖에 없었다. 적어도 몇백 명이 같은 건물에 사는데 내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고립감이 엄습했다. 그냥 오다가다 대충 만나는 이웃이 있었으면 했는데 먼저 손 내미는 방법을 40년 넘게 배우지 못한 나는 포기상태였다. 이걸 태어난 지 석 달 된 몽덕이는 그냥 한다. 나이도 성별도 인상도 입성도 가리지 않고 꼬리를 흔든다. 

 이유 달지 않고 환대하는 게 사람들에게 어떤 미소를 불러일으키는지 몽덕이를 보며 배운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만 10명이면 8명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옛날 바둑이 같이 생긴 갈색 개가 꼬리를 흔들며 좋다고 난리 치면 안 그럴 수가 없나 보다. 몽덕이 덕분에 동네 사람들하고 안면을 텄다. 한 번도 “안녕하세요” 이상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경비 아저씨도 개를 키운다. “파주에 사는데 재개발한다고 빈 집들이 많거든. 그렇게들 개를 버리고 떠나. 내 개는 12살인데 그 개가 떠날 날이 가까워졌다 생각하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어. 그럴 때는 차라리 입양하지 말걸, 그러면 떠날 날도 걱정 안 해도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 어떻게 개를 버리고들 가는지 모르겠어.” 아저씨는 몽덕이 얼굴을 쓰다듬어 줬다. 몽덕이가 그 손을 핥았다. 

 “너 때문에 내가 웃게 된다.” 또 길에서 우연히 만난 똘똘이 보호자는 쪼그려 앉아 몽덕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똘똘이는 고급스럽게 보이는 스피츠다. 빗질을 어찌나 잘했던지 털이 솜사탕같이 몽글몽글하다. 그 개는 유기견이었다. 처음 왔을 땐 떡진 털에 여기저기 얻어터진 얼굴이었다. 똘똘이 아줌마가 사랑으로 돌봤다. 지금은 꼭 재벌견 같다. 베이글과 기동이 보호자도 길 가다 만났다. 유기견이었던 베이글은 아직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벌벌 떤다. 기동이는 만화영화 둘리에 나오는 기동이를 정말 닮았다. 

 몽덕이를 데리고 나가면 꼭 몇 마디씩 낯선 이들과 대화 하게 된다. “몇 살이에요.” “쓰레기를 먹는데 어쩌죠.” “깨물깨물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그러다 다른 개들의 사연도 듣는다. 슈나이저 믹스견인 루비와 토끼 보호자는 걱정이 많다. ‘토끼’가 전혀 토끼 같지 않다. 자꾸 으르렁 거린다. 토끼는 루비의 아들이다. 루비도 유기견이었다. 그 보호자가 루비의 임신 이야기를 들려줬다. 산책하다 만난 슈나이저와 합방했다. 그 슈나이저가 14살인데 엄청 낑낑거렸단다. 그 보호자는 14살 수컷 슈나이저가 어떤 표정인지 흉내 냈는데 정말 상상이 됐다.   

 석 달 몽덕이한테 자꾸 뭘 배우게 된다. 내가 언제 누군가를 아무런 이유 없이,  무차별적으로, 진심으로, 환대했던 적이 있을까? 그 환대를 받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보면서, 어쩌면 고립은 내가 자초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개 몽덕이, 세상으로 첫 발걸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