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이 Dec 30. 2019

전주의 마력

시시하지만 괜찮은 하루 1

전주는 매력적이다.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대로변에 큰 건 물 두 채가 있다. 하나는 ‘킹콩관광나이트’다. 바로 옆 건물을 보면, 이 거리는 인생을 집약한 유머가 콘셉트인 걸 알게 된다. ‘웨딩의 전당’이다. 재혼은 여기서 하고 싶다. 청첩장엔 장소 ‘웨딩의 전당’ 괄호 열고 킹콩관광나이트라고 쓸 거다. 대로를 걷다 콩나물국밥집을 발견했다. 무려 40년 전통이다. 그 집 이름은? ‘서울 회관’이다. 정말 궁금하다. 이 정도면 무엇을 예상하건 그 이상을 보여주는 마력이다. 빨간색 버스가 지나간다. 영국 버스에서 따온 거 같은데 정체를 알 수 없다. 타보고 싶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았더니 엉덩이가 따끈따끈하다. 벤치가 온돌이다. 할머니 한 분이 옆에 앉으셨는데 “이 벤치만 있으면 버스가 안 와도 좋다”며 “여기 시의원들이 일을 잘한다고”라고 했다. 좌욕을 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버스가 정말 안 온다. 똥꼬가 탈 거 같다. 버스가 안 온다. 좌욕 벤치로는 안될 거 같다. 찜질방을 마련해 달라!

 근데 정말 “여기 시의원들은 일을 잘하는 거 같다.” 시의원이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버스를 못 타고 택시를 잡아 약속 장소로 가는데 전주시 캐치프레이즈 같은 게 보였다.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문구다. 뇌에 인장을 세기는 캐치프레이즈다. 자고로 캐치프레이즈는 이 정도 캐치해야 캐치프레이즈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한바탕 전주, 세계를 비빈다.” 절대 잊을 수 없다. 다만 궁금하다. ‘한바탕’은 왜 넣었을까?

 전주에 왔으니 콩나물국밥을 먹어봐야 할 거 같았다. 24시간 영업점에 들어갔다. 내부는 옛날 초등학교 수련회 갔을 때 급식판 들고 밥을 받던 식당 같다. 중년 남자 몇이 국밥을 먹고 있다. 이런 집이 원래 맛있다. 메뉴판에 황태국밥과 콩나물국밥이 있다. “국밥 주세요.” 했더니 더 묻지 않는다. 무슨 국밥을 줄까 정말 궁금했다. 콩나물국밥이 나왔다. 전주에선 계란을 국밥에 넣어먹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수도권에서 먹은 전주콩나물국밥은 다 거짓부렁이다. 

 저녁에 택시를 타고 다시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 킹콩관광나이트 쪽을 보니 불이 다 꺼졌다. 실망했다. 안타까웠다. 택시 아저씨한테 여쭤보니 다른 데로 이사했단다. “요즘 나이트가 안돼요. 나이트 갈 돈이 어딨어요. 경기가 안 좋아요.” 여기 아파트는 얼만지 물었다. “새 아파트는 30평대 3억은 하죠.” 아저씨는 1억 9천짜리 옛날 아파트에 사신다고 했다. 전주에도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없다. 아저씨한테 집 없는 설움을 한참 얘기했더니 다음에 전주 또 언제 오냐고 하셨다. 매력적인 전주고 따뜻한 택시기사였다. 하루 또 잘 보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