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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이 Dec 30. 2019

결핍을 알아본다?

시시하지만 괜찮은 하루 2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없음을 알아본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일까? 이 구절 때문에 영화 <러스트 앤 본>을 봤다. 왜 불어 제목을 영어로 바꿔서 달았는지 모르겠다. 돌고래 조련사 스테파니는 하루아침에 두 다리를 잃었다. 자기가 사랑했던 돌고래 탓에 잃었다. 방에 틀어박혀 살던 스테파니는 전에 딱 한 번 본 남자, 딱 한 번만 봐도 전두엽 따위는 없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는 알리에게 전화한다. 알리는 삼류 복서다. 날건달과 복서 중간 정도라 하겠다. 하루만 사는 사람이다. 알리는 스테파니를 안고 해변으로 간다. 수영한다. 스테파니가 “출장” 요청을 하면 섹스도 한다. 알리의 무심한 태도가 되레 스테파니에겐 자유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의 균형이 바뀐다. 스테파니는 알리가 다른 여자들이랑 놀아나는 걸 참을 수가 없어진다. 알리는 스테파니의 ‘사랑’에도 무심하다. 

 그런 알리가 영화 마지막에 운다. “사랑한다”라고. 눈 깜짝할 새 아들 샘을 잃을 뻔한 날이다. 언 호수에서 알리가 오줌을 누는 사이 아들이 빠졌다. 얼음을 깨느라 알리의 주먹이 조각났다. “너무 무서웠어. 샘을 잃을까 봐. 날 떠나지 말아 줘.”

 “손 하나에 뼈가 27개나 붙어있다니 팔이나 다리뼈가 부러지면 몸에서 나온 칼슘으로 저절로 뼈가 붙고 더 강해지기도 하지만 손가락이 부러지면 절대 완치될 수 없다. 펀치를 날릴 때마다 통증을 느낀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어느새 갑자기 그 고통이 살아난다. 깨진 유리조각처럼 나를 찌르고 또 찌른다.”

 ‘결핍’을 알아보는 게 무슨 말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사랑의 조건은 있는 거 같다. 자신이 실은 쉽게 부서져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자각, 오줌 누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감각, 자신이 실은 거대한 세상에서 별 것 아닌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욕망보다는 연민과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나, 너, 우리 이렇게 기대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존재라는 연민 말이다. 그가 떠난 뒤 내 손가락뼈는 모두 부러졌다. 그래도 그 손으로 밥을 하고 청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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