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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이 Dec 31. 2019

철학자 요가선생

시시하지만 괜찮은 하루 3

 동네 헬스클럽에 요가 강습시간이 있다. 한 50명쯤 같이 한다. 여자가 49명이다. 남자 한 명은 50대인 거 같다. 나보다 못하는 단 한 명이다. 허리를 구부려 다리를 감싸안는 자세를 할 때 우리 둘만 손끝이 무릎쯤에서 달랑거리고 있다. 자기 몸 감각에 집중하라는데 나는 그 아저씨한테 집중한다. 저 아저씨보다는 잘하고야 말겠다. 아직 꼴등은 결정되지 않았다. 아저씨가 이길 거 같다. 나보다 자주 나오는 게 확실하다. 

 요가 강사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다. 머리서기라고 물구나무 자세를 취한 다음에 다리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다시 직각으로 세우는 신기를 선보였다. 기겁했다. 자기 몸을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우라를 내뿜는다. 

 “제가 수련할 때는 항상 완벽하려고 했어요. 완벽한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했어요. 수련 전에는 먹지도 않고요. 그런데 그저께 웨이트를 하는데 제 몸보다 더 무거운 걸 들다 보니 무서운 거예요. 내려놓기가. 생각해보니 실패를 해보질 않았어요. 어떻게 실패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바벨을 들고 내려놓지도 못하고 바들거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그냥 주저앉으면 된다고. 안 다친다고. 그래서 주저앉았어요. 안전장치가 있어서 바벨이 거기 걸리게 돼 있더라고요. 수련이 완벽해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실패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란 걸 알게 됐어요.” 이 아우라 여인은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날 팔꿈치 사이에 머리를 놓고 거꾸로 서는 자세를 시도해보려고 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시도했다는 게 맞겠다. 엉덩이를 하늘로 들긴 했는데 다리가 부들거렸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가 바뀌니 공포가 밀려왔다. 다치지 않는데 그냥 해보고 주저앉으면 되는데 하늘로 똥을 발사할 것 같은 자세로 떨고만 있다. 요가 선생님이 옆에서 “한번 해보세요. 제가 도와드릴 게요” 한다.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무서워요.” 이제 태어난 지 반백년이 다가오는데 이런다. 두려움은 얼마나 내 세계를 가두나. 나는 얼마나 내 몸을 못 믿나. 

 하늘로 똥 싼 자세를 하고만 하루였지만, 그래도, 2020년 겨울쯤엔 팔 사이에 머리를 넣고 엉덩이를 끌어올려 보리라 생각했다. 아직 아저씨도 머리서기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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