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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이 Jan 07. 2020

개에게 구걸하는 사랑

시시하지만 괜찮은 하루 5

 이제 태어난 지 두 달 된 개에게 사랑을 구걸하나? 밀란 쿤데라는 거짓말했다.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핀 책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1960년데 체코와 스위스를 배경으로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 이 네 사람의 사랑을 한참 이야기하지만, 이 책에서 진짜 사랑은 테레사와 개 카레닌이 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의 이름은 ‘카레닌의 미소'다. 직선의 시간을 사는 인간과 달리 영원히 순환하는 시간을 사는 개 카레닌은 아침에 크루아상 하나를 먹고 테레사를 따라 소를 친 뒤 잔다. 거기에 지루함도 모자람도, 자기부정도 없다. 쿤데라는 카레닌이 우리와 달리 “낙원에서 쫓겨난 적이 없는” 존재라고 한다. 

 사랑에 빠진 순간 우리는 연인에게 무엇을 보나? 마리 루티는 <하바드 사랑학 수업>에서 라캉을 들어 이를 ‘그것’이라고 불렀다.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사실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궁을 벗어나 맞닥뜨린 세상에서 인간은 자신이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달아간다. 그 결핍은 실체가 없는 구멍이다. 이를 메워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열망이 낭만적 사랑으로 이끈다. 연인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에게 덧씌운 환상, ‘그것’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스위스 교수 프란츠는 언어와 학습과 강의의 세계에서 산다. 그에게 음악은 규칙을 초월한 도취다. 그에게 화가 사비나는 그런 음악이다. 체코 공산체제에서 음악에 맞춰 일어나 행진하고 작업했던 사비나에게 음악은 벗어나고 싶은 규율이다. 사비나 삶의 동력은 이런 규율에 대한 배반이다. 둘은 연인이지만, 서로의 낱말도 이해할 수 없다. 상대는, 어느 정도는, 자신의 열망을 반사해 보여주는 거울이다. 끝없이 바람을 피우는 토마스를 테레사는 자신의 ‘약함’으로 길들인다. 인간의 사랑엔 역학관계의 비극이 그늘을 드리운다. 그래서 쿤데라는  이렇게 썼다.“참된 인간적 친절이 절대적인 순수성과 자유를 지니고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떠한 힘도 갖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뿐이다.... 인간들에게 내맡겨져 있는 것들, 즉 짐승들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이런 문장을 읽고 개를 키우고 싶었다. “이 특이한 사랑은 몰아적이다. 테레사는 카레닌으로부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사랑까지도 그녀는 한 번도 카레닌으로부터 요구하지 않는다. 인간 남녀의 쌍들을 괴롭히는 질문을 그녀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가?.... 사랑을 문제 삼고, 사랑을 측정하고 탐사하며, 사랑을 조사하고 심문하는 이들 질문은 모두가 사랑이 이미 싹도 트기 전에 그것을 질식시켜 버린다고 보수 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가능한 말이다. 바로 그 이유는 우리가 사랑받기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무 요구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로 다가가 그의 현존 이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사랑을) 바라기 때문이다... 테레사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수락했다.”

 그.런.데. 나는 잡종개 몽이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개한테마저 사랑을 강요하고 있다. 내가 쓰다듬을 때 좋아해줘, 내 무릎에 올라오고 싶어해줘, 나한테 그 꼬리를 흔들어줘, 잠잘 때 내 곁에 와서 작은 몸을 말아줘. 줏대 있는 잡종개 몽이는 사료 따위에 자신을 팔지 않는다. 이 모든 요구를 다 거절했다. 짧은 다리로 부엌과 배란다를 뛰어다니고 내 발꿈치를 공격한다. 몽이와 일주일을 보내면서, 나는 몽이가 내가 쓰다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똥이 마려울 때는 굉장히 당황한다는 거, 흰색 곰을 무는 걸 좋아한다는 거, 특히 양말 짝이라면 환장한다는 거, 비가 오면 밖을 멍하니 쳐다본다는 걸, 알았다. 내가 사람에게 해주지 못한 사랑,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그가 원하는 걸 그대로 인정하는 사랑,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을 몽이에겐 해보고 싶은데,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그 분홍색 배와 발바닥을 보면 자꾸 만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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