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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06. 2023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 오늘 생일이에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생일 보내기

작년 나는 29살이었다.


어디서 아이유의 인터뷰를 봤는데, 한 해를 정말 후회 없이 보내서 아쉽지 않다는 인터뷰였다.

그 인터뷰에 감명받아 나 역시 20대 마지막을 기갈나게 보내겠다며 다짐했다.


생전 안 해본 대외활동도 나가고, 밤새 술을 마시고,

MT 가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술을 마시고

지긋하게 이어진 손을 마주 잡고 연대하며

이 인연이 오래오래 이어가길 빌었다.


마지막 20대를 기념하며

당차게 '나 담주에 생일이야 생파 해줘!'라고 외쳤고

당참을 부름 받아 오후 반차낸 사람, 가족약속을 미룬 사람, 당직인데 잠깐 온 사람 등등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였다.

그렇게 잊지 못할 생일을 보냈다.


그런데


만나이라니요?

정부의 만 나이 도입에 의해 갑자기 28살이 되었다.

신체 나이가 어려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돌아온 20대

머쓱한 마음으로 올해 생일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했다.


요란스럽게 보내자니 뭔가 마뜩잖았고 잔잔하게 보내자니 왠지 아쉬웠다.

이 애매모호한 마음의 갈피를 못 잡던 어느 날


9월 2일. 피자 먹으며 같이 책수다 떨자는 오프라인 모임 공고를 봤다.


오호, 내 생일인데 이 날?

모르는 사람들과 생일을 한번 보내봐?

괜찮은데? 신청.


그렇게 다시 돌아온 20대.

이번 생일 당일은 모르는 사람들과 보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덜컥 오프라인 모임에 신청했다.


인스타그램 북계정을 운영한 지 어언 2년 차.

팔로워 1800의 나름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지만 내 활동은 소심 그 자체다.


게시글, 스토리에 좋아요 누르기. 초반부터 봐온 몇몇 분들에게 내적 친밀감 가지며 DM 보내기

게시글에 댓글달기가 전부인 소심 그 자체.


정작 독서모임은 북계정과는 전혀 다른 플랫폼을 통해 활동했었다.


그러니까, 온라인에서만 보는 분들을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본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고민하다 만들어진 단톡에 '저 내일 생일이에요!'라고 얘기했다.

축하인사가 오갔고, 한 분이 케이크를 가져오시겠다고 했다.


세상 마상 이렇게나 따듯한 마음이 있다니.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생일 당일 합정으로 향했다.



실로 한 사람의 인생은 책과 같다고 한다.

상대방의 서사를 듣고 이해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쉽사리 그를 미워하지 못한다.


그날이 그랬다.

11명이 모였고, 11권의 책을 읽었다.


저마다 가진 굴곡진 서사가 툭툭 나올 때마다 울컥 눈물이 차오르다가

방긋 웃음이 피어났다가 후잉 안타까움이 배어 나왔다가 휴우 안도가 차올랐다.


실로 이런 '대화'다운 '대화'가 언제였는지 궁금해질 만큼

'대화'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서로 각자가 가진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놓을 때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경청의 눈빛에 점점 이야기는 용기가 되고 위로가 됐다.


'왜 스스로에게 이렇게 각박할까요?'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없는데, 기준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직도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찾고 싶어요'

'사람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 아프대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아픈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도망치고 싶었는데, 다시 돌아오려고요'

'언제든 돌아오세요! 저희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게요'


사랑은 여기저기서 다양한 형태로 자리하는구나

또다시 '음 역시 사랑이 좋아. 사랑하며 살아야지' 나오는 순간 떠오른 생각이었다.



생일이 지났고 다시 29살이 됐다.

그날 29살이 아니라 '209살'이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새삼 이전에 비해 스스로가 굉장히 단단해졌구나 체감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책과 같아서

그 서사를 아는 순간 우리는 함부로 그를 미워할 수 없으며 사랑할 수밖에 없다더니


11권의 책을 읽고 나니

실로 이 모든 서사를 가진 이들의 이야기가 아름다웠고 찬란했다.


보고 계신가요 그대들?

잊지 못할 29번째 생일이었습니다.

9월도 무해하고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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