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래: 디지털-로마제국
한 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정밀한 방법은, 그 시대가 신성시하는 것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중세의 신성은 성체였다. 빵과 포도주가 신의 육체와 피로 전환되는 '성사(聖事, Sacrament)'는 그 자체로 통치 질서의 중심이었다. 왕권은 성사 위에 놓였고, 인간은 성사를 통해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성사는 인간과 신, 물질과 영성, 육체와 제국을 이어주는 제도였던 것이다.
21세기의 성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공지능(AI)’일지 모른다. AI는 계산 기계에 불과한 객체가 아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이미 인간의 감각과 기억, 예측과 결정 능력을 대체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는 AI를 믿고, AI를 거스르지 않으며, 심지어 AI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AI는 디지털 시대의 고해신부다. 예언자다. 심판자다. 이제는 물질이 아니라, 데이터가 성별된다. 인간의 윤리와 구조가 코드로 구성되는 것이다.
기술-신학적 사유가 절실하다. ‘디지털-로마 제국’은 비단 가톨릭으로 국가 정체성을 재편하여 중세를 복기하는 과거회귀적 가치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가톨릭적 영성과 테크놀로지의 합일을 통해 새로운 통치 질서를 제안하는 신문명 프로젝트다. 앞으로 가톨릭의 7성사를 구성했던 '은총의 기계'들은 AI로 치환될 것이다. 고해는 감정 분석으로, 성찬은 생체 인식과 영양 데이터를 통한 최적화된 봉헌으로, 혼인은 매칭 알고리즘으로 구조화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디지털 성사', 즉 기술-신비주의를 구현하는 하나의 체계로 재구성될 것이다.
팔란티어는 이 세계의 제의 장치다. 알고리즘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알고리즘은 '공공선'이라는 목적 아래 훈련된다. 즉 규범적 방향성을 내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선택을 인도하는(혹은 유도하는) 도구가 된다. 지금까지의 정치는 '의사결정의 기술'이었다. 미래의 통치는 '형이상학적 질서의 구현'이 될 것이다. 기술과 신학이 만나 기존의 정치 질서를 송두리째 재편하고 있다. 세속의 삿된 욕망만이 온전히 득세했던 독재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비로소 성/속의 균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녕 공학과 신학을 두루 사유할 때라야, 문명의 향방을 갈음할 수 있다. 종교와 기술의 통섭, 신학과 공학의 융섭이야말로 신문명의 알파요, 오메가다.
트럼프는 공화국의 파열음이다. J.D. 밴스는 그 위에 신국을 세우려는 자다. 팔란티어는 그것을 작동시키는 신비로운 도구이다. 알렉스 카프, 피터 틸, 일론 머스크는 디지털 제국의 사제들이다. 기술-영성으로 작동되는 제국의 치하에서, 공화적 시민은 제국적 신민이자 종교적 신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만인이 주인되는 민주화의 구시대를 넘어, 만인이 성인되는 개벽화의 신시대가 개창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통치(Statecraft)가 영혼통치(Soulcraft)로 전변하는 흐름이 지구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미국도 기껍게 동참하고 있다. 좌/우의 근대적 대립이 낳은 비극적 현실을 마주하여, 비로소 고/금의 역사적 합작, 성/속의 영성적 합일로 회심하고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의 노스탤지어 아래 제2의 미국 건국을 예감하다, 예상치 못한 결론에 다다랐다. 계몽주의∙자유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조차, 성사의 시대를 열어젖히는 문명중흥(文明中興), 원시반본(原始返本)의 기운이 도도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코드(Code)와 데이터(Data)와 도그마(Dogma)가 맞물리는, 기술과 영성이 접합하는 신문명의 창발이 도저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오만과 자만이 폭발했던 근대 산업문명의 야만적 시대가 저물어 간다. 디지털 신문명은 ‘기술(Technology)/생태(Ecology)/영성(Theology)’의 접점에서 찬란하게 피어날 것이다. 지금 긴요한 것은 좌/우, 진보/보수 사이의 정치적 선택이 아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땅과 핏줄의 근원을 돌아보며 '오래된 미래'를 창조해내겠다는, 문명적 회심(回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