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사 이후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307호에서 살고 있는 와중에 동생의 한마디면 새집이 새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언니 잠옷에서 예전 집 냄새 나.’ 이 말 한마디에 아끼던 잠옷을 태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습하고 오래된 나무집의 꿉꿉한 향을 지우기 위해 러쉬 카마 바디로션을 듬뿍 바르는 습관이 전집 101호에서 있었다. 치덕치덕 바르니 피부로 채 흡수되지 않고 입은 잠옷에 기름이 스며들고 그 집의 향도 같이 배였다. 307호로 이사 오고 몇 번이고 빨아도 향은 없어지지 않는다. 엄마집에 빨래를 가지고 가서 최근 새로 산 새 세탁기에 건조기까지 돌려도 봤다. 그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 냄새는 버리고 싶은 기억인데 버릴 수가 없다. 끈질기게 나에게 붙어있다. 그럴 수밖에. 나는 버리는 것을 잘 못 한다. 그 냄새가 베긴 잠옷도 버릴 수가 없다. 오래된 내 떠돌이 생활을 함께해 준 잠옷인데… 101호에서 있던 시간보다 더 오래 내 곁을 함께 했는데…
101호에서 천장 누수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한여름이 되기 직전 에어컨을 막 틀기 시작한 때에 천장에서 물이 세기 시작했다. 그 천장의 물자국들은 금세 곰팡이로 바뀌었고 집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세모모양의 거실 천장에 그렇게 된 것인데 거실에 있는 에어컨 때문에 나머지 문들을 꽁꽁 닫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의 대책은 주인아저씨에게 요청하는 것과 그냥 당장의 내 코를 막는 방법뿐이다.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매일 인센스 태우기와 카마크림 듬-뿍 바르기다.
동생의 한마디는 그 집에서 스트레스받았던 모든 것들이 한 번에 그 향과 함께 몰려오게 한다. 그 집은 빛이 잘 들지 않아 나는 항상 기운이 없었다.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열면 바로 옆 건물 고깃집에서 고기 냄새가 집 안으로 들어온다. 빛과 향이 중요한 내가 아무것도 충족할 수 없는 집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집에서 내 병은 더 커졌다고. 점점 커져서 307호에서도 치유가 안 된다고.
101호를 떠나기 직전, 그 집에 대한 애정이 하나도 남지 않은 나는 집을 방치했다. 그때의 습관이 지금의 습관이 되었다. 어떻게 서든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 이어진다. 실은 그 집보다 지금 집이 더 난장판이다. 내 마음 같다. 사는 공간을 바꾸어도 내 마음은 그대로이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집을, 나를 탓하게 된다. 그 집에서 내내 기운이 없던 것이 집 탓이라고 탓하는 나를 탓한다. 몸도 마음도 망가진 지금의 나를 보며 그때의 집 볼 때 이런 세세한 것들을 보지 않고 급하게 덜컥 계약해 버린 미숙한 나를 탓한다. 내가 그 집도 나도 망가지게 내버려 둔 것 같아 그 탓은 내 것이 된다.
또 해가 떴다. 이 집은 해가 뜨면 해가 뜨는 게 창문에 바로 티가 난다. 층수가 전집보다 높은 것도 있고 나름 탁 트여있었기도 하다. 이 집에 오고 나는 정을 무진장 붙이고 싶은데, 나의 스케줄이 그렇게 하게 두지 않는다. 무언가 들이 나를 잠을 못 자게 만든다. 아마 그건 내 안에 있다. 이러니 나는 날 예뻐할 수가 없다. 나는 나를 괴롭히고 다시 예뻐하려고 애쓰다가 다시 미워하고 괴롭힌다. 나도 언젠가 나를 진심으로 예뻐할 수 있겠지. 내가 나에게 안겨준 트라우마를 싹 다 지울 수 있겠지. 행운이 가득한 이 집에서 나는 그것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