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우르르 목욕탕을 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동네 목욕탕으로 어떤 날은 차를 타고 도심 외곽에 있는 규모가 꽤 큰 목욕탕을 찾아갔습니다. 중학생 때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습관처럼 거의 매일 반신욕을 하게 된 이후로는 아예 발길을 뚝 끊었습니다. 늦은 저녁 시원한 물 한 잔을 옆에 두고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반신욕을 하는 그 시간 자체가 '힐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부러라도 가끔 동네 목욕탕에 가봐야겠습니다. 손님이 없어 동네 목욕탕은 끝났다는 목욕탕 사장님의 헛헛한 표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지난 3년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는데, 난방비 폭탄으로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소상공인을 만나봤습니다.
■ 난방비 폭등으로 힘드시죠?
아이템이 정해지면 본격적인 자료 조사와 함께 인터뷰이 섭외에 들어갑니다. 인터뷰이를 섭외할 때는 관련 단체나 기관에 연락하거나 취재원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무작정 들이댈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섭외할까 고민하다 2년 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을 때 취재했던 동네 목욕탕을 다시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1981년에 문을 연 뒤로 42년째 운영 중이라는 동네 목욕탕, 그곳에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화기 너머 사장님의 깊은 한숨이 느껴졌습니다. 사장님의 속상한 이야기는 20여 분간 계속됐습니다. 한참을 듣다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찾아가려고 하는데 언제 가면 될까요?" 사장님은 미안해하면서 거절하셨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은 스케치라도 해야겠다 싶어 그 목욕탕에 다시 찾아갔고, 사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화로 사장님은 그사이 힘들어서 많이 늙었다고 하셨는데 그냥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국목욕업중앙회서부지회로 연락했습니다. 양천에 1곳, 은평에 1곳을 소개받았습니다. 한 곳은 기자들에게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 어제도 다녀갔다. 인터뷰 못 하겠다고 하셨고, 다른 한 곳은 흔쾌히 취재에 응하겠다고 하셔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최근 폐업을 결정한 목욕탕 업주는 '무작정 들이대기'가 통했고요. 이렇게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 사용량 줄었는데 요금은 50% ↑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목욕탕을 찾아갔습니다. 이달에 내야 할 전기요금 고지서를 들여다봤습니다. 2백 4십만 원이 넘게 나왔더군요. 목욕탕 업주는그동안 모아 둔 전기요금 고지서를 찾아와 취재진에게 펼쳐보였습니다. 1년 전엔 전기 1만 6천 킬로와트시를 쓰고 1백7십여만 원을 냈는데 지난달엔 이보다 적게 썼지만 요금은 50% 가까이 늘었습니다.
목욕탕 업주는 가스비를 아끼기 위해 전기를 사용하는 간이 보일러를 직접 설치했지만, 전기세가 이렇게나 오르니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고 토로했습니다.
탕 물을 (데울 수 있게 전기를 사용하는) 간이 보일러를 만든 거예요. 수동으로. 물도 덜 들고 가스도 덜 들어가고…, 그런데 전기요금이 240만 원 나오고…
■ "부득이하게 목욕비를 인상하게 됐습니다."
목욕탕 업주는 7천 원이던 목욕 요금을 8천 원으로 올렸습니다. 목욕탕 이용자 대부분이 동네 어르신이다 보니 천 원 올리기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8천 원도 동네 어르신들에겐 부담이라는 거죠. 요금 인상 안내문을 보니 사장님의 고민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요금을 올리니 손님이 줄었습니다. 세신사도 두지 않고 혼자 목욕탕을 관리하면서 겨우 버티고 있는 실정입니다.
요금을 올린 만큼 손님이 두 번 올 거 한 번만 오니까...세신사도 제가 해요. 그분들 보조를 해줘야 하는데 나도 없는데 어떻게 해요?
■ "영업 해 봤자 무슨 소용"
한국목욕업중앙회 서부지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서부 7개 구에서 목욕탕 19곳이 폐업했습니다. 29곳이었던 은평 지역 목욕탕은 지난해 3곳이 문을 닫아 26곳으로 줄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진행한 난방비 긴급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목욕탕 업주 대부분이 난방비가 매우 부담된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을 물었더니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35.8%나 됐습니다.
■ 그때 그 동네 목욕탕은 남아 있을까요.
다시 만난 양천의 한 동네 목욕탕 업주는 이젠 어디 가서 목욕탕 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코로나 발생 초기엔 목욕탕이 집단감염의 온상이 된 거 같아서, 지금은 손님도 없는데 문을 열고 있자니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겁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고물가에 손님이 갈수록 줄어 힘들다고 합니다. 하루 20명도 안 온다고 합니다. 그 많던 세신사들은 어디로 갔는지 세신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합니다.
세신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야. 세신사들도
벌이가 안 되는 업종을 바꾼 거예요.
한 동네에서 시장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30년 넘게 영업을 이어온 목욕탕 2곳 중 한 곳은 지난 12월을 끝으로 문을 닫았고 남은 한 곳도 폐업을 고민 중이었습니다. 공공요금 인상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코로나가 목욕 문화를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동네 목욕탕 업주들은 한때 주말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호황이었지만 이제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목욕탕 업계가 살아남기는 앞으로 힘들어요. 끝났다고 봐야죠.
어릴 적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우르르 몰려가던 그때 그 동네 목욕탕은
남아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