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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변 Jun 21. 2021

로스쿨 준비생의 시간관리법

로스쿨 상담소: 나의 이야기② 나의 공부를 주위에 알리지 말라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고, 이어 로스쿨도 준비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뜻이다. 그것도 아주 깊게. 


많은 분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하거나, 로스쿨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첫 감정은 ‘안타까움’ 혹은 ‘동병상련’. (조용히 눈물 닦을 휴지를 꺼낸다) 직장과 학업을 동시에 해내고 있는 모든 분들께 박수와 연민의 마음을 보내면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손PD의 하루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인생의 구간이 나타나는 것 같다. 내게 첫 구간은 고등학생 시절의 3년, 그리고 두 번째 구간이 바로 직장과 학교를 병행하며 로스쿨을 준비하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정작 로스쿨에 다닌 구간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 ㅎㅎ) 암튼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던 당시 나의 하루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오전 6시 기상. 후다닥 준비하고 학교 도서관에 도착하면 대략 오전 7시. 이때부터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고, 오전 9시에 시작하는 1교시 수업에 들어간다. 이제부터 점심시간까지 3시간 정도 전공 강의를 듣고, 12시쯤 수업이 끝나면 동기들과 학생회관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회사로 이동. 


회사에 도착하면 대략 오후 1시. 이제 나의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이번 주 예정된 녹음과 생방을 위해 선곡을 하고, 큐시트를 작성하고, BG와 코드를 고르고, 섭외를 하고, 편집을 한다. 데일리 프로그램의 코너나 아이템과 관련한 회의를 하고, 특집 회의를 하거나 부서의 기획회의에도 참석한다. 매일 50명 넘게 찾아오는 매니저분들과도 가능한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작가, 리포터, 자료조사원 등 스태프들의 민원도 두루 해결한다. 예정된 스케줄을 바꿔 달라는 DJ나 출연자의 요청이 있을 땐(인기 DJ, 출연자일수록 요청이 잦다) 스케줄을 조정하고(신인들 정말 미안해), BG나 코드 음악을 찾고 남는 시간엔 자료실에 들러 CD를 찾아보거나 새로 나온 음반도 확인한다. 출연료가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 여부도 틈틈이 확인하고, 개편이 맞물렸을 땐 데일리 프로그램 외에 개편 프로그램 준비도 함께 한다. 그리고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생방과 녹음까지 모두 마치고 광고 점검까지 끝내고 나면 전쟁 같은 하루 업무가 어느 정도 잦아든다. 


새벽 1시경. 이제 사무실에도 몇 팀만이 남아 있을 뿐, 고요가 흐른다. 휴우우우우~. 길게 심호흡을 하며 퇴근 준비를 한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나는구나. 비로소 사무실을 나선다. 집으로 이동하며 드디어 처음으로 ‘남’을 위한 음악이 아닌 ‘나’를 위한 음악을 듣는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퇴근길에 듣는 음악은 나에게 가장 큰 위로였음을 ⓒAsim Kodappana on Unsplash

맡은 프로그램에 따라 편차는 있었지만, 거의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나의 하루 루틴은 위 시간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그 시절의 나에게 담백한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자세히 나의 하루 TMI를 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묻는 질문(직장에 다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나요?)의 답이 바로 이 루틴에 있다고 생각해서다. 


| 10년의 시간 동안 축적한 나의 하루 루틴

하루 루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것 같다.


첫째, 엄격한 하루 루틴이 있었기에, 항상 피곤함을 끌어안고 살았던 그 시절의 내가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 출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의,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험,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회사와 같은, 어느 정도 강제력을 수반한 루틴들이 누우려는 나를 일으켜 세웠고 쉬려는 나를 걷게 했다. 


둘째, 흔들리지 않는 루틴이 있었기에, 나는 업무 시간에 눈치 보며 공부를 하거나 공부를 하면서 업무를 걱정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 나의 원칙은 ‘회사에 있는 동안은 절대로 공부를 떠올리거나 걱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설령 업무 마감이 늦어져 퇴근이 한없이 늦어지더라도(PD들은 때로 다음날 거리의 가로등이 '꺼지는' 것을 보며 퇴근한다 ㅎㅎ)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켰다. 대신 학교나 집에서 공부를 할 때에는 가능한 업무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덕분에 업무에도 공부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셋째, 루틴을 지키는 생활은 내가 (비록 공부라는 딴짓을 하면서도) 여전히 제법 인정받는 PD로 남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한편으로는 정신적 안정감(나는 일을 꽤 잘하는 사람이라는 자존감 + 만일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여전히 좋은 PD로 남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여유)을 유지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꽤 괜찮은 평판도 지켜낼 수 있었다.


당시의 내가 회사에서까지 무리하게 개인적인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나는 본의 아니게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었을 테고, 그게 미안해 그들의 눈치를 보았을 테고,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면 기나긴 공부의 여정을 끝낼 수 있을 만큼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또한, 내가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누군가에게는 ‘해야 할 업무를 동료들에게 미루고 개인적인 공부를 하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밀집된 지역에서 옹기종기 모여 생활하는 환경에서 평판은 너무나 중요한 이슈인 것 같다. 


조금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훗날 나의 성취가 부끄러운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나의 공부를 주위 동료들에게 알리지 말라. 심지어 배려나 양해를 바라는 것은 순진하다 못해 이기적인 생각이다.  

공부는 치열하게! 그러나 조용히! ⓒMaxime Agneilli on Unsplash

|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습관’

결국 성취를 만드는 것은 어떤 ‘습관’인 것 같다. ‘결심’에는 결과를 만드는 힘이 없다. 내가 로스쿨에 가고 싶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고 해서 로스쿨에 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로스쿨에 갈 만한 정돈된 하루 루틴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법조인이 되는 길이 열린다. 


비단 로스쿨뿐이 아닌 것 같다. 지루하고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일상의 반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에야 성취는 비로소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 같다. (그냥 막 손짓하면 안 되냐고요 ㅜㅠ)


암튼 이렇게 나는 이제, 두 번째 대학도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넘어 버렸지만, 지금도 가끔은 새벽 도서관과 강의실의 공기가 그리워지곤 한다. 힘든 첫 직장 생활을 견디던 어린 나에게 휴식과 안식, 도피의 공간이 되어주었던 학교. 많이 고마워.

새벽 강의실에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Nathan Dumla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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