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된 백송과 밀양호, 영남루

밀양에서의 두번째 날

by 손 영

밀양에서의 두번째 날,

월연터널을 지나 월연정과 백송나무를 만나러 갔다.


월연정은 한림학사를 지낸 월연 이태 선생이 1520년에 세운 정사라고 한다.

이 월연정 아래에는 500여년 된 백송나무가 있는데 간판에서 안내하는 것과 같이 원래 세 그루 있던 것이 태풍으로 인해 현재는 한그루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백송이라고 하여 눈처럼 하얀 나무를 순간 상상했었으나

그런 흰색이 아닌, 뭔가 세월을 통해 색이 바랜 것 같은 부연 흐림이 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일반적인 소나무 모습과도 달라보였고

미리 알려준 오백년 묵은 나무라는 관념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부연 흐림은 확실히 주변을 뒤덮고 있던 초여름의 푸르름과는 다른 결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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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5_115815.jpg 월연정 백송나무. 마지막 남은 한그루의 수령은 약 280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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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은 밀양 손씨이다.

밀양 손씨로서 오십여년을 살아왔지만 밀양에는 처음왔다.

밀성은 밀양의 옛이름이고 교동은 이곳에 향교가 있어서 붙은 명칭이다.

이동네가 그 언젠가 나와 같은 성씨를 가진 조상들이 모여서 살고 있던 동네였나보다.

그간 별 느낌없던 혈연이라는, 조상이라는 관념이 멋스러운 고택들과 함께 괜한 뿌듯함 같은 정체모를 감정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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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찾아간 밀양호의 풍경도 압권이었다.

맑은 하늘 아래 잔잔하게 펼쳐진 남색 물바닥이 평화롭게 나를 맞이한다.

호수 바닥을 바라보면 왠지 그 표면에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그리게 된다.

집을 떠나온지 이미 닷새가 지났기에 아내와 딸의 얼굴과 함께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호라, 이런게 여행에서 느끼는 그리움같은것인가..?

무언가를 바라보며 멍때리는 것은

멍하니 사고를 멈추기 위한것이 아니라

생각할 한 두가지를 추려내기 위함인 것 같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물바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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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5_135148.jpg 밀양호



마지막으로 들른곳은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밀양강을 굽어보는 자리에 서있는 영남루에 신발을 벗고 오르니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앉고 서고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경치를 구경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옛 문화재 안에서 마치 동네 원두막처럼 편히 누워 즐기는 사람들을 보자니 처음에는 약간 낯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게 옛유산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 필요한 문화재의 효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늘상 입장료를 내고 절대 만지지 말고 한바퀴 구경하고 무언가 역사적 사실을 배우는 곳으로만 인식되는 것이 우리나라 문화재의 아이덴티티였던 반면에

영남루는 그 오랜 세월동안 늘 백성 곁에 시민 곁에서 언제나 올라와서 발뻗고 눕거나 앉아서 지금 사는 세상을 굽어보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살아있는 문화의 장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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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






이틀동안 바쁘게 밀양을 돌아다니고

늦은 오후에 다시금 다음 길을 나섰다.

당분간 날씨는 계속 맑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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