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머리 앤>, 그녀의 순수함 속에서

앤 셜리-커스버트를 조명하다

by 단순생각


이번 주말엔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 '빨간머리 앤(Anne with an 'E')'을 보았다. 앤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으며 상상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고, 다이애나는 생각했던 것보단 다부진 느낌이 강했다. 길버트는 상상보다 더 잘 생겼고.

드라마는 새로 만들어진 만큼 요즘 사회에 회자될 만한 페미니즘, 편견, 인종차별 등 갈등 요소들을 담고 있다. 이에 시즌 1, 2 정주행을 이틀만에 완료한 기념으로 앤 셜리를 통해 느꼈던 감상을 몇 자 옮겨 본다.



대담하고 순수한

앤 셜리의 파란 눈동자


처음엔 말 많고 어딘가 결핍되어 보이는 그녀의 행동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곧 사랑스러운 앤진심을 보며 내가 여느 어른들과 다를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앤 셜리의 순수하고 파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녀에게 만큼은 어떤 거짓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녀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매번 모진 말을 내뱉는 같은 반의 '조시 파이'조차 미워하지 않는걸. 다만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짚고 넘어갈 뿐. 사람이나 동물 심지어 식물까지도 앤은 함부로 다루는 법이 없다.

(필연적인걸까 얄미운 친구 조시 파이네 집 'Beauty is power.'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이쯤되면 조시 파이도 불쌍하다.)



일련의 가족사로 인해 독신으로 남아있던 매슈 커스버트와 마릴라 커스버트 남매 역시 앤을 통해 변화한다. 매슈야 처음부터 앤을 보고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지만 마릴라는 달랐다. 매슈 대신 일손을 도울 남자아이를 원했기에 앤이 마땅치 않았던 마릴라는 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어릴 적 받은 상처로 다소 무뚝뚝했던 마릴라가, 시간이 흐르며 앤의 어두운 면까지 보듬고 사랑하는 걸 보며 마음 깊이 따듯함을 느꼈다. 나아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엄마가 될 지 고민하는 모습은 아이를 낳고도 외면하는 무책임한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열 달동안 배 아파 낳았다고 해서 좋은 엄마인 것은 아니니까.


내가 싫어하는 필립스


그나저나 애번리 학교의 선생 필립스는 과연 선생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도대체 뭘 가르치는지도 모르겠을뿐더러 사람을 이중잣대로 평가하는 아주 웃긴 인물이다. 새로운 선생님 스테이시가 오면서 필립스에 대한 의문점이 조금 해소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필립스는 교실 내 갈등의 씨앗이 되기 위해 억지로 태어난 인물일지 모른다.



애번리에 퍼지는 페미니즘의 물결


남자와 여자가 따로 앉아야 마땅하며, 서로 말을 섞거나 노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20세기 초 캐나다 애번리. <빨간머리 앤>의 시간적 배경을 감안하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영국의 서프러제트 (suffragette) 같은 여성 참정권 운동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길버트와 정정당당하게 공부로 겨루어 꿈을 찾고자하는 앤과 달리 다이애나는 자신의 꿈이 '남편'의 손에 달려있다 말한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냐는 물음에도 '남편이 허락하면 취미 생활정도로는 좋겠다.'라고 대답하니 말이다. 물론 그 시대에 프랑스 신부 수업을 강요하는 어머니 아래서 자랐으니 이렇게 생각하는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똘망똘망한 다이애나의 엉뚱한 대답에 괜시리 우울해졌다.



이와 비슷하게 요즘도 자신의 꿈을 '현모양처'라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그 애들의 꿈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고등 교육에 대학 교육까지 멀쩡히 마치고 나와 그저 돈 많은 남자에게 취집하는 걸로 생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그 심보가 참으로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삶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닌데도, 돈 많은 배우자를 통해 눈에 보이는 부를 얻는게 목적이라면.. 뭐든 정답은 아니겠다만, 삶의 목표가 이뿐이라면 나는 힘이 쭉 빠질 것 같다. 사회적, 개인적 한계로 인해 이렇다 할 '꿈'이 사라져가는 요즘, 내가 주체적으로 열망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빨간머리 앤>은 페미니즘에 민감한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일깨워주는 드라마이다. 결혼 후에는 아내로써 그 도만 다하면 된다고 강요하는 필립스 선생에서부터 (이 작자는 선생도 아니다. 자신이 게이인 것을 숨기려고 프리시와 거짓 결혼을 하려 했다.) 여자니까 부엌일을 잘하면 그만 아니냐는 목사님, 14살짜리 아이에게 신부 수업을 강요하는 다이애나의 어머니 배시 부인까지. 회를 거듭할 수록 논란거리가 생기는 신기한 드라마다.


나는 시즌 1, 2를 몰아보며 '구식'을 '구식'이라 말할 수 있는 애번리의 분위기, 정확히는 빨간머리 앤을 사랑하게 되었다.



다름에 대한 편견


빨간머리 앤의 애번리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편견이 등장한다. 하나는 피부색에 대한 편견, 또 하나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깊었던 건 조세핀 할머니의 파티 에피소드이다. 앤의 친구 콜은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로 여성스러운 성향 때문에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우리의 앤에게 차별이나 선입견따윈 없다.

소중한 친구가 된 앤과 콜, 그리고 다이애나는 조세핀 할머니(다이애나의 고모할머니)의 파티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할머니가 단짝 거트루트(문학을 좋아하는 프랑스 여성으로 1년 전 죽었다.)와 사랑하는 사이였음을 알게 되는데 이 때 세 아이의 반응이 인상깊다. 할머니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폴, 사랑의 다채로움을 깨닫고 황홀해 하는 앤, 할머니가 잘못된 사랑을 했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는 다이애나.

결국은 세 아이 모두 할머니의 '다름'을 받아들였고, 특히 폴은 할머니를 통해 용기를 얻어 참으로 다행이였다. 불확실한 삶 속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확신을 얻는 것만큼 행복에 넘치는 일이 있을까.



불과 100년 전까지 지독한 유교사회였던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동성애에 대한 이 짙다. 기성세대는 물론이거니와 젊은이들까지 동성애를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곤 하니까.

<빨간머리 앤> 속 20세기 사람들은 동성애를 금기시하여 두려워했지만 앤은 달랐다. 무릇 사랑이 그렇듯, 이 역시 멋진 영혼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앤은 말한다. 모두가 같은 형태의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그 자체로 다채로우며, 그것이 누구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삶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드넓은 세상 속에서 편견에 굴하지 않는, 어쩌면 편견에 무지한 앤의 용기가 멋지다. 감히 누가 앤과 같이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것은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다.


유색인종과는 같은 기차도 타기 싫다는 백인들 사이에서 길버트의 친구 세바스찬은 혼란을 겪는다. 노예 제도는 이미 50여년 전에 폐지되었건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에 50년은 짧은 시간인가보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어디에서나 다양한 피부색을 마주칠 수 있는 요즘이다. 아직도 황인종 외에 다른 피부색을 보면 신기한 것을 본 듯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심한 경우엔 피부색이 같은 중국, 일본 사람들을 보며 수군대는 사람들도 있는걸. 우스운 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도 백인 사회에선 유색인종이란거다. 우리가 타지에 가서 '캣콜링' 등 인종차별 당하는 것은 억울하면서 다른 외국인을 무시하며 우습게 여기는 건 무슨 역설일까. 나의 불편말하기 이전에 타인의 불편함 먼저 인정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빨간머리앤 시즌 3에서는 세바스찬의 이야기도 좀 더 비중있게 다뤄질거라 한다. 2019년에 방영 예정이라는 시즌 3,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오면 정말 좋을텐데-



아름다움(美)에 대하여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학창시절 정말 예쁜 친구와 단짝이 된 경험이 있다. 그 아이는 전교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예쁜 아이어서 어딜가나 주목을 받았다. 굳이 본인이 나서거나 드러내지 않아도 '너 걔 알아?'하면 모두가 끄덕이며 예쁘다고 칭찬하던, 그런 아이 옆에서 나는 스스로를 재단하려 했던 것 같다. 그 누구도 나를 평가하지 않았지만(않았겠지만) 나는 나를 친구와 비교하며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앤에게서 나의 모습을 찾았다. 단짝 친구인 다이애나는 기품있고 아름다우며 의리있는 아이로 누구나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그런 다이애나 옆에서 주근깨 가득한 빼빼 마른 빨간머리 앤은 자신의 외모를 '못생겼다'고 말한다. 그런 앤에게 너의 총명함을 살 수 있다면 자신의 보조개따윈 기꺼이 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다이애나. 다이애나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미의 기준 아래 자신의 외모를 나누어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슬펐다.


불과 6개월 전 취업준비 생활을 청산한 나는, 면접 때 여성 지원자들이 외모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잘 안다. 내가 지원했던 직무는 마케팅 분야였는데 취업스터디만 나가보아도 '예쁜' 외모가 면접에 얼마나 더 유리한지 단번에 와닿았다. (외모와 마케팅의 상관관계를 논하여 보라.)


회사 생활에 괴리감을 느낀 이유 중 일부도 여기에 있다. 결혼한 30대 여성에게 외모가 이전보다 죽었다느니 농담을 하고, 나이 스물다섯을 넘긴 여성 원에게 꺾였다는 둥의 이야기를 서슴지 않는 남성들. 이들 사이에서 업무를 하는게 썩 달갑지만은 않다. 이들은 보며 언젠가 회사를 바꾸게 된다면 나는 남성이 많은 일명 '남초회사'에 머물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회사원에서 벗어난다면 더욱 좋고. (물론 모든 남성이 전부 몰상식하진 않다. 일부의 이야기다.)

이런 공간에 있으니 여성의 바른 외모에 대한 코르셋이 자꾸만 조여져 불쾌하다. 앤의 20세기와 내가 처한 2018년의 현실이 별반 다를 것 없다니. 스테이시 선생님이 나타나 이들의 코르셋을 모두 벗겨주었으면 좋겠다.



<빨간머리 앤> 시즌 1, 2에 대한 감상은 여기까지다.

드라마를 보며 들었던 생각들을 주제별로 정리하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다. 시즌 3가 기다려질만큼 의미있는 드라마였다. 꼭, 꼭, 많은 사람들이 <빨간머리 앤>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었음 좋겠다. 불편하지만 알아야 하는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니까.


마지막으로 순수한 파란 눈망울을 가진 앤 셜리-커스버트의 삶을 존경하고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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