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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만을 좇던 스타트업, 결국 본업을 놓쳤다

확장에 가려진 본질, 사라진 매장이 전하는 메시지

by 쏭저르

자주 찾던 우리 동네 친환경 유통 매장이 문을 닫았다. 브랜드 전체가 철수한 것은 아니지만, 익숙했던 공간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왠지 씁쓸하다. 이 매장은 한 언론사 계열에서 출발해 대형 식품 기업에 인수되며 전국으로 확장된 유기농 전문 매장이다. 유기농 과일부터 과자, 라면, 심지어 소분된 고기까지 판매하며 친환경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생협과 달리 회비가 없다는 점이 접근성을 높였다. 아이가 어릴 때 믿을 수 있는 재료로 반찬을 만들어주고 싶어 자주 찾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친환경 소비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지만, 결국 매출 부진으로 일부 매장들이 문을 닫는 현실을 피하지 못했다.


스타트업, 오프라인으로 발을 넓히다


이 유기농 매장은 이후 한 신선식품 스타트업에 인수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 스타트업은 초신선 육류를 내세워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서 주목받은 기업이다. 낮은 금리와 스타트업 투자 열풍이 불던 시기, 약 9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아 오프라인 친환경 매장을 인수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커머스를 확장하던 기업이 오프라인 친환경 매장을 품었다. 본업인 신선육류 온라인 판매와 친환경 매장의 오프라인 채널이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시장 변화 앞에서 힘을 잃었다.


물가 상승과 소비 패턴의 변화


팬데믹 이후 물가가 치솟으면서 친환경을 표방하는 매장들은 점차 소비자들의 선택지에서 밀려났다. 원래도 일반 마트에 비해 가격이 비쌌던 이 매장 제품들은 물가 전반이 오른 상황에서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해졌고, 가성비 좋은 상품을 찾기 시작했다.


게다가 친환경 제품을 사려면 굳이 오프라인 매장에 갈 필요도 없게 되었다. 쿠팡, 마켓컬리 등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에서 더 빠르고 저렴하게 친환경 제품을 구매할 수 있으니, 오프라인 매장의 매력은 점점 희미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수된 매장들은 점차 자리를 잃어갔다.


확장에 대한 압박과 그 후유증


신선식품 스타트업의 오프라인 확장은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온라인 커머스에 집중해도 부족한 시점에 오프라인 친환경 매장 인수라는 결정을 내린 데에는 스타트업 특유의 ‘성장 압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스타트업이라면 늘 새로운 이슈를 만들고, 시장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것이다.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확장 전략은 필요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금리와 투자 붐이라는 순풍이 사라지자, 무리한 확장의 후유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본업에 충실하지 못한 채 외연 확장에만 몰두한 기업들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본질에 충실한 스타트업이 살아남는다


이번 사례는 스타트업이 왜 본업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신선식품 스타트업은 ‘초신선’이라는 명확한 강점을 가졌지만, 오프라인 확장으로 그 정체성을 희석시켰다. 스타트업은 자원이 한정돼 있는 만큼,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금의 시장은 더 이상 스타트업에게 관대하지 않다. 물가 상승, 금리 인상, 소비 심리 위축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무리한 확장은 기업을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성장보다는 지속 가능성이다. 본업에 충실하며, 시장의 변화를 읽고, 경쟁력을 다지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질문을 던져야 할 때


우리 동네 친환경 매장이 사라진 건 단순한 폐점이 아니다. 스타트업이 확장 전략을 펼칠 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당신의 비즈니스는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스타트업만이 다음 불황을 견딜 수 있다.


성장 압박에 떠밀려 무리하게 확장하기보다는, 본질에 충실한 전략이 결국 스타트업을 살리는 길임을 이번 사례는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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