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은 진도준이었어만 했다.
*스포주의*
주인공을 이렇게 소비한다고?
믿기지 않는 재벌집 막내아들 마지막 회 리뷰.
최근 재벌집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본방사수를 할 만큼 애정을 갖고 봤던지라 마지막 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게 그래서 꿈인 건지 아닌 건지 모를 만큼 허술하게 짜인 엔딩은 15화 동안의 진도준을 무참히 배신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마지막 회(16화)는 진도준은 죽고 윤현우를 살리면서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는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진도준의 삶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 말은 15화 동안 시간을 할애하고 시청한 우리들에게도 지금까지 시청한 그 모든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진도준도 그야말로 시간낭비를 하였다.
진도준이 그렇게 애써 쌓아 올린 '정도경영'의 길은 사라졌고 1화와 조금도 다름없이 순양가 대대손손 물려주고 있던 20년 후의 미래. 분명 조금이라도 바뀌었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진도준이 노력할 결과, 원래대로라면 실직하지 않고 다녔어야 할 윤현우의 아버지도 그대로 백수로 살며 '윤현우'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진도준이 과거로 회귀해 한 그야말로 모든 노력이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마지막 회에 나오는 대사들을 보면 꿈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윤현우가 진도준인 채 살았던 삶은 실재하였고 의미가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윤현우 본인도 허탈하지 않았을까? 내가 한 그 모든 게 나의 망상이었나?
심지어 윤현우가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날 만큼 사무친 복수와 악연의 끈은 너무나 허무하게 녹음된 통화 한편으로 손쉽게 끝났다. 굳이 진도준의 인생이 필요 없을 만큼 그냥 20년 전의 녹음파일 하나. 그것은 과거까지 가지 않아도 윤현우 본인도 준비할 수 있었던 증거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부분은 '윤현우 엔딩'이라는 점이다.
배우가 똑같을지라도 우리는 지난 15회 동안 '진도준'을 응원해 왔다. 속 알맹이가 윤현우일지라도 진도준의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온 시청자들은 윤현우는 사실 잊었다. 윤현우의 기억을 갖고 있는 '진도준'이 주인공인 드라마였다.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순양가의 상속 순위에도 들지 못한 채 눈엣가시로 있던 진도준. 그가 자기를 무시하던 본인의 재벌집을 한 방 먹이는 카타르시스를 꿈꿨다. 진도준이 삼촌과 고모들을 파산직전까지 몰아세울 때면 역시 진도준! 이라며 응원해 왔다.
이제 그 엔딩을 단 한 발자국 앞에 두고 감독은 진도준을 죽여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윤현우'가 나타났다.
15회 만에 등장한 윤현우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순양가 지분을 집어삼키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진도준에서 힘없고 가난한 윤현우가 주인공이 되자 극의 긴장감이 확 풀어졌다.
저 윤현우가 순양을 어떻게 이겨? 짐작대로 윤현우가 되자마자 (진도준은) 순양가와 경찰에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다. 복수할 거야! 는 그냥 정의롭고 싶은 복수하고 싶은 한 청년의 소망이 되어버렸다. 윤현우는 복수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저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게 고작인 그 엔딩은 우리가 꿈꾸던 엔딩이 아니다.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 저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고 모아둔 막대한 재산으로 누구보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엔딩은 무조건 '진도준'이었어만 했다.
15화 동안 어린 시절부터 복수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진도준이 이 드라마의 마침표를 찍었어야 했고, 순양가의 다른 가족들이 '진도준'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며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았어야 했다. 그리고 끝내는 진도준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분해했어야 했다. 순양가 사람들, 그들도 세상에 두려워하는 대상 하나쯤은 남겨뒀어야 했다.
경영능력도 없으면서 자기가 순양을 이끌 회장이 될 거라는 순양가의 상속의 끈을 끊어버리고, 부하직원을 소모품으로 밖에 치부하지 않으며 탈세를 일삼던 그 재벌가 사람들에게 치욕을 남겨줬어야 했다. 우리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꿈꿨던 것이다.
그렇지만 윤현우의 법정엔딩은 순양가 사람들에게 아무런 깨달음도 주지 못했다. 그저 잘못 걸렸네. 저런 애는 진작에 처리했어야 했는데, 정도의 마치 '아 실수다' 정도의 느낌이다. 아주 잠깐의 해프닝정도로 여겨진 채 몇 년만 지나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15화 동안 쌓아 올린 진도준이라는 캐릭터를 그렇게 트럭으로 죽여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순양가의 손자이면서 순양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주인공 그 자체인 '진도준'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소비된 것에 대한 실망감은 이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이다.
다행인 것은 웹소설 원작에서는 진도준이 무사히 살아있다고 한다. 원작을 보라는 감독의 큰 뜻인 걸까. 이 아쉬운 마음을 원작을 보며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