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지만 따뜻한 그들의 세계

<플로우> 단평

by 송희운

※ <플로우>의 결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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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여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플로우>가 3월 19일 국내 개봉하였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영화에 대한 정보를 많이 찾아보지 않고 가는 편이기에 영화 속에서 대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으나, 금방 적응할 수 있었고 대사 없이 연출만으로 모든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영화가 얼마나 놀라운 영화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플로우>는 인간이 아닌 동물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모든 것이 홍수로 잠겨가는 세상. 회색 고양이 한 마리는 자신의 살던 집이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하자, 그 집을 떠나 물에 떠다니는 낡은 배 한척에 오른다. 그 배에서 카피바라를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에서 골든 리트리버, 알락꼬리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를 만난다. 너무나도 다른 성향을 지닌 탓에 동물들은 여행하면서 서로 부딪히지만 모든 것이 물에 잠겨버린 세상에서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인간들이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영화 곳곳에 보이는 배, 건축물, 여러 물건 등을 통해 이 영화의 배경이 인간들이 멸망한 이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세계 속에서는 오로지 동물들만 존재한다. 동물들이 주인공인 만큼 영화는 대사로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사가 완전히 배제되고 동물들의 행동들을 통해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기존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흥미로움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동물 캐릭터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의인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동물들은 실제 동물들이 아닌 영화를 위해 재창조된 캐릭터들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도, 각 동물들의 특징들이 영화 속에서 잘 살아있어서 마치 실제 동물들을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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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우>는 동물들의 서로 다른 행동들로 인한 부딪힘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로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각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 워낙 다르다보니 이들 사이에는 갈등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이러한 갈등을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즉, 이들은 서로 대화나 다른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특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화합한다. 무던한 성격을 갖고 있고 어떤 동물들과도 잘 지내는 카피바라는 서로 다른 동물들을 받아들여주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며, 고양이는 까칠한 성격으로 처음에는 자신을 따르던 리트리버를 거부하지만 리트리버가 배고파하자 자신이 잡아온 물고기를 나눠준다. 고양이를 감싸주다 무리에서 쫓겨난 뱀잡이수리는 리트리버와 함께 있었던 개들이 물위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고도 그들을 태우려고 하지 않지만, 리트리버와 카피바라의 반응에 자신이 잡고 있던 키를 놓아주고 그들을 태우게 한다. 서로 다른 특징들로 인해 처음에는 그저 배에 같이 있는 것에 불과했던 동물들은 점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함께' 있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엔딩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엔딩에 다다랐을때 고양이와 알락꼬리여우원숭이가 친구들이 타고 있던 배가 나무 위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배에는 아직 내리지 못한 리트리버, 카피바라 그리고 막판에 함께 탄 다른 개들이 있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와 고양이가 그 배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쉽사리 뛰어내린 리트리버도 둘을 돕는다. 그러던 와중 다른 개들은 토끼를 보고 본능적으로 토끼를 향해 쫓아가지만, 리트리버는 잠깐 멈칫하다가 그들은 쫓아가지 않고 알락꼬리여우원숭이와 고양이를 돕는다. 고양이도 밧줄을 당기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 하지만, 카피바라가 고양이를 잡아 구해주고 그들은 하나로 힘을 합쳐 무사히 배 밖을 빠져나온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고, 서로의 특징으로 인해 부딪히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 이들이 하나로 뭉쳐 서로를 구해주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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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 홍수는 영화 속에서 주요한 장치이다. 영화 초반 회색 고양이가 물을 마시러 갔다가 개들과 마주치는 장면에서 화면 왼쪽의 나무 위쪽으로 배가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이후 영화 후반부에서 홍수가 끝난 뒤, 고양이과 알락꼬리여우원숭이가 친구들을 발견하는 장면에서도 그들이 타고 있던 배가 나무 위에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영화 속에서 홍수는 한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반복되는 일임을 보여준다. 영화의 엔딩에서 영화 속에서 계속 등장했던 고래가 물이 다 빠진 숲에 홀로 남겨져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보이는데,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나오는 쿠키 영상에서 고래는 다시 물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 영화 속 세계에서 홍수는 언제든지 또 닥칠 수 있고 살아남은 동물들이 또 어려움에 처하겠지만 영화의 끝부분에서 고양이, 카피바라, 리트리버, 알락꼬리여우원숭이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수면 위에 비친 자기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도 다른 이들이 다시금 서로 연대하면서 살아남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플로우>는 분명 동물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단순히 동물들의 귀여운 모습만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동물들의 모습을 전시하지 않으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홍수처럼 넘어야할 거대한 장벽이 있는 암울한 세상 속에서 서로 화합하는 길만이 답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전하고 있는 이 영화는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즐기면서 관람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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