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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그루 Dec 01. 2024

생각이 사라지는 나

단편선 1201

1. 12월이다. 조금 있으면 29살이 된다. 20살에 엄청나게 비대했던 자아는 이제는 굉장히 축소되어, 현미경으로 확대해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이제는 온종일 산책을 다녀도 생각의 구심점이 생기지 않는다. 걱정이 없는 것이 걱정이라고 하면 너무 태평한 것일까? 그래서 내가 생각이 없어진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2. 첫번째는 극도로 상처받을 만한 상황을 회피하는 삶을 산지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열혈 성장만화의 주인공처럼 항상 모든 일에 부딪쳐보고, 갈등도 마다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감정을 쏟아 붓는 것에 대한 용기를 잃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에서 생각 외의 내상을 입었고, 회복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워나갔다.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우면서, 건강의 총량은 회복되었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진 않는 것 같다.


나에 대한 관심보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키라고 버트런드 러셀은 말했다. 지금의 내가 딱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뭔가 안주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 느낌을 왜 지울 수 없는 것일까? 직장과 영화음악 일, 밴드, 영화 모임, 운동까지 병행하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무언가 부족하다. 그건 아마도 사고와 철학의 영역일 것이다.


3. 두번째는 영업직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업직은 굉장히 보수적인 직무이다. 분위기가 보수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업무 자체가 진보의 영역보다는 보수의 영역이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이상의 것을 창출하는 것은 어렵다. 직무 자체는 학부 때부터 했던 마케팅이 역시 맞는 것 같다. 수많은 단서를 가지고 창의성을 발휘해 첨예한 논리를 성립하는 직무가 내겐 더 재미있다. (물론 광고회사는 너무 박봉이긴하다.)


어떻게든 회사 내에서 내가 창의성을 발휘해볼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시스템을 만들어본다던가. 그럼에도 근본적인 갈증은 피할 수 없다. 현재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곳에서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이건 조금 더 봐야할 것 같다.


4. 세번째는 과도한 챗GPT 의존성도 예시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어려워진다 싶으면 요즘의 나는 가장 먼저 챗 GPT를 찾는다. 과금까지 해가며 사용중인데 좋게 말하면 멀티태스크를 하고 있는 나에게 최고의 효율성을 안겨주지만, 나쁘게 얘기하면 내 성장을 가로 막고 있다. 

5. 아마도 세상이 더이상 발전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다. 2번과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내가 나이를 먹어서인지 정말 세상이 망한건진 몰라도 도무지 이 세상이 좋게 변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나 한명만 잘 살게 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조금 더 좋게 발전하기 바라는 것은 인간의 미스테리한 욕구 아닐까? 내가 있어야 세상이 있고, 세상이 있어야 내가 있는 것이 이치인데 양쪽의 전제가 지금 내겐 부재하다. 나도 존재하지 않고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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