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장아장
자전거 유모차 타고 가자는 말에 고개를 흔들며 “아장아장”이란다. 오늘도 입에 벌레가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달래며 마스크를 씌우고 길을 나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 앞에 서니 새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재잘 대는 새소리에 멈춰 서서 짹짹 소리로 답한다. 개미를 발견하고는 쪼그리고 앉아서 눈으로 움직임을 좇는다. 개미에게 인사하고 가자는 말에 일어서서 손을 흔든다.
“사과, 사과”하고는 급히 내닫는다. 넘어질세라 두 손을 벌리고 몸을 낮추며 아이의 뒤를 잰걸음으로 따른다. 걸음을 멈춘 곳은 세로로 잘린 단면에 까만 씨앗 두 개가 대칭을 이루고 있는 반구다. 그 옆으로 한 번 더 잘린 두 개의 조각이 어깨를 걸고 있는 회색빛 조형물 앞이다. 윗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간 것이 영락없는 사과다. 이곳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네가 사과였구나! 아파트에 십 년 넘게 살면서도 그동안 몰랐었구나! “안녕” 하며 손을 흔드는 아이를 따라 무심했던 마음을 사과라도 하는 양 나도 같이 인사를 했다.
아파트 뒤쪽 문을 열고 나가면 중학교가 보인다. 학교 담장을 잡고 발돋움을 한다. 축구하는 학생들을 보며 연신 “언니 오빠들 공 뻥”을 외친다. 이제 가자고 재촉하는 말에 다리를 올려 공차는 흉내를 내며 걷는다. 가게 앞 동그란 징검다리는 왕복 몇 번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하수구에서 흐르는 물소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외부인 주차금지용으로 세워 둔 통나무에서는 나이테의 동그라미를 찾아낸다. 전깃줄에 앉아 재잘 대는 새들에게 “엄마, 아빠, 아기” 하고는 “가족”이라고 묶어준다.
오 분 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이십여 분 걸려 도착한 곳은 어린이집이다. 3월에 복직한 딸을 대신하여 손녀 돌보는 일을 자처하였다. 이십 개월이면 어린이집 가기에 어리다고 만류했다. 딸아이는 엄마 힘들다며 기어코 친정집과 가장 가까운 어린이집에 입소시켰다. 당분간 오전 시간만 보내는 것으로 타협을 하고 나서야 안쓰럽던 마음이 덜어졌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때는 길이 더 멀어지고 시간이 더 길어진다. 혹시나 하고 가져갔던 유모차는 방해만 될 뿐이다.
학교 담장 옆 작은 공터에 이제 막 피어난 민들레가 보인다. 민들레라는 이름을 가르쳐 주었더니 몇 번을 되 뇌이며 한참을 들여다본다.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서자 보라색이라며 달려간다. 제비꽃이다. 그 옆의 냉이꽃은 하얀 별이다. 좀 더 멀리 보이는 노란색은 씀바귀꽃이다. 저기 노란색 하며 다가간다. 나태주 시인은「풀꽃」이라는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고 했다. 그 의미를 알기라도 하는 듯 꽃마다 찾아가 쪼그리고 앉아 “예쁘다”하며 쓰다듬어 준다.
퇴직 전 몸담았던 학교의 3월은 언제나 숨 쉴 틈 없었다. 하얀 자태를 뽐내며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목련도 지나치던 때였다. 누군가가 목련꽃이 만개했으니 창밖을 내다보라는 메시지라도 보내주면 그제서 꽃이 피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했다. 낮은 키에 작은 풀꽃은 더욱이 무심하게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잎이 돋고 갖가지 꽃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나는 것을 오롯이 지켜본 것이 언제였던가! 풀꽃을 찾아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를 보며 세상 모든 존재가 지닌 나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떠올려본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어 진다.
영산홍이 꽃봉오리를 내밀기 시작할 때 꽃봉오리가 벌어져 가는 것을 손가락으로 크기를 쟀다. 활짝 핀 꽃이 분홍색, 빨간색으로 아파트 주변을 물들이던 무렵에는 한낮의 햇살이 제법 따갑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작은 얼굴이 애처롭다. 나무 정자에 앉아 마스크를 벗고 물을 마시게 했다. 활짝 핀 꽃이 많아진 만큼 주변의 벌도 늘어났다. 벌로 인한 불안감을 뒤로하고 아이를 안아 올려 꿀을 빨고 있는 벌을 가까이 볼 수 있게 했다. 손녀의 손과 입이 벌의 움직임을 따라 꼬물거린다.
유난히 비가 잦았던 봄이다. 비 오는 아침이면 할아버지 차 타고 가자는 말에 “우산 쓰고 아장아장”으로 답한다. 내가 집에서 가장 큰 우산을 집어 들면 아이는 어른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만 한 장난감 우산을 집어 든다. 큰 우산 밑에 머리를 겨우 가리는 우산을 펼쳐 든 아이가 있다. 우산에 닿는 빗소리를 들으며 물웅덩이를 피해 가며 가는 길은 시간이 더 길어진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손녀를 안으로 넣으려고 몸을 굽히고 우산을 움직여 본다. 어린이집 도착할 즈음에는 허리가 뻐근하다. “우두둑, 뚝, 뚝” 빗소리를 내며 걷는 아이는 뻐근한 허리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손녀를 따라 걸었던 길에서 지나간 봄을 기억했다. 아파트 뒷문 옆 꽃 잔디는 여고 때 등굣길을 생각나게 했다.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꽃 잔디 덮인 언덕길이 나왔다. 라일락 향기와 함께 그때의 설렘이 잠시 가슴에 머물렀다 간다. 신축 빌라 옆에 남아 있는 오래된 주택 담장 덩굴장미는 개교기념일 미사 때 줄지어 장미꽃을 봉헌하던 때의 숙연함이 묻어난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봄꽃들이 물러간 자리는 온통 초록빛이다. 등원하는 길 학교 담장 공터에 핀 나팔꽃에 멈추기도 하고 하원하는 길 개망초 꽃 위에 앉은 풍뎅이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민들레 꽃대에 붙어 있는 하얀 공 모양 홀씨를 보게 되는 날은 어김없이 입바람으로 날려준다. 개미 두 마리가 먹이를 나르는 모습을 본 후로는 두 손으로 날라야 할 물건이 있으면 개미처럼 함께 맞잡고 나르자고 한다.
두 돌을 앞둔 손녀의 시선을 따라 오늘도 자연의 일상으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간다. 낮아진 눈높인 만큼 많이 보이고 느려진 걸음만큼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나의 계절이 풍성해진다. 잊고 살았던 지나간 계절을 떠올리는 것은 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