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형석 인터뷰
학생 때 썼으니 10년도 더 전에 쓴 인터뷰 기사.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들을 많이 작곡한 김형석 작곡가 섭외에 성공하고 설레서 전날 인터뷰 질문을 준비하며 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다. 블로그에 저장해 놓고 잊고있었는데 오랜만에 읽으니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 옮겨본다.
1990년대 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실세를 논할 때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작곡가 김형석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작곡 활동을 시작한 그는 김건모의 '첫인상' '아름다운 이별', 신승훈 '나처럼' 'I Believe', 솔리드 '이 밤의 끝을 잡고',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 유승준 '나나나', 임창정 '그대 또 다시' 성시경 '내게 오는 길'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인기곡을 만들어 온 히트제조기. 가요 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음악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인정받아왔다. 또한 그는 신승훈, 박진영, 성시경, 나윤권 등 기라성 같은 실력파 가수를 발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5월의 어느날, 그가 운영하는 실용음악학원에서 그를 만났다.
작곡가 김형석입니다. 그 밖에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저의 본질은 작곡하는 사람이에요.
아버지께서 음악 선생님,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조촐하게나마 가족 음악회를 열기도 했고요.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고, 전공도 음악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악기 연주라던지 기능적인 부분에는 소질이 없어요. 오랫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하기에는 지구력도 떨어지고. 그런데 집중력은 있었어요. 어릴때부터 감성적이어서 소리나 음에 민감했고, 음악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어요. 어쨌든 음악을 좋아했고, 연습하는 것 보다는 듣는걸 좋아했고요. 사실 어릴때는 내 성격이나 성향을 파악하고 직업을 선택하지는 않잖아요. 지나고 보니까 저의 그런 성향들이 자연스럽게 작곡의 길을 가게 하지 않았나 싶네요.
작곡가라는 직업의 단점이라기 보다는 제 성격에 따른 단점인데, 제가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일이 많다보니 생활이 불규칙 하다는 단점이 있죠. 하지만 그러니까 곡을 더 많이 쓰게 되고, 더 많이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일에는 장단점이 있죠. 장점이 더 크니까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거고. (이때 미국에 있는 박진영씨로부터 전화가 와서 잠시 인터뷰가 중단됐다)
사실 제가 처음 데뷔하게 된건 故김광석 씨에게 곡을 주면서라고 할 수 있어요. 한양대 작곡과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유재하 선배님을 알게 되었고, 김광석 선배님을 소개 받았죠. 제가 써놓았던 곡을 김광석 선배님이 꼭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주게 되었고, 정확히는 그때부터가 데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데뷔 초창기때는 작곡보다는 세션을 많이 했었어요. REF, 솔리드, 김건모, 신승훈, 박미경…그 당시 활동하던 거의 모든 가수의 피아노 세션을 맡았을 정도니까요. 그렇게 연결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곡 요청도 들어오게 되고, 내 곡이 불리게 되고, 이렇게 작곡가로 활동하게 됐어요. 하지만 문제는 요청이 없으면 일거리가 없다는거죠. (웃음) 이렇게 날마다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활동했어요.
가장 크게는 일단 소재를 찾는 방법이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 아마추어로 곡 쓸때는 대부분의 소재를 나 자신 안에서 찾았어요. 작가라는 직업이 그렇거든요. 끊임없이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해요. 하지만 프로로서 일을 하다 보니까 나의 직업이라는게 근본적으로 내 곡을 발표하는게 아니고, 내 곡을 통해서 그 곡을 부르는 가수를 스타로 만들어야 하는 직업인거에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대상’에서 영감을 찾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비에게 어울리는 곡 스타일이 성시경에게는 안 어울리잖아요. 이런식으로 결국은 영감 자체를 내 안에서 얻는게 아니고 대상에서 얻어서, 대상에게 맞는 소재를 분류하게 되는거죠.
또 달라진 점은, 초창기때보다 덜 솔직해 졌다는거. 소재의 원천이 내 자신이 아니다 보니 내가 만든 노래지만 아무래도 덜 친근하죠. 변하지 않는건 내 안에 있는 ‘감성’이에요. 이건 내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변하지 않는 근본이죠. 파울로 코엘료의 책에서 본 이야기인데, 한 나그네가 티스푼에다가 기름을 흘리지 않게 가득 담고, 왕이 가지고 있는 모든 그림과 재산을 봐요. 티스푼에 담긴 기름만 보면 다른것들을 못보잖아요. 하지만 재물만 보면 그 기름을 흘리겠죠. 이렇듯 내 안에 있는 작은 감성을 간직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감성을 버리고 재물만을 바라보는 순간 그것은 욕망이 돼요. 그러면 장사꾼처럼 되어 버리고, 본질이 바뀌는거죠. 대상에서 영감을 얻든,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든, 어떤 분야에서도 통하는 다양한 마스터키를 갖고 싶은건 작가로서의 소원이거든요. 하지만 그 안에는 버릴 수 없는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감성이 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모토, 엔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약 감성까지 버리고 대상에서 영감을 찾는다면, 내가 하고 있는 직업 자체가 무의미한 거에요.
저는 싱어송라이터와 작업할때가 재미있어요. 신승훈이나 박진영이나, 이 친구들은 자신이 곡도 쓰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의 어려움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잖아요. 내가 쓴 곡을 주면 그걸 받아서 부르기만 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내요. “이 부분은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어 그게 더 좋은 것 같아” 이렇게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노래는 더 좋아지는거죠. 물론 테크니컬하게 노래 실력이 좋은 친구들과 작업할 때도 재미있지만, 궁극적으로 음악 작업이라는 건 결국 하모니에요. 혼자 하는게 아니거든요. 음악이라는게 언어랑 똑같다고 봐요. 처음엔 ‘도레미’로 시작하지만 점점 표현이 풍부해지고 다양해 지잖아요. 음악 작업 하는건 타인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작업하면서의 에피소드는 음악을 빼고나서는 거의 없어요. 녹음 작업은 양날의 칼 같아요. 굉장히 긴장하면서도, 재미있는 시간이죠. 일종의 진검승부, 전투거든요. 녹음 해 놓으면 평생가니까. 녹음이 시작되고 메트로놈 하나 켜 놓고 혼자 연주하다보면 느껴지는 묘한 즐거움, 페이소스같은 게 있어요. 그게 음악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녹음실에서의 에피소드나 이런건 의외로 없고… 술자리 에피소드 밖에 없네요. (웃음)
어떻게 보면 딱 ‘느낌’이 오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친구들 중 ‘솔리드’가 있네요. 미국에서 온 친구들이 있는데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소개를 받았는데, 그 당시 너무 바빠서 몇 번 약속을 펑크 냈어요. 그러다 겨우 만났는데, 어디 후줄그레한 애들 세명이 들어와요. 미국에서 왔대. 그때만 해도 미국에서 온 가수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노래나 들어보자 하고 아무 노래나 불러보라고 하니까 어설픈 한국어 발음으로 “한쿡 노래 아는거 없서요”이러는거야. 그래서 “뭐야 저것들은…”하고 그럼 뭐 할줄 아느냐고 물어보니까 아카펠라를 해 보겠데. 그래서 듣기 시작했는데, 딱 네마디 듣고 벌떡 일어났어요. 너네 어디갔다 이제 왔냐고 하면서. 그런 반전이 있을때 찌릿찌릿해요. 모든게 바뀌는 순간이에요. 딱 듣고, 곡 쓰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드는거죠. 그렇게 ‘이 밤의 끝을 잡고’를 썼어요. 이런 식으로 한 신인 발굴이 참 재밌어요.
(성)시경이 같은 경우에도 처음에 노래 듣고 삘이 와서 ‘내게 오는 길’이라는 곡을 썼고, (박)진영이 같은 경우는 김건모 백댄서 였다가 발탁됐고. 또 이런 경우도 있어요. 신인 발굴 온라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무리 찾아도 맘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한 명만 더보고 더 이상 그만하자, 했는데 마지막으로 또 어떤 후줄근한 애가 와서 ‘I believe I can fly’를 부르자 마자, 그래 얘다! 한 적이 있거든요. 그 애가 나윤권이에요. 이렇게 신인을 발굴할 때 ‘히트를 하겠다’라기 보다는 ‘얘는 재목이다’ ‘얘는 가수할 것 같다’라고 느낌이 오는 경우가 있죠. 바쁘긴 하지만 신인을 발굴할 때는 내가 시간이 되는 한 직접 보는 편이에요. 진주가 어디 숨어있을지 모르니까.
둘 다 매력있는 일이에요. 곡 쓰는건 녹음실에서 소리를 맞춰 곡을 만들었을때까지의 역할이에요. 프로듀서는 그 후 소비자가 CD를 집어들게 만드는 역할까지 하는거죠. 가수의 이미지부터 홍보 전략까지 다 프로모션을 짜죠. 영역이 조금씩 넓혀지는 느낌인 것 같아요. 그래도 뭐가 좋으냐고 물으면 역시나 곡 쓰는게 좋죠. 하지만 내가 쓴 곡을 받은 가수가 어떤 프로모션과 마케팅 과정을 거쳐 히트를 하게 할 것인가의 과정도 참 재미있어요. 예전에 제가 활동을 시작하던 시절에는 곡만 좋으면 가수는 그냥 바닥에 드라이아이스 깔고 노래만 불러도 성공했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정보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곡 쓰고 마케팅 프로모션까지도 하나의 카테고리로 돌아가야해요. 요즘 비나 이효리를 보면 그 사람의 이미지가 결국 음악까지 흡수해서 같이 가잖아요. 이런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한양대 작곡과 선배이기도 한 故유재하 입니다. 저로 하여금 대중음악을 하게 만든 사람이지요. 프로듀서로는 뭐니 뭐니 해도 데이빗 포스터와 베이비페이스죠. 그 외에도 저는 그때그때 다양한 곳에서 영향을 받아요. 세상이 변하는 만큼 저에게 자극을 주는 것들도 계속 변하는 거죠.
(*데이빗 포스터: 캐나다 출신의 팝 아티스트로, 팝 음악계에서 그가 곡을 써주거나 프로듀스를 해주면 히트가 보증되어 '팝 음악계의 미다스터치'로 불린다. 한국 대중 음악계에서 김형석의 영향력도 이와 유사해 ‘한국의 데이빗 포스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언급하자 그는 손사레를 치며 ‘그저 데이빗 포스터를 좋아하는 한국의 작곡가일 뿐’이라면서 볼을 붉혔다.)
아무래도 순수하던 초창기때 썼던 곡들이 기억에 많이 남죠. 저의 데뷔 계기가 되었던 김광석 형님의 ‘사랑이라는 이유로’라는 곡이나, 그룹 '다섯 손가락' 출신의 임형순이 먼저 불렀지만 그것을 손질해 변진섭 앨범에 수록한 '그대 내게 다시' 그리고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 클래시컬한 발라드인 신승훈의 '나처럼'이 기억에 남네요.
특별한 비결이랄 건 없어요. 굳이 찾는다면 오래 했고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천재가 아닌 이상 곡이 뚝딱뚝딱 나오면 그게 이상한 거라고 봐요. 저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가끔은 곡이 너무 쓰기 싫어서 괜히 딴짓을 할 때가 있어요. 안하던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하다가 마지못해 키보드 앞에 앉아요. 그런데 그렇게 건반 두드려 가며 곡을 만들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빠져들고 있는거죠. 그래서 제가 이 일을 하나봐요. 또한 음악이라는게 결국은 어떤 소스 안에서 무궁하게 새로운걸 창조해야 하기 때문에 비슷한게 나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표절시비라는게 생기기도 하고요. 여기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어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해요.
확실히 변화했지요. 하지만 그 변화를 긍/부정적으로 흑백논리로 보고싶지는 않아요. 변화한 이유는 시장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고,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요즘 사색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그럼 왜 사색이 없어졌냐. 이건 당연한거에요. 가령 예전에는 여자친구가 약속시간보다 30분 늦게오면 기다리는 동안 책도 보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는데 요즘에는 ‘너 왜 안와? 어디야?’이렇게 바로바로 연락할 수 있잖아요. 모든게 빨라지고, 기다림이 없어지니 자연스레 사색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드는 것이죠. 그걸 좋다 나쁘다고 볼 수는 없는데, 문제는 이런거죠.
요즘 호흡이 긴 드라마가 별로 없잖아요. 막장 드라마가 대세라고 하는데, 나는 절대 그런 막장 드라마가 옳지는 않다고 봐요. 대중이 그걸 원해서라고 하는데, 대중에 맞추는건 좋지만 완전히 따라가는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누군가는 소신과 자기 색깔을 가지고 활동해야 하고, 마이너 하더라도 그것을 조명해 줄 수 있는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요즘 인기가요를 보면 죄다 아이돌, 걸그룹이잖아요. 그게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그 와중에 정말 레어하고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을 보여줄 수 있는 미디어의 역할과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이 변하는 만큼 이제는 공중파 방송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온라인에서 개인이 내는 목소리가 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도 올 수 있으리라고 봐요.
아까도 말했지만 요즘은 정보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소비자들은 넘쳐나는 정보중에 내가 원하는 정보를 골라서 취하죠.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특화되어야 해요. 가령 예전에는 가수들이 보편타당한 감성을 노래했다면, 요즘에는 자신을 아이콘화 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가수들이 많죠. 빅뱅, 비, 이효리 등 보면 다들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거거든요. 이렇게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는거죠. 또한 오늘날 음반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레이블 고유의 색깔이 필요해요. 예를들어 SM은 팬시, JYP는 섹슈얼, YG는 힙합베이스, 이런식으로 자기만의 성향으로 팬들을 분류하는거에요. 이렇게 되면 특화된 유저, 능동적인 팬층이 생겨나게 되죠. 그렇게 되지 않고 중구난방되면 망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한 시대에요.
사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음악 안 했으면 저는 무위도식하며 살았을 것 같아요. (웃음) 농담이 아니고, 음악 말고는 할 줄 아는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으니까요. 음악 안했다면 뭐하고 있을지 상상이 안가네요.
제가 K-note 운영을 통해 초점을 맞추고 싶은 부분은 크게 안정된 재정을 기반으로 한 활동 저변 확대와 후학 양성을 통한 신인 기회 발굴, 이 두 가지에요. 슈퍼스타K, 다음, 질러넷과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해서 작업한 순수 음악포털 사이트가 5월 10일에 오픈했어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특화된 DB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이트의 방향은 명확해요. 기존의 음악 포털은 음원을 제공하고, 판매하는 형식이었다면 이번에 오픈한 사이트는 트레이닝도 받을 수 있고, 영향력 있는 뮤지션을 섭외해 신인 발굴 오디션도 진행하는 형식으로 운영할 계획이에요. 여기서 얻은 수익으로 실력은 있는데 주목받지 못하는 신인들을 키워서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게 지원해주고 싶어요. ‘이달의 뮤지션’을 선정해 재능있는 신인을 발굴해서 디지털 싱글을 내주고, 이런 형태로 일종의 도네이션 기능을 갖는 순수 뮤직포털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이 모든건 K-note 오프라인 실체가 있기에 가능한 사업이죠. 아무리 온라인이 발달했다고 해도 아직까지 오프라인에서의 실체가 없으면 신뢰하기 힘드니까요.
이 아이돌 전성시대가 지나고 나면, 미국이나 일본시장처럼 이제 아티스트들이 출연하기 시작할거에요. 일본도 똑같았거든요. 80~90년대에 아이돌 천국이었다가 사람들이 점점 진정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해요. 그러면 이 시장도 바뀔거에요. 그때 어떤 어떤 컨셉을 잡고 어떤 색깔로 나아갈것이냐가 지금 제가 준비하고 있는것이기도 하고요. 요즘 아이돌 그룹 참 많고 잘하는 경우도 많은데, 색깔이 나랑은 안맞는거 같아요. 이상하게 아이돌은 못하겠어요.
아직은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대중적인 곡을 많이 작곡하고 있지만, 대중음악은 젊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 결코 젊지 않죠. 앞으로는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뮤지컬이나 영화 음악 등 공연 음악 쪽으로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이 분야가 형식이 있고 구조가 있는 모티브의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평생 이 일 할거니까 급하지는 않아요.
죽기 직전까지 곡 의뢰 받는 거. 하하. 꾸준히 가야죠.
간혹 ‘나는 작곡가가 되고 싶은데 환경이 안 돼서 못한다’라고 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건 작곡 하기 싫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에요. 무슨무슨 이유 때문에 못한다는건 진정으로 하고싶지 않음에 대한 핑계라고 봐요. 먼저 내가 살아가는 24시간을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일상을 곡으로 표현해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작은것부터 시작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러다 공허함이 생기면 전문적으로 배우는거죠. 많이 듣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써보고, 이 밖엔 없어요. 특히 비슷비슷한 음악이 범람하는 오늘날 ‘진정성’을 가진 진짜 음악을 찾아 들으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요. 결국 음악은 '소리'로 배우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