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와 대홍수

<송블리의 키워드로 영화읽기> l 노아의 방주 이야기.

■키워드-대홍수



In the Beginning there was nothing.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Temptation led to sin,

유혹은 죄로 이어졌고,


Cast out of Eden, Adam and Eve had three sons:

Cain, Abel and Seth.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는 세 아들을 낳았다.


Cain Killed Abel and Fled to the East,

Where he was sheltered by a band of fallen angels: The Watchers.

가인은 아벨을 살해하고 동쪽으로 도주했다.

그때 그를 보호해준 타락 천사들은, 감시자라 불렸다.


These Watchers helped Cain's Descendants

build a great industrial civilization.

감시자들은 가인의 후손과 거대 산업 문명을 일궜다.


Cain's cities spread wickedness, devouring the World.

가인의 도시는 온 세상에 악을 퍼트렸다.


Only the descendants of Seth

Defend and protect what is left of Creation.

오직 셋의 후손만이, 태초의 창조물을 수호하였다.


Today, the Last of Seth's Line becomes a man.

셋의 마지막 후손은 오늘날의 남자가 된다.


-영화 <노아> 초입 내레이션 부분 대사-


이 부분은, 영화의 초입 부분에 나오는 대사로, '성경'과 100% 일치하는 사실이라기보다는, '성경'의 표현을 빌려 작성한 말들로 영화의 서두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영화 <노아>는 성경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고증했다기보다는, 감독의 상상력으로 노아의 이야기를 재편성한 이야기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성경에 나와있는 사실을 말해보라고 하자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에게 있던 두 아들의 존재는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가인과 아벨, 이라는 아들이었고, 어느 날, 신께 제사를 드리는 날에 신은, 아벨의 제사를 받게 되었고, 이에 가인의 마음엔 죄(분노, 시기)의 감정이 들어,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살인사건이 된다. 그 뒤로도 인간은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반목하고, 싸우고, 나라가 나라를 치고, 전쟁의 서사가 반복되었으니... 조금 더 확장하여 상상해 보자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실천적 메시지'가 확실하게 나오기 전까지, 인간은 서로의 모가지 뒤에 칼을 꽂으며,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들었다. 여하튼, 아벨이라는 아들이 죽자, 아담에게 하나님의 '셋'이라는 아들을 주었고, 영화에서의 설명과 일치하는 아들들의 이름으로,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 셋이라는 아들들이 있었고, 더 엄밀히 말하자면,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에 '셋'이라는 새 자손이자 기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이렇듯, 영화와 각종 작품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성경의 대표적인 대홍수의 이야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성경적 구절의 토대가 되는 부분은, 창세기 6장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창세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의 존재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스스로 에덴동산에서 살 권리를 유지하지 못한 채 살게 된 인간의 가련한 역사. 누구라도, 그 탐스러운 선악과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인간 하나 없었을 법 한데, 그 이후로의 역사는 이렇게 줄곧 잿빛 색채가 돌아, 인간의 살인, 반목, 갈등, 죄악이 만연하였으니, 신의 시야에서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라는 존재를 '대홍수 심판'으로 그 슬픔을 달래야만 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 가운데, 영화가 개봉했던 2014년의 당시에 영화를 보았을 때에는, 영화의 작은 곳곳까지 완전한 성경의 이야기보다는 각색된 내용들이 곳곳에 있기에 '이 영화를, 곧이곧대로 추천해도 좋은 영화인 걸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왜냐하면, 영화의 이야기로만 '노아'이야기가 받아들여지면, 본래의 신앙적 성경의 의미의 뼈대에 조금은 혼돈이 올 수도 있지는 않을까? 하는 배려 깊은 노파심에서다. 그러한 염려만 없다면, 당대의 노아 이야기를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고, 그 시대를 음미해 볼 수 있는 이 영화를 접해보는 건 괜찮은 시간인 것 같다. 나 역시도, 10년이 지난 지금의 이 영화를 보아도, 굉장한 울림을 받는 스케일이 큰 영화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여하튼, 영화 <노아>의 구체적인 뼈대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신의 선택을 받은 노아가, 신의 계시를 받아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계획을 듣고, 그날이 다가옴에 따라 '방주'를 짓게 된다. 그의 자손의 이름은, 셈과 함과 야벳이다. 크게 보면, 노아의 가족과 각종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에 탑승하게 된 것이고, 이런 큰 흐름에서 영화는 각종 각색과 상상력으로 몇몇의 이야기는 성경 외의 이야기가 나오는 흐름으로, '음, 영화적 상상력이구나~'하는 지점도 종종 포착할 수가 있다. '방주'가 완성되고, 세상에는 이전에 없는 큰 대홍수가 대지에 흐르게 되자, 대지와 바다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그 시대에 흐르고 있던 인간들의 '죄악 가득한 마음'이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철학적 상상을 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속, 큰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악 가득한 마음', 사람과 사람이 더 이상 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확장하지 않고, '죄'의 경계에서 발을 서성거리던 인간들의 모습에 회의가 들었던 걸까. 내가 창조주라면, 자유의지 (Free Will)을 가진 인간들이, 죄악의 본성에 가깝게만 행동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았을 때, 이 세상에 대홍수를 내려 심판을 하였을 까, 이 세상에 불을 내려 불바다를 만들어 '선함'을 잃어버린 인간의 마음에 응급조치를 취했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인간들의 무서운 마음, 인간들의 타락한 마음들의 응집을 떠올리며, 한번 더 이 '노아의 방주' 스토리를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인간의 삶의 무게와 마음의 추를 따라가는 일은 언제나 큰 무게감으로 철학적 고뇌를 더하지만, '영화'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한번 더 인류의 존재를 생각해 보는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나가며, '노아'의 대홍수의 심판날이 끝난 뒤, 신은 약속했다. 다시는 이런 심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징으로, '무지개'의 약속을 하셨다. 신은, 자유 의지(권한)를 인간들에게 부여했지만 그들이 끝까지 계속적으로 타락하며, 부패한 마음으로 살지는 않기를 하는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노아의 시대로 되돌아가서, 내일모레 대 홍수가 올 것이고, 노아의 방주에 탑승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만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허무 맹랑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 "노아 아저씨, 너나 들어가세요"라고 핀잔을 줄 것인가' 아니면, '신의 계시에 따라, 우리의 마음을 되돌아보고 강포 해진 마음을 유추해 보며, "방주에 제가 탑승할 자격이 됩니까?"라며 질문을 던질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결정을 했을까. 만일, 내가 대홍수가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방주에 타겠습니다.'라고 하면, 신은 웃으며 기꺼이 자리를 내어줄까, 아니면, 이제 '모든 심판은 끝났으니, 너의 자리는 없다'라고 말하며 단호하게 우리를 세상의 심판 속으로 내칠까 하는, 그때 그 고대의 성경적 시점으로 되돌아가 각종 질문에 질문을 거듭할 수 있는 재미난 영화, <노아>!! 영화 <블랙스완>으로도 연출력이 뛰어났던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노아>를 주말의 넷플릭스 추천 영화로 조용히 추천해지고 싶은 주일날의 아침이다.


◆[송븐니의 키워드로 영화읽기], 영화 <Noah>와 대홍수편은, 송븐니의 시각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