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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Feb 12. 2016

서사의 힘은 강했다

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아, 그것은 늪이었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니 도무지 빠져나올 길이 없었다. 하루 만에 끝장을 봤다. 미친년처럼 배꼽을 쥐고 낄낄거렸다가 끝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거대한 서사가 만들어 내는 자석 같은 힘, 낯설게도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서술자의 언어, 바람에 실려 다니는 이야기를 한 개도 놓치지 않고 끌어다가 요리조리 엮어 내는 작가 천명관의 노련한 솜씨에 나는 「고래」라는 소설의 늪에 쑥! 빠져버렸다.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면 늪에서 나올 수 있냐고? 대답은 No. 그러려면 며칠 더 필요하다.  



천명관의 「고래」 는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다. 산골소녀 금복이 산골이 갑갑해 그곳을 떠나 평대라는 마을에 발을 내딛으면서 펼쳐지는 그녀의 인생사다. 뭇 남성들을 묘하게 끌어당기는 금복이 대장부 기질로 여러 사업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만났던 남자와 여자들의 이야기다. 또한 이것은 질곡의 삶을 살다 억울하게 죽은 어느 노파의 복수극이다. 그뿐이랴. 금복의 딸, 말을  못 하고 100kg가 넘는 춘희의 세상살이이기도 하다. 물론 이야기와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느슨한 듯 쫀쫀히 묶여 있다. 


항간에는 이것을 소설로 볼 수 있을까 없을까 말이 많았다고 한다. 기존 문학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춘희가 그렸다는 그림도 나온다. 그것 역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한 방식이다. 특히 작가를 대변하여 서술하고 있는 자가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한다는 것이 새롭다. 종종 착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읽고 있는 건지,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지. 그런데 이 서술자, 좀 뻔뻔한 구석이 있다. 독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질 않나, 확인을 하고 양해를 구하지 않나, 심지어 부탁까지! 유쾌한 경험이었다. 


-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 독자여, 부디 이해해주시길, 그것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며....... 

- 이제 이야기는 다시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던 가엾은 우리의 주인공, 춘희에게로 돌아간다.

- 독자 여러분, 밀려오는 졸음을 쫓고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고래」 는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욕망으로 들끓었던 인간의 삶에 유머와 재치, 풍자와 해학을 곁들인 소설이다. 「백년의 고독」에서 마르케스가 보여주었던 마술적 리얼리즘을 한국식으로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특히 고래의 등줄기에서 내뿜는듯한 강력한 서사의 힘이 돋보였다. 아차, 이 소설에는 남녀가 만리장성을 쌓는 장면이 여럿 나오는데 그 묘사가 압권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읽기를 추천한다. ■




책다방 DJ가 이런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 삶이 무료한데 뭐 재미있는 책 없을까 찾는 분들

- 한국소설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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