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8개월 만에
조금 더 현장감 있게 쓰는 글이면 좋을텐데, 나의 게으름 혹은 이곳에 적응한다는 핑계 탓에 (그게 그거인가) 벌써 다시 만난지 두 달이 넘어서 글을 써.
1년 8개월의 긴 부재 끝에 다시 너를 만난다는 사실에 나는 당연히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을 여러 번 상상해보기도 했어. 이렇게 이야기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해외 입양가는 강아지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했을 때도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3마리의 강아지 또 강아지를 데리러 나온 두 어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너와 재회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어. 그래도 너무 사소한 이유로 아무 어려움도 들지 않는 좋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내 강아지들과 함께 프랑스에 가기로 결심을 했지. 내 이야기에 너도 ‘아 공항에서 낭만적인 재회는 못하겠네’ 하고 조금은 아쉬워했던 게 기억이 나.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만남은 낭만적이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했지. 게이트를 통과하기도 전에 유리창 너머에 있는 서로를 발견하고 먼저 인사를 나누었고, 게이트를 통과하고 나서도 강아지들을 돌보느라 그리고 펫택시 아저씨들을 찾느라 그리움을 담아 포옹할 시간도 없었던 것 같아. 펫택시 아저씨들과 전화를 하고, 출국장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강아지들을 배웅하고 나니 – 우리의 여느 재회가 그랬듯 – ‘재회의 순간’은 이미 끝나 있었어. 정말 오랫동안 그려왔던 순간인데, 현실은 참 현실적이지.
한국 드라마에서 가족들이 모두 식탁에 둘러 앉아 아침을 먹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 장면이 굉장히 드라마적으로 전형적이라는 생각을 해. 사실 현실에서는 거의 벌어지지 않는 일인데 (적어도 우리 가족은 다들 지각하느라고 둘러 앉아 아침을 먹을 일이 없어.), 대부분 아침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소식을 알게 되거나 갈등을 드러내기 위해 아침 식사 장면을 사용하는 게 재밌어. 예를 들면, 3대가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있어. 새 며느리가 국을 한 숟갈 먹다가 구역질을 하고, 온 식구가 새 며느리가 임신을 하게 된 걸 알아. 그렇지만 이런 일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잖아. 현실의 일상과 드라마의 일상은 닮았지만 너무도 다르지.
영화와 현실이 다른 것처럼 나의 상상과 현실에도 큰 차이가 있어.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가 상상하는 일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아.’라는 부정적인 세뇌에 빠졌지만, 그저 인간의 상상과 현실은 본래 잘 일치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라. 너와 함께 맞이한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재회만큼 낭만적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따뜻하고 즐거웠어. 세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펫 택시 아저씨들을 30분이나 기다렸지만, 너는 그걸 바로 내가 벌인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만들어. 강아지도 키우지 않으면서, 강아지가 든 이동가방을 능숙하게 너의 품에 가져가고 세 마리의 강아지들에게 금방 반갑게 인사해. 그리고 펫택시 아저씨들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장소를 확인하려고 하지. 너는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뿐인데, 너가 길을 헤매자 나는 살짝 짜증도 나고 말이야.
1년 8개월 만의 재회라는 특별한 타이틀에 비해, 그 날에 특별한 순간은 하나도 없었어. 드라마나 우리의 상상에서는 하이라이트가 될 만한 장면들을 예쁘게 편집해 만드는 데 비해 현실의 시간은 그저 끝없이 이어지는 흐름이니까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겠지. 그렇지만 현실만이 주는 낭만도 있어. 내가 해피 엔딩으로 상상했던 공항에서 재회는 싱겁게 끝이 났지만 지금은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너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