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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율 Nov 21. 2023

재능 vs 노력

애매한 재능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이유


"재능과 노력이 붙으면 누가 이긴다고 생각해?"

"당연히 재능이지"

친구의 물음에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왜 재능이라고 생각해?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잖아"

"재능이 있는 건 이미 필살기를 장착하고 있는 거야. 게다가 성과까지 좋으면 남들보다 더 노력하게 되거든"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그럼 재능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야?"


내 대답이 잔인하다는 친구의 말에 재능과 노력에 대하여 다시금 고찰해 보았다. 과연 재능 없는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면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있을까? 내 대답은 한결같이 NO다.




나도 한때는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재능이 엄청난 무기라는 사실을 쌍둥이 여동생을 보며 깨달았다. 내 밑에는 네 살 어린 이란성쌍둥이 여동생이 있는데 둘은 같은 뱃속에서 나오고 같은 방을 썼으며 같은 초중고를 나왔다.


동생들이 어렸을 때 나는 한글과 간단한 산수들을 가르쳐 주었는데 둘째는 하나만 알려줘도 열을 알고 셋째는 하나도 여러 번 암기해야 겨우 습득할 수 있었다. 둘의 타고난 공부머리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동생방에 들어가 보면 셋째는 365일 책상 앞에 앉아있었고 둘째는 맨날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둘째가 수업 시간에 자주 졸고 있다는 담임 선생님의 호출에 엄마가 학교에 불려 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매일 죽어라 공부한 셋째는 숭실대에 합격했고 툭하면 졸고 있던 둘째는 고려대에 합격했다. 결국 공부머리도 재능이었던 거다.


둘째가 졸지 않고 있는 짧은 시간 동안 흡수한 학업의 질이 더 좋았다는 건 분명 재능의 범주였다. 물론 셋째가 열심히 노력해서 인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한 건 노력의 결실이지만 둘째와 상대평가를 해보면 결국 노력이 재능을 이기지 못한 거다.


재능의 영역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는 나를 샘플로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수학에 약했는데 간단한 계산도 잘되지 않아 끙끙 앓았고 수학의 정석은 나에게 고대 산스크리트어 같았다. 수학 시험지에 빨간 비가 내리니 엄마는 걱정이 돼서 나를 수학 학원에 보내보기도 했지만 남들이 습득하는 시간의 두세 배가 걸려 결국 나는 수포자가 되었다. 뇌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언어영역에서만큼은 뛰어난 두각을 보였다.

"야.. 세상에 손서율 2등급 나왔어! 너네 손서율보다 못 본 새끼들은 뭐냐?"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 결과를 보던 국어 선생님이 기가 차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수업 시간에 맨날 엎드려 자다 국어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인 고무줄에 얼굴을 맞고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는데, 모의고사 2등급이 나온다는 건 선생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내가 언어영역 점수가 잘 나오는 이유는 나도 몰랐다. 그냥 생각한 대로 문제를 풀면 맞았다. 그 생각의 회로가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나 또한 미스테리였다. 학창 시절 내내 교내 글짓기상을 자주 받았고, 대외 공모전에 입상하여 상금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어려운 단어들을 구사하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독서를 해야 하는지 물었지만 사실 나는 독서량이 많지 않았다.


그냥 글을 쓰다 보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던 단어들이 튀어나오는데, 무심코 읽었던 뉴스 기사 속 단어들이 나도 모르게 뇌 한구석에 저장되어 있다가 글을 쓸 때 툭툭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키 큰 사람이 자신의 키가 왜 큰지 모르는 것처럼 내가 왜 글을 잘 쓰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이렇게 같은 뇌에서도 수학은 아무리 노력해도 평균치 보다 미달이고, 국어는 공부를 안 해도 잘할 수 있다니 재능의 양극화가 이미 나 하나로 설명이 가능했다.




그럼 재능이 없는 사람은 어느 분야에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걸까?


내 경험상 재능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요즘은 많이 먹는 것마저 재능이 되어 먹방 유튜버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까


모든 사람은 각자의 타고는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다채로운 분야로 발현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요리를 잘하는 사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사람들을 웃기는데 타고난 사람


신이 인간 세상을 다채롭게 만들고 싶어서 애초부터 설계해 놓은 재능의 TO를 골고루 인간들에게 부여했나 싶을 정도로 이렇게나 다양한 재능을 나누어 가진 것도 신기할 정도다.


나는 평소에 지인들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는 걸 재미있어하는데, 카톡 할 때 대화의 흐름에 맞춰 적재적소에 웃긴 짤 사진을 보내는 친구에게 너는 예능 PD를 하면 정말 잘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아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입담 좋은 친구에게 너는 역사 관련 콘텐츠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면 정말 잘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보기엔 다소 실없고 사소해 보이는 재능이지만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재능이다.




그러나 문제는 신이 인간에게 재능을 나누어 줄 때 결코 공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분야에서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와 애매한 재능을 가진 일반인으로 나뉘어지는데. 마치 UFC에서 라이트급, 미들급, 헤비급으로 체급이 나뉘어지는 것처럼 타고난 재능의 피지컬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다. 이런 양극화로 인해 애매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절망하게 된다.


라이트급이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체중에 두 배에 가까운 헤비급과 붙어 승리한다는 것 자체가 희박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헤비급도 마찬가지로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절망 속에 빠진 친구에게 나라는 고약한 인간은 노력하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따뜻한 격려 대신, 재능은 절대적이라는 소리만 지껄이니 친구의 입장에서는 야속했겠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재능은 절대적이지만 애매한 재능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세상에 대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애매한 재능으로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어?"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꿈을 쉽게 접어버린다. 그러나 그들이 여기서 간과한 게 있다. UFC는 체급별로 나눠서 경기가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헤비급의 챔피언을 자신의 상대로 인식하고 꿈을 포기하지만, 자신과 체격이 같은 라이트급의 챔피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라이트급의 챔피언을 이기면 자신도 챔피언이 될 수 있는데 헤비급 챔피언만 바라보면서 엄두도 못 내고 있는 것이다.


뭐든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세상의 이치지만 같은 분야 안에서도 수요계층에 따라 여러 가지 시장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마스터셰프 요리 경연 대회가 열렸다고 가정해 보자 대회에는 두바이 7성급 호텔에서 수석 셰프 경력을 보유한 분자요리의 권위자와, 동네 칼국수집 사장님이 참가했다. 당연히 요리 대회의 우승은 요리 업계에서 탑티어를 찍은 수석 셰프가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대회가 끝나면 놀라운 반전이 있을 수 있다. 셰프는 국내 유명 호텔에 스카웃 돼서 메인 셰프로 활약하지만 칼국수집 사장님은 가게가 맛집으로 유명세를 타며 칼국수로 건물을 세운 것이다.


분명 수석 셰프가 요리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칼국수집 사장님이 건물주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전혀 다른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속해있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분야에서도 적용된다. 대한민국 드라마의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는 김은숙 작가의 천부적인 재능이 헤비급이라고 하면, 엄청난 반전 스토리와 찰진 대사를 구상할 정도의 재능은 없어도 유아용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대단한 재능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진 재능의 색깔에 부합하는 시장을 발굴해 낸다면 성공의 길은 언제나 열려있다.


그래서 [재능 VS 노력]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에 맞는 시장을 발굴해서 그 풀에 있는 경쟁자들을 제치기 위해 노력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호텔 수석 셰프 VS 칼국수집 사장님]이 아니라 [서울 중구 지역 칼국수집들 VS 칼국수집 사장님]의 경쟁구도라면 충분히 승산이 가능한 게임이다.




이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남들이 소소하다고 치부하는 재능으로 큰돈을 번다.


이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을 보며 별거 아닌 아이템으로 운이 좋았다고 비아냥대고 정작 자신은 특별한 재능이 없다며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나는 이 원리를 안지 몇 년 되지 않았다.

비록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헤비급 작가는 아니지만 나의 색깔에 꼭 맞는 시장을 찾기 위해 현재 발굴 작업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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